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시인의 산문집 <사람>을 손에 들었다. 시인의 글에선 가끔 어린시절의 옛 추억이나 향수를 느낄 수 있고 그런 쪽의 어떤 숨어있던 감성을 가끔 일깨워주기도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의 글에선 언제나 강물과 바람과 풀과 흙냄새 같은 자연의 냄새가 난다.
시인의 글에서는 글의 정교함이나 긴장미보다 서정성과 토속성이 묻어나고 글이 꾸밈없이 편안한 것도 작가의 글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책 제목이 '사람'이듯, 시인이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향수, 애틋한 연민이 묻어나는 글이다.
시인이 자라고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배우며 지금도 살고 있는 그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 속에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가 만났던 사람들 제1부 '아름다운 시절의 동무들'을 비롯해 2부에서는 '용광로처럼 들끓었던 열정의 시간'에 대한 기록들이며 여기서는 주로 어린시절과 젊은 시절에 그가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제3부에서는 '가르치고 배우는 내 인생의 학교'로 40년이 넘도록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의 삶,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이 배여 나온다. 그리고 그의 어린시절의 추억과 자연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제4부 '피붙이의 끈끈함'에서는 그의 어머니에 대해, 그의 학창시절,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 이웃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작가 자신에 대한 얘기가 곳곳에 숨어 있는데 그가 40년이 넘도록 초등학교 교사로 있게 된, 초등학교 교사가 된 배경에 대해, 문학에 대해 눈뜨고 문학에 입문하게 된 경위에 대해 남의 얘기하듯 담담하게, 재미있게 얘기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후 오리 방목사업을 하다 망한 뒤 서울로 도망하듯 올라가 한 달을 지냈다.
무위도식하고 있었는데 돈 떨어지고 거지가 다 된 그를 서울 친척이 차비를 주어 낙향했다고 한다. 무위도식하며 먹고 자고 지내던 날들이 몇 개월 지나 순창에 있는 동창 놈들이 동생의 자취방으로 쳐 들어왔고 동창중에 '철호'라는 녀석이 있었는데 한참을 놀다가 "야 용택아 너도 선생시험 쳐 볼래?"하고 물었던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되었다고 담담하게 얘기한다.
그는 빡빡 머리를 하고 사진을 찍고 얼마 후 시험을 쳤고 시험에 붙었다. '세상에, 내가 이 세상에 나와서 한 번도 꿈꾸어 본 적이 없는 선생이 된 것이다.'그는 이렇게 말한다. 무위도식에서 구해준 철호는 그때 선생 시험도 보지않고 그림 그리기에만 열중했다고 한다. 먼 훗날 철호의 꿈이었던 화가가 되지 못했다. 그때를 떠올리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려 인생은 절대로, 암도 모른당게"
"나는 덕치초등학교를 나왔다. 덕치초등학교를 나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순창에서 졸업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덕치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초등학교 선생이 엄청 모자라, 고등학교 졸업자들에게 시험을 보게 해서 4개월 동안 강습을 시켜 교사자격증을 주어 교사로 발령을 냈다. 그렇게 선생이 된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덕치초등학교에서만 지금까지 40년쯤 선생을 하고 있다. 지금 근무하는 초등학교를 6년 다녔고, 선생으로 40년을 근무했으니 한 학교를 46년쯤 다닌 셈이다.
세계의 모든 교사들을 다 조사해보지는 않았지만 나처럼 한 학교를 오래 다닌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상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을 받을 만한 일이라는 생각을 아주 강하게 가지고 있다. 선생은 한 학교에서 5년을 근무하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야한다. 인사규정이다. 그러나 나는 정말 다른 학교로 가기 싫다. 그래도 나는 5년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학교로 갔는데, 우리 집에서 다닐 만한 곳으로 전근을 갔다가 거기서 딱 1년만 있다가 다시 덕치초등학교로 오곤 했다."
그렇게 선생이 된 그는 40년이 넘게 교단에 있다. 그는 덕치초등학교를 나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순창에서 졸업했고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초등학교 선생이 '엄청' 모자라 고등학교 졸업자들에게 시험을 보게 해서 4개월 동안 강습을 시켜 교사자격증을 주어 교사로 발령을 냈고 그렇게 선생이 되었다. 그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덕치초등학교에서만 지그까지 40년 넘게 선생을 하고 있다.
