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 소속 25개 지역교육청 가운데 68%에 이르는 17개 교육청이 김상곤 교육감의 교육지표를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교육청 산하 25개 지역 교육청 인터넷 누리집을 확인한 결과다. 구리·남양주 교육청 등 일부 교육청에서는 이전 교육감의 교육지표가 명기된 공문 양식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기도 했다.
교육지표는 도교육청이 추구하는 교육의 가치를 표방하는 것으로 이를 기준으로 지역 교육청들은 교육활동 방향을 설정하는 지표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다.
17개 지역교육청, 김상곤 교육감 교육지표 반영하지 않아 김상곤 교육감은 지난 5월 주민 직선 교육감으로 취임하면서 경기 교육지표를 '더불어 살아가는 창의적 민주시민 육성'으로 내걸고 혁신학교 등 교육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전 교육감이 추진하던 '세계 일류', '명품교육' 지향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으로 교육지표를 바꾼 것이다.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꿈꾸는 교육의 상을 제시하는 표어다.
그러나 이천교육청을 비롯해 가평, 파주, 의정부, 연천, 여주, 구리·남양주, 성남, 안성, 평택, 안양·과천, 광명, 군포·의왕, 용인, 시흥, 광주·하남, 포천교육청 등 17개 지역 교육청 인터넷 누리집에서는 이를 아예 반영하지 않거나 일부만 반영하고 있었다.
이들 17개 지역 교육청에서는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글로벌 인재 육성'을 내세웠던 이전 교육감의 교육지표를 인터넷 누리집이나 교육장 인사말 등에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이천교육청의 경우 '경기교육지표'에는 김상곤 교육감의 내용을 밝히고, '이천교육지표'에는 여전히 이전 교육감의 교육지표를 설정해 놓아 현 교육감의 교육지표를 따르지 않고 있다. 도교육청과 지역 교육청의 교육지표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의정부교육청을 비롯해 용인교육청 등 문제가 되고 있는 교육청 상당수가 이와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또한 이천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글로벌 체험학습관' 역시 "글로벌 인재 육성 교육의 산실인 글로벌체험학습관이 장차 글로벌 시민이 될 여러분들에게……"라는 내용을 담은 이천교육장의 인사말을 싣고 있어 새로 설정된 경기교육지표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었다.
황중원 이천교육청 학무과장은 "현 교육장이 8월말 정년이라 교육장이 바뀌면 전반적으로 손을 볼 것이다. 김상곤 교육감의 교육지표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교육감이 바뀐 지 100일이 넘도록 도교육청의 교육지표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가 교육장이 바뀌면 개편하겠다는 것은 옹색한 변명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취재 이후 이천교육청은 첫 화면의 교육지표 안내는 바꾸었으나 세부항목은 여전히 바꾸지 않고 있다.
연천교육청은 이전 교육감의 교육지표를 고치지 않고 첫 화면과 연천교육지표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새로운 교육지표는 반영하지 않으면서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팝업창에는 '2009희망 프로젝트 - 4대강 살리기' 안내가 실행되도록 해 놓은 것이다. 교육감의 교육지표 반영에는 소극적이지만 정부 시책에는 발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대목이다.
유기만 연천교육청 관리과장은 "담당 직원이 신경을 못 썼다. 바로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홈페이지가 새롭게 개편되었습니다'라고 안내하며 4대강 살리기 홍보 팝업창은 만들어놓고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난 교육감의 교육지표는 반영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분명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다른 교육청들 역시 이전 교육감의 교육지표를 구현하겠다는 교육장의 인사말을 그대로 싣고 있거나 해당 교육청 교육지표(교육시책) 등에 '명품교육', '글로벌 인재 육성' 등의 이전 교육지표를 수용하고 있었다.
고양교육청과 같이 "도덕적이고 창의적인 글로벌 문화인 육성"으로 이전 교육감의 교육지표와 현 교육감의 교육지표를 섞어 놓은 교육청도 일부 있었다.
문제가 커질 조짐을 보이자 이들 교육청은 한결같이 담당자의 실수라거나 잘 몰랐다는 말로 해명했다. 김석희 광주·하남교육장은 "새 교육감의 교육지표를 반영하든 안 하든 그게 뭐가 문제냐? 그래서 교육이 잘못됐냐?"라며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교육청 소속 전체 지역교육청의 68%에 이르는 곳이 이와 같은 일을 '실수'라고 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잘못을 솔직히 인정한 교육장도 있었다.
김광래 성남교육장은 "총무과 직원들이 홈페이지 관리를 안 해서 그렇다. 그러나 내가 제대로 검토 못한 잘못을 인정한다. 매우 창피하다. 우리교육청은 혁신학교도 도내에서 가장 많이 유치하는 등 새 교육감의 교육시책에 발맞추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교육청들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도교육청 관계자는 "새로이 설정된 교육지표를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주민 직선으로 당선된 김상곤 교육감이 내놓은 교육지표는 경기도민들의 요구를 담은 것이기도 하다. 단순한 업무 처리 지연이라면 모를까 의도적으로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저항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 도교육청 차원에서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취재 이후 시흥교육청과 같이 곧바로 수정을 한 곳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수정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희망>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