"민주주의란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을 자유롭게 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국민과의 소통이 안 되는 것같다. 서거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리운 이유이다. 정말 민주주의가 그립다."
20일 저녁 10시경, 서울광장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을 끝낸 20대 여대생이 조문장를 떠나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온 정경진(23·가톨릭대 국제관계학부 4년) 씨였다. 그는 비보를 전해 듣고 혼자 조용히 조문을 왔다. 친구들과 함께 오고 싶었지만 그 자체가 자칫 놀러온 것처럼 비쳐져 조문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 혼자 왔다고 말했다.
"고인은 투쟁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IMF극복, 남북정상회담 등의 여러 업적도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게 해준 지도자였다. 문상을 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지난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중국 어학연수 중이었고, 상하이 롱바이 지역 한인촌 한인식당에 차려진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고 말했다. "고령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병환으로 서거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사고로 서거해 지금보다 더 참담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두 분의 지도자를 잃으니 정말 아쉽다."
이어 현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을 국민과의 소통의 부재라고 강조했다. "현 정부 들어서 지금까지 꽃피워 왔던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 지난해 광우병 촛불집회 때도, 대통령이 나서 배후조정 운운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지금까지도 국민과 소통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5월 조카 돌이었다. 앞으로 조카가 현재보다 더 좋은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런 세상이 멀어져 간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지금이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편다면 국민들의 지지를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한국 민주주의가 더 역행하면 제동을 걸어 줄 지도자가 없어 막막한 기분이라고도 했다. "여러 번 입원했어도 이겨냈기 때문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좀 더 오래 살 줄 알았다. 이렇게 빨리 하늘나라로 가 정말 황당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세상을 떠나니 앞으로 바른 말을 할 지도자가 없는 것 같아 막막하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고인의 말이 새삼 중요하게 느껴진다."
이어 대학생들이 비싼 등록금을 내는 것만큼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당당하게 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비싼 등록금 내놓고 점심 반찬 타령이나 하는 것이 대학생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대학생은 지식인이다. 지식인인 만큼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진심어린 부탁도 잊지 않았다. "지도자가 타계했다고 자발적으로 모인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위대한가. 이명박 정부가 이런 국민들을 위해 잘해줬으면 좋겠다. 잘사는 사람들보다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폈으면 한다. 4대강 개발보다 능력이 돼도 등록금이 없어 대학을 가지 못한 사람들을 지원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반값 등록금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 반값 등록금을 이행해야 한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정씨는 지난 2006년 2월 졸업 한 학기를 남기고 중국 어학연수를 떠났다. 지난 7월 10일 귀국해 마지막 학기 복학을 준비하고 있다. 모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부친이 지난해 3월 중국으로 발령을 받아 가족 모두 중국으로 떠났다. 그는 현재 강서구 마곡동 할머니 집에 거주하고 있다.
한편, 이날(21일) 새벽 1시가 넘어 분향소 위 차양막이 기울어져 조문이 중단됐고, 조문객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하지만 임시 분향소를 설치해 조문은 이어졌고, 오전 6시 긴급복구가 완료돼 조문행렬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