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같은 분이 돌아가셨는데 당연히 와야죠. 너무 덥지만 영결식 끝날 때까지 있을 겁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드려야죠." (영결식 생중계를 지켜보던 시민, 45세, 분당)
23일 국회의사당 맞은편 도로가에는 낮 12시쯤부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멀리서나마 지켜보기 위해 나온 추모객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영결식 초청장을 받지 못한 시민들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였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두 개의 대형 화면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생중계로 지켜볼 수 있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무더운 날씨임에도 시민들은 영결식 시작 몇 시간 전부터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는 차량 앞에 자리를 잡았다. 두 대의 생중계 차량 사이에는 분향소가 마련되어 미처 조문을 하지 못한 시민들이 헌화 및 분향을 했다.
국회 밖 시민들, 영결식 장면 놓칠라 '집중'
오후 2시 영결식이 시작되자 생중계 차량 앞은 발디딜 틈 없이 복잡해졌다. 김 전 대통령의 운구차량이 들어오는 장면이 보이자 시민들의 고개는 일제히 화면 쪽으로 향했다. 시민들은 영결식 장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생중계 화면을 뚫어지게 올려다 보며 말을 아꼈다. 인터뷰를 위해 기자가 한 시민과 대화를 나누자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시민이 조용히 해 달라는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다. 고인에 대한 추도사를 단 한 마디도 놓치기 싫다는 의사표시였다.
호남 지역과 김 전 대통령의 각별한 인연 때문인지 이날 국회의사당 앞에는 호남 출신 시민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영결식을 지켜보던 김아무개(61, 광주)씨는 "존경하시는 분이 돌아가셔서 그저 멍할 뿐"이라며 고인의 서거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단지 통행금지에 걸렸을 뿐인데도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적이 있었다.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모른다. 그때 김대중씨와 같은 민주화 투사들이 더 열심히 잘해주기를 바랐었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 모두 그 시절 핍박받은 사람들일 거다."
전남대를 졸업한 김영래(50, 사당동)씨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노선을 따르며 지금껏 죽 한 방향을 걸어왔다"며 "구심점이 사라지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김 전 대통령을 따르는 정치지도자들의 역량이 부족한 것 같다"며 현 정치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덕분에 역사-민주주의 인식 넓혀...최초로 국민들과 소통하신 분"
이 자리에는 주로 중장년층 및 노년층 추모객들이 많이 참석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을 직·간접적으로 지켜봐 왔던 시민들이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할 즈음에 중고등학생이었던 20~30대 청년 추모객들도 적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던 97년에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대학시절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보냈다. 시간이 흐른 후 김대중, 노무현 두 전 대통령의 가치를 알게 됐다. 특히 김 전 대통령 덕분에 역사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넓혔다. 왜 김 전 대통령 같은 분을 재임 시에는 못 알아봤는지 반성이 많이 된다. 앞으로 김 전 대통령이 중시하시던 민주주의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봐야겠다." (한송희, 28세, 신림동)
31세 박종완(충남 서산)씨는 "(김 전 대통령은) 최초로 국민들과 소통을 시작하셨던 분이다"며 "'독재자가 출현해도 국민은 이를 이겨낼 수 있다'던 김 전 대통령님의 최근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운구행렬을 보기 위해 영결식이 마무리된 직후인 오후 3시 10분께부터 국회의사당 맞은편 도로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20분 후 김 전 대통령의 대형 영정사진을 실은 운구차량이 국회의사당을 빠져나오자 시민들은 손을 흔들며 "대통령님 영면하십시오" "좋은 곳으로 가세요"를 외쳤다.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향하는 운구차량을 뒤따라 뛰어가는 시민들도 많았으며, 일부 시민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동교동 주민들 "집안 어른이 돌아가신 느낌이다"
오후 3시 40분경 운구차량은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에 도착했다. 운구행렬을 지켜보기 위해 자택 앞에 대기하고 있던 400~500명의 시민들은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를 비롯한 유족들이 차에서 내리자 "여사님 힘내세요"를 외치기도 했다.
시민들은 영결식이 시작되던 오후 2시경부터 이미 동교동 자택 앞에 모이기 시작했었다. 김 전 대통령 자택 주변의 몇몇 상가들은 TV를 켜놓은 채 문을 열어 놓아 지나는 사람들이 영결식 장면을 볼 수 있도록 도왔다. 상당수 상가 앞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자택 앞에 모여 있던 시민들은 하나같이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모신 분"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예전에 동교동에 살았었다. 김 전 대통령 취임 후 동네 사람들 200명을 청와대에 초청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참석했었다. 선거 때 동네 투표장에서 김 전 대통령을 자주 뵙곤 했다. 집안 어른이 돌아가신 느낌이다." (이은정, 53, 연희동)
동교동에서 40년을 거주한 김희정(89)씨는 고령임에도 오후 2시부터 뙤약볕 아래에서 김 전 대통령을 기다렸다. 김씨는 "김 전 대통령이 동교동에서 30년 거주하시는 동안 이사하시는 것도 다 지켜봤고, 청와대에 초청받아 가기도 했다"며 "나라의 어른이 돌아가셔서 서운하고, 이웃 주민이 가셔서 서운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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