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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국회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이 끝나고, 동교동 사저, 김대중 도서관, 서울광장을 거쳐 서울역을 지나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저녁 안장됐다.

 

평생 민주주의와 남북평화와 화해, 협력, 그리고 인권을 위해 노력했던 고인이 영원히 잠들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고인은 서거 직전까지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격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고인의 국장 추모기간에 시민들에게 나눠 좋던 김대중 마지막 일기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라는 소책자에도 현 민주주의 위기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다. 지난 1월 16일 쓴 일기에는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고 적어 이명박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지난 6월 11일 저녁 여의도 63빌딩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에서는 국민들에게 '행동하는 양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고초를 겪을 때 500만 명 문상객 중 10분지 1인 50만명이라도 전직 대통령에게 그럴 수 없다고 나섰어도 노 대통령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억울하고 가슴 아픈 일입니까.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켜야 합니다.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진정 평화롭고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되십시오."

 

이후 유지가 된 '행동하는 양심',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악의 편'이라는 발언은 현재 여론을 통해 회자되고 있다.

 

재직시절 흡수통일을 반대하고 햇볕정책인 대복포용정책을 견지함으로서 열어 붙은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었다. 97년 당선 직후 닥쳤던 IMF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호는 '후광' 천주교 세례명 '토마스 모어'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책을 좋아하는 독서광이었다. 메모 습관은 후세들에게 그의 이면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병세가 악화되는 힘든 상황에도 하루하루 그의 삶을 기록하는 일기를 썼다.

 

일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고인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지인이다. 그는 23일 현충원 안장식을 끝까지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생전 고인이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그는 70년대 고인이 일본에서 납치돼 죽음 직전에 몰렸을 때 구명운동을 한 진보적인 지식이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지난 1월 20일 고인의 일기에는 "용산 철거민 참사를 접하고 경찰의 난폭한 진압... 난폭한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쫒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고 적고 있다. 또 1월 17일 일기에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들이 불쌍해 눈물이 난다"고 적고 있다.

 

대통령 재직시절 과거 군사정권에서 수많은 탄압을 받았어도 내색하지 않고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인권, 햇볕정책, IMF 극복, IT육성과 과학기술의 혁신 등을 이뤄었던 업적은 후세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납치, 투옥, 연금, 사형선고 등 시련을 뚫고 당선돼 한국의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김 전대통령. 도전과 시련, 집념과 영광, 그리고 서거 직전까지 인동초의 삶속에, 오직 나라를 걱정했던 고 김 전 대통령님은 국민 모두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태그:#고 김대중 전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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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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