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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김대중'은 시대를 가늠할 줄 아는 예언자였다. 인간존재의 무한한 가능성과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누구보다 잘 깨쳤던 철학자였다. 정의와 평화를 위해 마음 속의 두려움을 떨치고 엄정하게 행동했던 '시대의 양심'이었다.

2009년 8월 23일, 대한민국 국장으로 모셔진 고 김대중 전대통령은 시드니 동포들이 모여서 길 떠나는 당신을 위해 추모식과 노제를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들렀다 갔다. DJ는 생전에 두 번 방문했던 아름다운 항구도시 시드니, 거기에서 만났던 동포들에게 잔잔한 미소로 작별을 고했다. 적어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렇게 느꼈다.

한국과 호주를 아우르는 국민의례, 천주교 고별식, 동영상 상영, 추도사 등이 시드니 추모제의 공식순서였다. 이어서 조시 낭송, 조가 독창, 진혼무(鎭魂舞) 공연, 아리랑 합창 등은 노제 형식으로 진행됐다. 엄숙하면서도 예술의 향기가 가득하게 피어오른 추모식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넋 기린 '살풀이 춤사위'

 생사의 고리를 끊어낸 '진혼무'를 공연한 이지언 현대무용가.
생사의 고리를 끊어낸 '진혼무'를 공연한 이지언 현대무용가. ⓒ 윤여문

여군 중위 출신의 채송화(28)씨가 낭송한 '당신은 우리입니다'는 고은 시인이 한국에서 보내온 조시다. 22일 아침, 고은 시인은 기자에게 "지금 조시에 곡을 붙이고 있다, 서울광장 추모식에서 낭송되고 연주될 예정이니 시드니에서도 함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조종춘 한인문인협회 고문이 직접 쓴 조시 '민족의 후광(後光) 김대중 선생'이 낭송되고, 오페라 가수 이승윤 소프라노가 조가로 선정한 '선구자'를 장엄하면서도 애끓는 감정으로 불러 노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그 다음 현대무용으로 안무된 살풀이 진혼무(鎭魂舞) '김대중 대통령의 넋을 기리며'가 노제를 절정으로 이끌었다. 현대무용가 이지언씨는 약10분간의 살풀이 춤사위로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넘나드는 대서사를 연기했다.

사람의 넋을 상징하는 듯한 하얀 가루를 비어내어 '남기고 가져갈 것 없는' 빈 분청사기를 허공에 들어 보이면서 시작된 살풀이는 고요와 격정의 몸짓을 반복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파란 많았던 생애를 회고한 다음 신들린 듯이 하얀 천을 둘로 가르면서 삶과 죽음의 고리를 끊어냈다.

경상도 전라도가 따로 없었던 추모제

 김대중 대통령 시드니 추모식을 함께 준비한 한인회와 향우회 관계자들
김대중 대통령 시드니 추모식을 함께 준비한 한인회와 향우회 관계자들 ⓒ 윤여문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평화주의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시드니 추모식장에는 경상도, 전라도, 함경도, 충청도가 따로 없었다. 하나된 대한민국 사람들이 너나들이로 초혼(招魂)하여 고 김대중 대통령 넋과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르면서 떠나보냈다.

10만여 명의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 호주는 대한민국의 축소판 다름 아니다. 그러다보니 충청도 김씨, 경상도 박씨, 전라도 이씨, 평안도 백씨 등이 한 핏줄 되어 오순도순 살기도 하지만 가끔은 티격태격하면서 전라도니, 경상도니를 따질 때가 있다.

문제는 그런 정서가 이성을 잃고 배타적으로 변할 때다. 망국적 지역주의가 호주까지 따라와서 가뜩이나 힘든 이민생활을 더욱 피곤하게 만드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래서였을까. 2002년 호주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동포간담회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물론 친정을 잊을 수는 없지만, 자꾸 친정 쪽만 바라보면 발전도 없고 자칫 눈 밖에 납니다. 친정은 친정대로 잘 하고 있으니까, 여러분들은 호주 주류사회로 나가서 맘껏 뜻을 펼치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는 한 핏줄이라는 걸 늘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래서였을까. 23일 밤에 열린 시드니 추모식장에서는 모든 동포들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부산경남향우회'와 '경북대구향우회' '이북5도민회' 등에서 적극 동참했고, 평소에 DJ 지지자들과 서먹한 사이였던 '재향군인회 호주 지부'와 '6.25 참전협회' 등의 인사들도 다수 참석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드니 추모식장 입구에 놓이 조화.
김대중 대통령 시드니 추모식장 입구에 놓이 조화. ⓒ 윤여문

추모식장을 가득 메운 조화의 띠에도 모든 향우회의 명칭이 적혀 있었다. 특히 추모식장을 알리는 한인회관 입구에는 '부산경남향우회'와 '제주향우회'의 조화가 놓여 있었다. 언뜻 '호남향우회'의 조화가 놓일 법한 자리였지만 추모위원회는 그런 일까지 세심하게 배려했다.

DJ 덕분에 하나된 동포사회

그러나 이런 결과가 그냥 나온 것은 아니었다. 지난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전해진 당일부터 분향소를 마련한 김병일 시드니한인회장은 여러 향우회장들과 협의하면서 "시드니 추모식을 통해서 동포사회가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제안했다.

결국 한인회장이 추모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문무일 경북대구향우회장, 정진규 충청향우회장, 신상우 제주향우회장, 강진수 부산경남향우회장, 진상기 이북5도민회장 등이 공동 부위원장을 맡았다. 이영헌 호남향우회장은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됐다.

