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빗나갔다. 투표 전부터 투표방해를 거론하는 기사들이 심상치 않은 제주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었지만, 11%라는 투표율은 미처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제주도지사 주민소환을 지지했던 많은 이들은 예상보다 낮은 투표율의 원인으로 노골적인 관의 개입과 주민소환제도 자체의 결함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원인 하나가 누락되었다. 바로 주민 스스로의 책임과 권한에 대한 포기다.
예상할 수 있었던 최저 투표율은 32% 수준먼저 지나치게 낮은 투표율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보기 위해 지난 8월 20~21일 동안 <오마이뉴스>-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서 진행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95%의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를 살펴보자.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주민소환투표에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답한 사람은 48%, '아마도 투표에 참여할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19.7%였다. 다시 말해 이 여론조사 결과대로라면 투표율은 오차범위를 감안해서 44.9~70.8% 정도를 기록했어야 했다.
찬반의사를 묻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41.2%가 찬성, 36.4%가 반대를 택했다. 적극적인 투표의사층, 즉 앞의 질문에 꼭 참여하겠다고 답한 사람들 중에서는 67%가 찬성, 18.1%가 반대했다.
편의상 신뢰구간과 오차범위를 무시하고 이야기를 해보자. 김태환 지사 측에서는 소환 반대 의사를 '투표 불참'으로 표현해 달라고 호소하고 다녔으므로, 소환에 반대하는 이들은 투표소에 가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최소한 적극적 투표 의사층 중 소환 찬성을 밝힌 67%는 투표소에 갔어야 했다. 이렇게 본다면 적극 투표 의사층(48%) 중 67%, 즉 32.16%가 이번 투표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저 투표율이었다.
물론 적극적 투표 의사층 중 소환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모두 투표했어도, 주민소환에서 요구하는 33.3% 이상의 투표율에는 미달했을지도 모른다.(물론 '아마도 투표 참여'에 답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최소 요건 투표율은 넘어선다.) 그러나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32.16%와 11%의 차이, 즉 증발해 버린 21.16%의 존재다.
사라진 21.16%의 존재, 단지 관의 투표 방해 때문이었나?사라진 최소 21%의 존재에 대해서는 관 주도의 노골적인 투표방해를 제외하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투표당일, 소환운동본부에 접수된 부정선거 신고만 50건에 이르렀고, 동네 이장까지 동원해 투표하러 나온 주민의 신상을 파악하고, 투표소 입구에서까지 투표불참을 강요했다. 또한, 투표과정에 개입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공무원들도 총동원되었다는 지적이 줄을 잇는다.
이런 관주도의 투표방해 행위는 명백히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김태환 지사 소환운동본부는 27일 오전 11시 30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투표방해 행위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투표 무효 운동을 펼쳐 나갈 것을 선언했다. 투표과정을 볼 때, 당연한 문제제기이자 권리행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낮은 투표율의 원인을 온전히 투표방해 때문만으로 돌리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존재한다. 관의 투표방해 같은 것은 사상 첫 주민소환운동 사례였던 하남시의 경우에도 발생되었던 '이미 예상된 문제'였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모두 걸린 이번 투표에서 김태환 지사 쪽이 불법·탈법을 포함한 최대한의 투표방해 행위를 펼칠 것은 애초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혹자는 이것이 4.3항쟁의 아픔을 여전히 간직한 제주의 특성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한국전쟁 전, 가장 잔인한 살육전이 펼쳐졌던 제주에서 관이 노골적으로 투표불참을 강요한다면 쉽게 투표장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특히 투표참여가 곧 소환찬성으로 읽혀지는 반공개 투표 상황에서, 잔인한 학살의 기억이 채 치유되지 않은 제주의 특성이 낮은 투표율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타당하다. 그러나 이 역시 석연치 않다. 제주의 경우 그 참혹함에 견줄 사례를 찾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전쟁을 전후한 민간인 학살은 한반도 전역에 걸친 '공유된 경험'이다.
제주시민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 감히 말한다면, 주민의 권리를 스스로 찾고자 주민소환을 추진한 마당에, 그리고 정치적 생명이 걸린 도지사 측에서 노골적인 투표방해 활동을 펼칠 것이 어느 정도 예상된 마당에 그런 아픔의 기억은 이겨내야 했다. 만일 아직 4.3의 상처가 아물지 못했다면, 감히 관에 도전하는 행위 자체가 시기상조였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다.
주민소환제로 대표되는 주민자치운동은 관과 지역 이권세력이 결탁한 현 지방자치 체제를 근본부터 바꾸기 위한 일종의 '권력투쟁'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기존 지역지배세력의 다양한 저항과 반발, 협박과 불법이 나타날 수 있다. 민주주의가 그렇듯, 주민자치 역시 예상치 못한 희생과 위험을 무릅쓸 상황이 도래하기 마련이다.
분명한 사실 중 하나는 그런 4.3항쟁의 기억과 상처 속에서도, 관의 노골적인 투표방해와 협박 속에서도 11%는 투표장으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아마도 투표장에 달려간 이들은 그동안 누구보다 앞서 주민의 권리를 호소하고, 이런 저런 손해를 감수해가며 주민소환의 실무적 일들까지 떠맡은 이들일 것이다.
불이익이 예상되어서, 4.3의 상처가 아물지 못해서, 내용에는 동의하나 굳이 내가 나설 필요까지는 못 느껴서 투표를 포기했다면, 투표포기로 자신이 피해간 그 '예상되는 불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다시 지역 권력을 지켜낸 이들이 누구에게 그 불이익을 행사하겠는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자 했던 그 11%가 아닌가?
