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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오전 서울 서교동성당에서 한 어린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헌화한 후, 고개를 숙이려 하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 서교동성당에서 한 어린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헌화한 후, 고개를 숙이려 하고 있다. ⓒ 선대식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신안에서 보내왔다는 홍어도 같이 나눠먹자며 성당에 보내왔지. 참 맛있었는데…. 참 온화한 분이셨지."

21일 오전 서울 서교동성당에서 만난 한 노(老) 신자(77)의 말이다. 거동이 불편한 그는 평일 오전 양복을 잘 차려입고 애써 이곳을 찾았다. 그리고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에 헌화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야당 지도자·대통령이라고 해서 특별하지 않았다, 성당에서는 일반 신자였다"며 "김 전 대통령은 부디 천국에서 잘 지내시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이날 서교동성당에는 머리가 희끗한 이부터 어린아이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한 천주교 신자들이 몰렸다. 연도(죽은 이를 위한 기도) 드리는 소리가 성당 내에 가득했다. 국회의사당이나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 조문객들이 몰리고 있지만, 가장 뜨거운 추모 열기의 장소는 김 전 대통령이 20여 년간 다닌 서교동성당인 듯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저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아니 토마스모어(김 전 대통령의 세례명)와의 작은 추억 하나씩을 가슴에 품고 그의 영정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20년 인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서교동성당

서교동성당에서는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시 정각마다 40~50여 분간의 연도가 이어진다. 사실상 하루 종일 김 전 대통령을 위한 기도가 계속되는 셈이다.

1957년 7월 13일 노기남 대주교 숙소에서 김철규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김 전 대통령은 1980년대 후반부터 서교동성당을 찾았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시절을 제외하고는 주일마다 서교동성당을 찾았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으로 집을 옮겼을 때도 서교동성당을 찾았다.

특히, 매년 8월 13일마다 서교동성당 쪽에서 도쿄피랍 생환 기념미사를 마련한 터라 이곳 신자들과 김 전 대통령의 인연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난 13일 서교동성당에서 열린 김 전 대통령의 도쿄 피랍 생환 36주년 기념 미사 해설자(사회자)였던 권엘리사벳씨는 "올해 미사는 그 어느 때보다 숙연했고, 슬펐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미사가 열릴 때마다 김 전 대통령과 가족이 모두 참석했지만 이번에는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며 "어느 때보다 많은 이들이 미사에 참석해 김 전 대통령의 쾌유를 빌었지만, 결국 돌아가셔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미워하는 감정 버리는 게 신앙의 가르침'이라는 말에 감동"

 21일 오전 서울 서교동 성당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연도(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 서교동 성당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연도(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 선대식

서교동성당에서 김 전 대통령과 가장 깊은 인연을 맺은 이들은 김일태 사무장과 박인길 사목회장이다.

1989년 서교동성당 사무장으로 오면서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김일태 사무장은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였지만, 성당에선 일반 신자와 다를 바 없었다"며 "사목회 고문도 하고, 성당 내 우리소리관현악단 활동도 적극 돕는 등 교회 행사에 열심히 참여했다"고 전했다.

그는 1976년부터 20년간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감시했던 서울 마포경찰서 정보과 형사 이열씨에 대한 추억도 꺼냈다. 김 사무장은 "이열씨가 성당에 자주 찾아왔는데 나와 여러 차례 밥을 함께 했다"며 "이열씨는 '직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시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박인길 사목회장은 김 전 대통령이 온화하고 인간적이었다고 추억했다. 그는 "성당 기금을 마련한다고 하면 외국 순방길에 얻은 물건을 바자회에 내놓기도 했고 때가 되면 떡이나 홍어를 보냈다"며 "먹는 것도 서민적이었다"고 밝혔다.

"하루는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시냐고 여쭤봤더니 김 전 대통령은 웃으면서 '특별히 좋은 음식 먹는 게 아니고 평범한 식사를 하고 기도 생활을 많이 한다'고 답했다. 다시 '그래도 남들보다 얼굴이 발그레 좋다'고 하니 '진수성찬을 먹는 게 아니라 미역국이나 인절미를 자주 먹는다, 특별한 게 없다'고 했다. 참 인간적이라고 느꼈다."

박 사목회장은 김 전 대통령의 투철한 신앙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힘든 시기를 신앙의 힘으로 넘었다"며 "우리는 그 모습을 가까이서 봤는데, 다른 사람과는 달리 비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보복을 많이 당하고 구금·연금 생활을 많이 하면서 미운 사람 많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김 전 대통령은 '용서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버리는 게 신앙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서교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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