지금 근무하는 초등학교를 6년 다녔고 선생으로 40년을 근무했으니 한 학교를 46년 쯤 다닌 셈이다. 그는 능청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세계의 모든 교사들을 다 조사해보지는 않았지만 나처럼 한 학교를 오래 다닌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상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을 받을 만한 일이라는 생각을 아주 강하게 가지고 있다"라고 말이다.
작가는 또 그가 문학에 대해 입문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그가 선생이 될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꿈도 꾸지 않았는데 선생이 된 것처럼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다는 것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물론 그저 되는 것은 없고 숨은 노력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말이다.
"우연히, 그것도 친구들 덕택에 학교 선생이 된 나는 너무 심심했다. 작은 분교였기 때문에 오전 수업이 끝나면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월부 책장수가 우리 학교에 와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사라고 했다. 그가 권한대로 나는 그 책을 월부로 사서 읽었다. 그 우연한 기회가 이번에는 나를 문학의 길로 내몰았다.
나는 그때까지 문학적인 체험이 없었다. 삶이 문학적인 체험이겠지만 문학이라는 말이 들어간 그 어떤 체험도 나에게는 학교 공부 외에는 없었다. 오직 한 가지, 내가 고등학생 때 김수영 시인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나는 그때 신문에 난 그의 시고 기사 하나만은 지금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무튼 그 월부 책 이후 혼자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박목월, 이어령, 앙드레 지드, 헤르만 헷세, 서정주 등의 글도 다 전집으로 읽었다. 나는 점점 시야를 넓혀 전주 헌책방에 가서 <현대문학>이나 <문학사상>, <심상>,<현대시학> 같은 시 전문지나 문학 전문지를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책이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책을 권하지 않았으며 그 누구도 나에게 문학에 대해 인생에 대해 세계에 대해 가르쳐주지도 대화를 나누어 주지도 않았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무구덩이 속 순무처럼 나도 그렇게 빛을 찾아 어둠 속을 캄캄하게 헤맸던 것이다. 혼자 빛을 찾아다니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나는 문학에 새로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창작과 비평>이나 <문학과 지성>, 그리고 <뿌리깊은 나무> 등의 잡지들을 헌책으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 토요일이면 전주 헌책방을 뒤지고 뒤져 눈에 띄는 책들을 사서 밤을 새워 읽었다. 그리고 사회와 역사에 눈을 떠갔다."
"세월이 흘렀다. 이 세상에서 나는 그 누구로부터도 내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문단에 나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아무도 나를 칭찬해 주지 않으므로 내가 나를 칭찬하며 글을 썼다. 내 글을 내가 객관화시킬 수 있을 때까지. 그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했다. 시를 내가 보고 내가 감동할 때까지 나는 나를 몰아갔다."
세월이 흘렀고, 그는 아무도 그의 문학에 대해, 그의 이름에 대해 말 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는 아무도 그를 칭찬해 주지 않았으므로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며 글을 썼다고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글을 객관화시킬 수 있을 때까지 멀고도 험한 길로 자신을 내몰았다고 말한다.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의 글 속엔 물냄새, 바람냄새, 흙냄새...자연의 소리와 냄새가 있다. 그가 가르치며 배우며 늘 함께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강물소리가 효과음처럼 들려오는 듯 하다. 그의 글은 가만가만히 들려주는 흘러가는 강물처럼 편안하게 숨쉬는 글이다. 이 시인의 산문 <사람>에서 그가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그가 생각하는 사람 냄새 또한 물씬 난다. 또한 그의 인생 행로가 그려져 있다.
'섬진강 물이 휘이 굽어 돌아가는 곳' 그곳에 시인의 슬프고도 기쁜 인생이 지금도 굽이쳐 흘러가고 있다. 시인은 굽이쳐 흘러가는 강물에서 은어를 낚듯 글을 건져 올리며 살고 있다. 사람 속에서 사람으로 큰 시인의 <사람>에는 그리운 얼굴들과 그의 삶을 녹여 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