제주 4.3의 상처를 직접 체험하지 못한, 그리고 27일 그 험난했던 불법 투표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외지인으로서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22.16%의 존재들, 즉 김태환 지사 소환에 적극 찬성했고, 적극적으로 투표할 의사도 있었으나 다양하게 예상되는 문제로 인해, 혹은 '나 하나쯤이야'하는 마음으로 투표장으로 향하지 않은 이들은, 관의 투표방해를 탓하기 전에 겸허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무 것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한다면, 얻을 수 있는 성과란 기존 지배체제에서 흘려주는 떡고물 외에는 없다. 그래서 주민 스스로 주권자가 되고자 함이 아니었던가? 기존 지역지배체제의 특권을 파괴하고자 함이 아니었던가?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기존 특권세력들이 아무런 반발 없이 고분고분 주민들의 자치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었다.
주민소환제 투표율 개정도 본질은 아니다
주민소환제에서 명시한 최소 투표율에 대한 문제제기도 마찬가지다. 최소한 제주의 경우에는 주민소환제에서 명시한 유권자 3분의 1규정 때문으로 소환실패를 합리화할 수 없다. 그런 변명은 적극적 투표 의사층이 모두 투표장에 달려갔음에도 32.16% 정도의 투표율을 기록해 소환에 실패한 경우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최저 투표율 규정은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만일 기본 투표율 규정이 없다면 각종 관변조직과 지역 이권을 통해 주민 동원능력이 뛰어난 지역 토호 세력의 손아귀에 지역정치가 더욱 종속될 가능성을 피할 수 없다.
만일 매우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지방자치단체장이 존재한다면, 지역 이권세력과 반개혁세력에 의해 이들이 더 쉽고 편하게 소환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본 투표율 조항을 없애 11%의 투표만으로도 단체장을 소환하게 한다면 논리적으로 5~6%의 지역주민만 동원하더라도 소환이 가능한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수구세력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했던 2004년의 사태들이 민주적인 제도를 악용한 반민주적 세력들에 의해 재현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현 주민소환제도의 기본 투표율 요건은 지나치게 엄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사상 첫 주민소환사례이자 사상 첫 주민소환실패로 기억된 하남시장 주민소환 사례는 사실 '사상 첫 주민소환 성공 사례'이기도 했다. 당시 이슈의 초점이 되었던 하남시장은 31.1%의 투표율로 소환이 무산되었지만, 하남시 임문택, 유신목 두 시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은 투표율이 각각 37.59%, 37.62%를 기록해 소환이 확정된 바 있다. 또한, 2005년 제주도 행정구조 개편을 둘러싼 주민투표의 투표율은 36.7%였다.
물론 앞의 두 시의원의 경우에는 투표자 중 소환 반대 의사층이 포함되어 있어, 만일 이들이 투표하지 않았다면 투표율 미달로 소환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있을 주민소환에서도 주민소환에 반대하는 이들이 아예 투표를 거부한다면 주민소환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즉, 3분의 1투표에 과반수 찬성으로 소환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유권자의 34% 이상을 모두 소환찬성에 투표시킬 수 있어야 소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투표일이 법정공휴일이 아닌 한, 이런 상황에서 소환을 성사시키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주민소환제의 법률적 문제를 교묘히 이용한 '투표불참' 운동은 부득이한 투표포기자를 소환 반대자로 흡수하는 효과를 지니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제주주민소환운동 사례의 핵심은 투표율 요건이 아니다. 문제는, 주민자치운동을 대하는 주민들의 자치의식, 주인의식, 책임의식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객관적 입장에서 불법적인 투표방해를 감행한 행정관료들보다 투표를 포기한 주민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민소환에 임하는 제주주민들은, 특히 제주도지사 소환에 찬성했던 이들은, 좀 더 높은 주인의식을 가졌어야 했다. 주인이 된다는 것은 새로 부여되는 권한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큰 책임을 요구한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어떤 주민자치운동도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주민자치운동의 가장 큰 적은 노골적인 관의 개입이라기보다 무임승차(free-riding)다.
포기한 자들의 몫
제주도지사 소환에 반대했지만 투표하지 않은 이들은 이번 투표 결과를 보고 후회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무임승차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똑똑히 확인했다고 믿는다. 그 결과는 주민을 무시한 정책을 밀어붙이고, 불법적으로 주민투표에 개입하고 협박한 이들이 여전히 과거와 같은 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11% 투표율에서 배운 교훈이 있다면, 이제 반성적 성찰로 다음 과제를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투표 포기자들이 할 일은 11%의 투표 감행자들을 지켜내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불이익을 예상하고 투표를 포기했다면, 자기대신 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주민들을 지켜야 한다.
그들을 지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현재 주민소환운동본부가 진행하고 있는 투표방해와 관의 투표개입문제 등의 진상규명 작업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민소환운동보다 더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주민 사이의 심의(deliberation)를 왜곡하고, 주민의 의사표출을 방해한 이들에게 엄중한 심판을 내리는 것은 제주 주민소환의 재투표 여부와 상관없이 향후 다른 지역의 주민소환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민소환운동본부 관계자들이나, 행정관료와 지역토호의 온갖 회유와 개입, 압박에도 주민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 나선 11%의 제주 주민에게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들의 실천이야말로 이 나라의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자치를 일구어갈 '아래로부터의 힘'이다.
혹시 좌절해 있을지도 모르는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 역시 '포기한 자'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