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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씨(40·남)는 평소 아내 ㄴ씨와 돈 문제로 자주 다투었다. 이날도 밤 11시가 넘도록 부부는 심한 말다툼을 벌였다. ㄴ씨가 싸움을 끝내기 위해 "바람 좀 쐬러 나가겠다"며 자리를 피하려 하자 ㄱ씨의 분노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ㄴ씨에게 발길질을 하는 등 폭력을 사용했던 것이다.

ㄴ씨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바로 친정식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전화 연락을 받은 ㄴ씨의 부모와 오빠 ㄷ씨가 집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2시. 여동생의 처지를 보고 화가 난 ㄷ씨는 ㄱ씨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앙갚음했고, 다른 식구들도 가세한 상황이 되었다. 급기야 ㄱ씨와 ㄴ씨 쪽은 서로 맞고소하기에 이르렀다.

부부싸움이 양쪽 집안의 폭력 사건으로 비화한 사례이다. 사건 직후 경찰서에 낸 고소장이 이들의 인생에 미친 영향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한밤 부부싸움, 맞고소가 가져온 결과는?

이들 5명(ㄱ,ㄴ,ㄷ씨와 ㄴ씨의 부모)은 먼저 경찰·검찰 수사를 받게 된다. 때로는 가해자로, 때로는 피해자 자격으로 조사를 수차례 받았다. 서로 진술이 맞지 않아서 대질신문도 벌였다. 그렇게 반년이 훌쩍 지나갔고 검찰이 ㄱ,ㄴ,ㄷ씨 세 사람을 기소하면서 사건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이들은 다시 피고인석과 증인석을 번갈아가며 법정에 섰다. 7차례 재판 끝에 폭행사실이 인정된 ㄱ씨와 ㄷ씨는 벌금형을, ㄴ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 발생 후 판결을 받기까지 무려 1년 2개월간 이들은 송사에 휘둘렸다. 양쪽 다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ㄴ씨의 사건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ㄴ씨가 폭행에 가담했는데도 무죄를 선고했다"며 검사가 항소하는 바람에 2심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것이 아주 특별한 사례일까. 그렇지는 않다. 서민의 애환이 담긴 포장마차 안의 풍경을 떠올려보자. 옆 자리 손님과 사소한 시비 끝에 주먹다짐까지 가는 걸 자주 볼 수 있지 않나. 이들이 맞고소를 한다면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폭행 사건을 두둔하거나 덮어두자고 말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부부간의 다툼이 이렇게까지 번진 것이 바람직할까. 만일 양쪽 다 고소하지 않고 마무리지었더라면, 아니 고소했더라도 판결이 나기 전에 서로 타협점을 찾았더라면 일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단순폭행은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 법원도 유죄판결을 할 수 없다. 이보다 더 무거운 상해죄라고 해도 서로 원만하게 합의하였다면 재판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형사사건은 어떤 단계를 거치나

한때 기분에 따라, 아니면 홧김에 고소장을 내는 것은 삼가야 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억울하게 피해를 입어 수사기관의 도움을 얻어야 할 때가 있다. 이왕 고소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면 몇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첫째, 형사사건의 절차를 이해해야 한다.

형사사건은 보통 경찰-검찰-법원의 단계를 거친다(표 참조).

 형사사건의 흐름
형사사건의 흐름 ⓒ 김용국

경찰-검찰은 수사단계이고, 법원은 재판 단계라고 이해하면 된다. 여기서 고소장은 수사의 단서를 제시하고 범죄의 처벌을 촉구하는 의미를 갖는다. 앞의 사례에서도 만일 고소가 없었다면 수사기관은 이 사건이 일어난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수사는 대개 수개월에 끝나지만 복잡한 사건은 길게는 1, 2년이 걸리기도 한다.

수사기관은 고소 내용을 토대로 금융기관이나 관공서 등에 각종 조회를 해보는 한편, 피해자를 불러서 자세한 내용을 듣는 과정을 거친다. 그 후 피의자를 소환하여 조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작성하는 서류를 피의자신문조서라고 한다. 수사기관은 필요한 경우 피해자와 피의자를 함께 불러 대질신문을 벌이기도 한다.

수사 단계에서 마지막 결정은 검사의 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피의자를 기소할지 말지, 기소한다면 구속할지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게 할지를 검사가 최종 판단한다는 말이다. 이 단계에서 비교적 가벼운 사건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고 서류재판을 하는 약식 기소를 할 수도 있고, 그보다 경미한 사건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기도 한다.
 
법원은 검사가 기소한 내용(공소사실)과 증거를 토대로 피고인이 죄가 있는지를 가린다. 판사는 판결을 통해 유죄 피고인에겐 죄에 따른 형을 결정한다. 검찰은 다시 판결에 따라 집행절차를 진행한다. 집행이란 징역형을 받은 이는 교도소로 보내고, 벌금형을 받은 이에겐 돈을 받는 절차이다.

그런데 고소인에겐 피의자의 기소여부만 알려줄 뿐 나머지 과정은 따로 통지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고소를 했다면 검찰이나 법원의 담당 재판부를 통해 사건이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형사사건의 피해자는 법정에서 진술할 권리가 있다.