또 하나 특이한 모습은 비교적 연령대가 높은 향우회 조직이 담당하기 어려웠던 의식과 노제 등의 실무적인 준비는 젊은 회원들이 많은 '호주한인포럼'(대표 김학재)이 맡았다. 이들은 추모식장 준비, 프로그램 구성, 추모객  안내, 추모식 진행, 사회 등의 역할을 헌신적으로 수행했다. '호주한인포럼'은 노무현 대통령 시드니 추모식을 주관한 바 있다.

 김대중 대통령 시드니 추모식에서 묵념을 올리는 '6.25참전협회' 회원들
김대중 대통령 시드니 추모식에서 묵념을 올리는 '6.25참전협회' 회원들 ⓒ 윤여문

호남 출신의 이용재 웨스트라이온스클럽 회장은 경남 거제 출신 옥상두씨(자유당 스트라스필드 지구 부위원장)와 마주 앉아서 "한인동포사회가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자"고 제안했다. 옥상두씨는 지역갈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남북통합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시점에서 아직도 내부적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사고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거다. 특히 인터넷의 발전으로 전 세계가 한순간에 연결되는데 영호남 갈등이 말이나 되는가.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로 슬픔이 크지만, 이를 계기로 동서화합을 이루어 내는 것이 그분의 유업을 받드는 일이다."

추도식장을 지키던 정진규 충청향우회장은 "진작 이랬어야하는 것 아니냐"면서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했을 때 두 번 다 가까이서 만나봤다. 그는 한국이 배출한 거목이었다. 그 분을 어느 지역 출신의 지도자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구매일신문> 기자 출신인 박병태(62. 제14기 민주평통 호주협의회 간사)씨는 "추모식장에 모든 향우회에서 보내온 조화들이 놓인 걸 보고 감동했다. 전과 다른 모습이다.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막혔던 남북대화의 물고를 텄고, 서먹했던 동포사회도 하나로 만들어 주신 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시드니총영사관 빈소 찾은 많은 외교사절

 시드니총영사관에 마련된 김대중 대통령 분향소.
시드니총영사관에 마련된 김대중 대통령 분향소. ⓒ 윤여문

시드니 추모식은 한민족의 혼이 깃든 민요 '아리랑'과 김대중 대통령의 평생소원이었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면서 마무리 됐다. 노래가 울려 퍼지는 동안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이 무대 밖으로 떠나갔다.

이어진 저녁식사는 마치 시골 마을의 초상집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미 하나가 된 동포들이 우의를 다지는 시간이었던 것. 술도 한 잔씩 기울이면서 "늘 오늘처럼 너나들이로 살자"고 다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시드니한인회, 여러 향우회, 호주한인포럼 등의 땀과 수고가 이루어낸 감동은 컸다. 어린 아기 둘과 함께 영정 앞에 꽃을 바친 정진욱(39)씨는 "아이들과 함께 오길 참 잘했다"고 말했고, 그랜빌에 거주하는 김동일(52)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시드니는 오늘 정신적으로 통일됐습니다. 평생 동안 지역주의에 시달렸던 고 김대중 대통령께서 이 모습을 보셨다면, 아마 덩실덩실 춤을 추셨을 겁니다. 다시는 어디니, 어디니 하면서 그나마 작은 한반도를 나누지 말라고 당부하시면서요."

한편 시드니총영사관에 마련한 분향소에는 미국, 일본, 인도, 필리핀, 에콰도르, 인도네시아, 독일, 프랑스, 몽골, 터키, 중국, 칠레, 루마니아, 브라질, 동티모르 등의 총영사들이 조문했다.(조문 순)

 김대중 대통령의 초상을 그릴 예정인 이주용 화백 부부
김대중 대통령의 초상을 그릴 예정인 이주용 화백 부부 ⓒ 윤여문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화 의지를 흠모하면서 호주 이민생활 32년 동안 무던히도 가슴 졸였던 화가 이주용(66)씨. 그는 1968년부터 진보적 성향의 호주동포들과 함께 '정의평화위원회'를 조직해서 '빨갱이 김대중'을 돕기 위해서 지속적인 활동을 펼쳤다.

서슬 시퍼렇던 시절에 리영희 교수와 고은 시인 등을 호주로 초청해서 군사독재정부를 성토했다. 그러나 '사형수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독재 활동을 접고 조용히 물러앉았다. 때마침 <아태평화재단>도 해체됐다.

함경도 출생으로 서울에서 성장한 이주용씨와 부산 출신의 아내 최돈혜씨는 호남 출신 재야인사 김대중씨를 적극 지지하면서 이런저런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씨가 <아태평화재단 후원회> 호주지부장을 맡은 것은 비호남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편 이주용씨는 인물화를 그리는 화가답게 김대중 대통령의 초상을 그릴 계획을 세웠다. 이씨는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지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아태평화재단> 본부를 방문해서 벽에 걸려있던 김 대통령 사진을 호주로 가져왔다.

DJ가 대통령 당선 직전에 찍은 아주 건강한 모습의 사진이다. 이주용씨는 그 사진을 기초로 김 대통령의 초상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어인 이유인지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김 대통령 생존에 작업을 마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당일 밤 9시 경, 사진을 들고 한인회관을 찾아갔던 이주용씨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 초상을 그릴 때가 됐다. 김 대통령의 불굴의 의지가 담긴 역작을 제작하고 싶다."




#김대중#시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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