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국장을 끝낸 민주당이 다시 강경 투쟁을 다짐하고 있다. DJ가 남긴 '화해와 통합' 유지는 받들겠지만, 언론악법과 용산참사 등 모든 것을 덮고 가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24일 민주당은 최고위원회를 열고 이같은 방침을 확인했다.
국장이 끝나자마자 민주당이 강경 투쟁을 재천명한 것은 DJ가 남긴 '통합' 메시지가 이명박 정부와 여당에 의해 정략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DJ 유지를 이유로 '화해 무드'를 주도하게 된다면, 지난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장외투쟁을 계속해 온 민주당은 명분과 실리를 한꺼번에 잃게 된다.
이명박 정부-한나라당 '반전' 기회
남북 관계 악화, 용산참사, 노무현 서거,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 등으로 위기에 처했던 정부와 여당에게 DJ 서거는 역설적으로 반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DJ 서거 이후 급속히 조성된 정치권의 화해 무드가 정부, 여당으로선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 민주당은 정국 주도권을 잃을 걱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의 우려는 당장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날 오전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인터넷 정례연설에서 "(DJ 서거 이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를 향해 나가야 한다"면서 "새로운 민주주의는 대립과 투쟁을 친구로 삼기보다는 관용과 타협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국민 연설을 통해 민주당의 투쟁 방식을 '민주화 시대의 낡은 것'으로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한나라당도 거들고 나섰다. 지난 17일 여야 대표회담을 제안한 박희태 대표는 이날도 정세균 대표에게 거듭 회동을 제안하고 나섰다. 박 대표는 "이제 더 이상 (대표회담을) 거절할 명분도 없을 것"이라며 "돌아가신 김 전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고 정 대표를 압박했다. 'DJ 유지'를 내세워 민주당의 장외 투쟁 명분을 꺾고자 하는 셈이다.
민주당이 강경 투쟁의지를 거듭 다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DJ 유지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강요된 화합'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는 게 민주당 내 중론이다.
우상호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민주당은 DJ 서거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통합과 화해의 분위기를 환영한다"면서도 "하지만 여야 혹은 정부-국민 사이에 놓여있는 수많은 갈등과 현안이 다 없던 일처럼 치부되는 것은 대단히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DJ 서거 이후 통합 분위기로 수많은 국가현안, 사회적 갈등사안이 일방적으로 망각돼서는 안된다는 게 당 지도부의 문제인식"이라고 덧붙였다.
우 대변인의 말처럼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에서는 DJ 서거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특히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앞장 서 '통합과 화해'를 외치는 데 대한 반감이 크게 일었다.
안희정 "전직 대통령 자결 이르게 하고 무슨 화합이냐"
안희정 최고위원은 "DJ 서거를 놓고 화합과 통합을 말하는데, 이 이야기를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말하면 안 된다"며 "(이 대통령의 화합 요구는) 경우 없는 말씀"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토끼몰이 하듯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더럽혀 자결에 이르게 하고,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던 김 전 대통령의 노환을 방조했던 이 정부가 화해와 통합을 말하는 것은 정말 가증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영길 최고위원도 "이 대통령이 화합과 통합이 우리 시대 정신임을 강조했는데 진정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며 "당장 7개월째 해결 안 되는 용산참사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정도 문제도 해결 못하고 통합을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거듭 요구했다.
김진표 최고위원 역시 "이명박 정부가 경제정책과 국정운영의 큰 기조를 바꾸는 결단이 있어야만 진정한 화해와 용서, 통합이 있을 수 있다"고 못박았다.
정세균 대표는 "DJ 유지는 정치적 통합"이라고 말하면서도 정부, 여당에 손쉽게 협력하지만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DJ 유지를 받들면서도, 지금 제1야당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겠다"고 말해 변화된 국면에 대응할 새 계책을 마련하겠는 의지를 밝혔다.
민주, 중앙당 등 DJ-노무현 사진 비치하기로... '통합과혁신위' 금주 출범
민주당이 DJ 서거 이후 정국에 대응하기 위한 첫째 전략으로 택한 것은 민주개혁진영의 통합이다. 당 안팎에 흩어져 있는 친노세력을 규합해 명실상부한 'DJ-노무현' 계승 정당으로 입지를 굳히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번 주 내로 당내에 '통합과 혁신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통합과 혁신위원회의 핵심 임무는 이미 신당 창당을 선언한 일부 친노세력을 끌어안는 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도, 신당에도 합류하지 않은 한명숙,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장관 등도 영입 대상 1호다.
안 최고위원은 "DJ-노무현 지지자를 결합시키고 이명박 정부 들어 새롭게 등장한 촛불시민주권 세력을 합쳐야 후퇴하는 민주주의 역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밖에서 맴도는 친노 세력에게 결집을 호소하는 메시지로도 들린다.
서거한 두 전직 대통령의 적통이 민주당임을 확고히 하는 작업도 서두르고 있다. 민주당은 중앙당 및 각 시도당에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 두 정치인의 유지를 계승하는 정당임을 드러내기로 했다.
오는 27일 민주정책연구원 개원 1주년 기념식에는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교수, 한상진(서울대) 교수 등이 강연자로 나서 DJ 정치철학 계승 방안을 조언할 예정이다.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25일 DJ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가를 방문해 추도행사를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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