고소인이 잘 모르면 판사·검사도 모른다

둘째, 고소 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고소는 수사의 단서이고, 피해자는 형사사건에서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얘기했다. 하지만 고소장 한 장만 냈다고 해서 원하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수사기관은 1년에 수백만 건을 처리한다. 당신의 사건은 그 중의 한 건일 뿐이다. 사건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당신이다. 간혹 피해자가 시간과 날짜, 피해액수 등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유리한 결론을 내기 힘들다. 고소인이 모르는 내용은 판사나 검사도 모른다. 

따라서 사실관계를 직접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급적이면 사건을 날짜와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여 두면 고소장을 작성할 때도 편하고, 이후에 조사를 받을 때도 일관된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 절대로 피해 사실을 부풀리거나 없는 내용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유리한 증거· 증인을 미리 확보하라

이와 함께 유리한 증거나 자료를 모으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재판에서 증거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만일 부동산 분양을 받았는데 명백한 사기였다고 치자. 그렇다면 우선 계약서, 입금 내역, 그밖의 문서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놓고 계약 내용과 실제 분양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상해나 성폭행 사건이라면 폭행 사실을 알 수 있는 사진과 동영상, 진단서 등을 갖추는 것은 필수이다. 상대방이 시인한 상황이라면 진술서, 사과의 내용을 담은 전자우편이나 문자메시지 등도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증거는 꼭 특별한 형식을 갖출 필요는 없으므로 명함, 메모지, 녹취록, 사진 등 어떠한 것이라도 도움이 된다.

형사사건에서 목격자나 사건의 내막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을 설득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진술서를 받거나 나중에 참고인이나 증인으로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리한 증언을 해줄 사람 1명이 때로는 어떤 물적 증거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증거자료 수집은 고소하기 전에 어느 정도 갖추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제3자가 알기 쉽도록 증거별로 간단한 설명을 따로 붙여서 정리를 해놓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고소인도 수사기관과 법원에 나가야 한다

셋째, 고소한 사람도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

고소당한 사람은 죄가 인정되면 피의자로, 피고인으로 수사기관과 법원에 불려가게 된다.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고소한 사람이라고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다.

고소장을 내게 되면 경찰은 보통 고소인을 다시 부른다. 고소 내용을 보충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상대방이 범죄를 부인하면 대질신문도 벌인다.

경찰서에서 이런 조사를 마쳤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복잡한 사건이라면 검찰에서 다시 고소인을 부르는 때도 많다. 그뿐 아니다. 재판이 열리면 고소인은 다시 유력한 증인이 되어  증언대에 설 수도 있다.

고소인도 경찰, 검찰 조사를 받고 때로는 형사법정에 증인으로 불려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고소를 하겠다면 이런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만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고소하는 대신 당사자끼리 합의를 하거나 아예 그냥 넘어가는 편이 낫다. 

이 글을 읽고 고소가 어려운 일인 것처럼 느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고소는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이니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부른다고 해서 결코 주눅들 필요는 없다. 다만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선 사건을 가장 잘 아는 피해자의 수고도 어느 정도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형사고소, 제대로 알고 해도 늦지 않다.

형사고소에 관한 몇가지 상식
고소는 누가 어떻게 할 수 있나.
원칙적으로 범죄의 피해자(또는 법정대리인)만 가해자를 고소할 수 있다. 피해자가 사망했을 때에는 배우자나 직계친족, 형제자매에게 고소권이 있다. 고소는 피해 당사자가 한다는 점에서 제3자가 하는 고발과 다르고, 가해자의 처벌의사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단순한 범죄 신고와 차이가 있다. 고소는 말로도 할 수 있지만 서류(고소장)를 내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고소의 대상과 시기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나.
자기 부모나 배우자의 직계존속(장인, 장모, 시부모 등)은 고소할 수 없다(형법 224조). 고소의 시기는 제한이 없으나 친고죄(모욕죄, 간통죄 등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는 범죄)에 대하여는 범인을 안 후 6개월내에만 가능하다.

단, 성폭력범죄에 대해서는 특별 규칙이 있다. 즉 직계존속도 고소할 수 있으며, 강간 · 강제추행 등 성폭력 친고죄는 범인을 안 후 1년까지 고소장을 낼 수 있다. 한편, 간통죄 고소는 이혼 소송을 냈거나 상대방과 이미 이혼을 했을 때만 가능하다.

고소를 번복할 수는 없나.
형사소송법(232조)에 따르면 고소는 1심 판결을 내리기 전까지 취소할 수 있다. 대신 한 번 고소를 취소하면 다시는 고소하지 못하므로 고소 취소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가해자가 죄를 지은 것이 확실해서 고소를 했는데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았다. 너무 억울하다.
일단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서는 30일 이내에 항고를 할 수 있다. 고등검찰청에서 다시 한 번 판단을 받는 방법이다. 이마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항고기각 통지를 받고 열흘 안에 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가 있다.

재정신청이란 법원이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적정했는지를 심사하는 제도로서 기소권을 쥐고 있는 검찰을 견제하는 장치이다. 원래 재정신청은 공무원의 직권남용, 가혹행위 등의 범죄에만 적용되었으나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모든 범죄로 대상이 확대되었다.

덧붙이는 글 |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고소는 순간적인 기분에 따라 결정할 일은 결코 아니다. 허위 고소, 고발로 처벌받는 사람이 한해 2천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다음 기사는 무고죄와 고소당했을 때 대처요령에 관한 내용을 담아볼까 한다.



#고소#검찰#법원#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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