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서울에 온 북측 '특사조의방문단'(<조선중앙통신>표현)을 '사설조문단'이라고 폄하했었다. '김대중평화센터'가 창구가 된 방문이 불쾌하다는 것이었다.
그 조문단을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오전에 청와대에서 만났다. 이들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남북 정상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간접이기는 하지만 '대화'를 나눈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구두메시지를 이 대통령에게 전달해야 하는 임무를 갖고 온 북측 조문단은 적극적이었다. '특사조의방문단'은 국회에서 김 전 대통령 빈소를 조문한 이후부터는, '조의방문단'에서 '특사단'으로 그 성격을 바꿨다.
'특사조의방문단', 조문단에서 특사단으로 '변신'
단장인 김기남 조선노동당 비서는 당역사와 선전선동분야를 담당하는 인물로 김 위원장을 최다수행한 최측근이고, 북한의 '통일부 장관'격으로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주역이다. 여기에 "실무적으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원동연 조선 아시아태평양위원회 실장까지 왔다는 점에서 이미 특사단으로 활동하기 위한 인적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김기남 비서는 지난 21일 오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를 만난 자리에서 홍양호 통일부 차관 등에게 "다 만나겠다,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 등 남측 당국자들과의 면담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이어 22일 오찬을 함께한 김덕룡 대통령국민통합특보에게 이 대통령과의 면담의사를 밝혔고,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이기도 한 김 특보는 이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북측이 조문단 파견 전날 서울과 평양을 연결할 직통전화 개설을 요구한 것도, 이 대통령과의 면담(추진)에 대한 평양의 지시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체류일정을 하루 연기한 끝에 '특사단'은 목적을 이뤘다.
조문단의 이 같은 모습은, 북한이 최근 보여온 '평화공세'의 한 부분이다. 북한은 개성에서 137일간 억류하고 있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를 지난 13일 석방했다.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이 평양에 들어간 지 3일 뒤였다. 이어 현 회장이 김 위원장과 만나 금강산 관광재개와 이산가족 상봉 등의 5개항에 합의했고, 20일에는 통행·체류 제한 해제-경의선철도 화물열차 운행재개-개성공단 남북경협사무소 운영재개 등의 조치를 취했다. 남북관계 악화의 상징이었던 지난해 '12.1조치'를 전격 해제한 것이다.
이는 '김정일-현정은' 합의를 이행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문단 파견을 하루 앞두고 발표했다는 점에서 조문단과 함께 보내는 '대남선물'의 성격이 짙다.
북측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지만, 남측은 이 손을 덥석 잡으려 하지 않고 주춤거렸다. 좋게 말하면 신중한 모습이었다. 이 대통령에 대한 면담요구는 22일 오전에 전달됐지만, 청와대 결정은 22일 저녁쯤에 결정됐다. 북측의 전술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면담이 성사된 것은 현 정부 출범 이후의 남북 관계가 악화돼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에 온 북측의 최고위급 인사들을 만나지 않을 경우 져야 할 정치적 부담을 우려한 측면이 크다.
남측 입장에서 보면,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이 대통령이 지난 8.15경축사에서 남북관계를 주도할 만한 메시지를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한다면,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추진하겠다"는 '비핵개방 3000'을 반복하는 수준이었다.
북, 왜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까
그렇다면 최근까지도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 '패당'으로 부르고, "정전협정에 구속받지 않겠다"(5월 27일 판문점 대표부 성명)고 했던 북한이 왜 이렇게 빠르게,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북한은 지난 4월 5일에 장거리로켓을 발사했고, 이어 5월 25일에는 2차 핵실험을 했다. 대외, 정확히는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의 협상에 나서기 위해 몸값을 올리는 준비를 마친 것이다. 40여 회의 방북경험이 있는 박한식 조지아대 교수는 지난 7월 평양을 방문했다 돌아온 뒤, "2차 핵실험은 오래 전부터 계획된 것 같았다. 실험 직전에 노 대통령이 돌아가셔서 당황한 것 같다"고 전했다. 북한이 자신들의 시간표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면서 북한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본격적인 미국과의 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정부는 북한에 대한 압박이 통한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은 이명박 정부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세의 변화에 조응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대미관계 개선을 위해 남북관계도 바꾸려한다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공을 넘겨받은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점이다. '김대중 조문정국' 전후의 남북관계 흐름은, 북한이 주도하고 남한은 반응하는 형국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대통령과 북 조문단의 면담을 "각국 조문단 접견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규정 했다. 또 이날 면담을 '패러다임 시프트'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라는 특수한 관계이지만, 이 틀에서 벗어나서 국제적으로 보편타당한 관계로 발전해야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 관계가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정립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보수정권인 노태우 정부가 북한과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가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라고 규정한 것과도 배치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지적된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이 대통령이 "남북 정상이 새로 합의한 합의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던 남북간 합의였다.
청와대 "모멘텀이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북 조문단과의 면담에 미국이나 중국 조문단의 접견시간의 두 배인 30분을 할애해, 사실상 북한과의 '특수 관계'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남북관계 개선의) 모멘텀이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정부가 열심히 할 것"이면서 "원칙 없이 하지는 않겠지만 또 과거처럼 남북관계를 정치적, 정략적인 목적으로 이용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 21일 조문단 파견을 신속 보도했던 북한은 이 대통령과의 면담에 대해서도 당일로 보도해,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서울을 방문한 특사조의방문단이 23일 남조선의 리명박 대통령을 만났다"면서 "석상에서는 북과 남 사이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데 대한 문제들이 토의되였다"고 전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년 반 동안 경색돼 있던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도 자신이 생각하는 원칙적인 수준 이상의 언급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원만하게 하고, 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성사시킨 5개항의 합의를 당국간 회담에서 잘 이어받는다면 남북관계가 정상화 국면을 향하게 될 것으로 본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분단 극복을 위해 헌신한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마지막 선물'은 '일단' 성공한 셈이다. 그의 영결식날 북한 조문단을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간접대화를 했다는 점에서 성공했지만, 아직 양측의 인식차는 크다는 점도 그대로 나타났다.
이제 김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남으로서, 남한은 물론 북한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남북화해의 상징은 사라졌다. 이제 그의 '마지막 선물'이 실제 결실을 맺게 할 가장 큰 책임은 어찌됐든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에게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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