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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 25일 서울 이문동 골목시장을 찾아 떡볶이 가게에서 어묵을 먹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 25일 서울 이문동 골목시장을 찾아 떡볶이 가게에서 어묵을 먹고 있다. ⓒ 청와대

확실히 달라졌다. 유연해졌다. 'DJ 서거' 변수를 다루는 것을 보면 확연히 느껴진다. 쓸데없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인색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DJ 빈소를 찾은 북한 조문단도 만났다. 재탕이든 포장이든 친서민 정책도 제시되고 있다. 강경보수에서 중도실용, 친서민으로 터닝한 것이 '실제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MB 지지율 상승은 분명한 사실

지난 8월 25일 실시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MB) 지지도는 41.4%를 기록했다. 전달에 비하면 9.5% 포인트 상승이고, 두 달 전에 비하면 무려 15.8% 포인트 상승이다. 수직상승, 급반등이다. 청와대가 발표한 45.5% 지지도 수치를 믿든 안 믿든 MB의 지지도가 가파르게 상승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일희일비라고, '희(喜)'하는 쪽이 있으면 '비(悲)'하는 쪽이 있기 마련이다. 비판적인 입장에서야 뭐 딱히 잘했다고 쳐줄 만한 것이 선뜻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지지하던 입장에서도 어쩌면 그렇게나 많이 올랐나 하는 '반가운 의구심'을 드러낼 지도 모르겠다. 어떤 입장에서 보든 팩트(fact)는 팩트로 인정해야 한다. MB 지지도 상승은 분명한 팩트다. 문제는 그 원인을 짚어보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흐름이 바뀌거나 추세가 달라지면 불가피하게 그 원인을 따져보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것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식으로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검증할 수는 없다. 변화가 있었던 시기 중에 이런 저런 사건 등을 뒤져보고, 여론반응이 좋은 것으로 조사된 것이나 긍정적일 것으로 추정되는 요인으로 설명하게 된다. 현상해석이나 결과분석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꾸준하게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일정한 패턴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 것에 비추어 요인을 판별해야 한다. 어쨌든 MB 지지율 상승의 원인으로는 먼저 아무래도 중도실용이나 친서민 행보와 같은 MB 정권의 공세적 대응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에선 알맹이 없는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여론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 MB의 친서민 정책에 대해 44.3%가 기대감을 표시했다. 특히 서민이라 할 수 있는 중졸 이하, 50세 이상, 소득 150만 원 이하 층에서 특히 높은 기대감을 표시했다. 60%가 넘는다. 중졸이하, 50세 이상, 100만원 미만 층에서 전달 대비 각기 22.4%, 13.6%, 16.4% 포인트 지지율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동아시아연구원(EAI) 8월 조사도 같은 흐름이다.

최근 MB 행보 중에 가장 잘했다고 보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30.1%가 친서민 정책 발표를 꼽았다. 여러 가지 행보 중에 가장 높은 수치다. 세대별로는 40대에서 친서민 정책을 1순위로 뽑았다. 주부층에서도 친서민 정책이 가장 높게 나왔다. 이처럼 친서민 정책이 그 내용과는 무관하게 정책효과를 낳고 있다. 여기에다 주가 상승 등 나아지는 경제지표, MB가 최근 보여준 시장 등 민생현장 방문 '그림'도 작용했다. 정책과 이미지가 잘 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MB 지지율 상승 이끈 요인은?...1)친서민 정책 2)DJ 국장 수용

 지난 23일 여의도 국회에서 엄수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에서 장남 김홍일 전 의원, 부인 이희호씨,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묵념을 하고 있다.
지난 23일 여의도 국회에서 엄수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에서 장남 김홍일 전 의원, 부인 이희호씨,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묵념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단

MB가 잘한 일 중에 2위로 꼽힌 것이 고(故) 김대중 대통령 국장 수용이다. 26.8%다. 호남에선 51.3%로 조사됐다. MB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20대와 학생층, 진보성향에서 DJ 국장 수용을 가장 높게 평가했다. 3위로 꼽힌 것이 18.7%의 북한 조문단 접견이다. 결국, MB의 지지도 상승에는 단순히 보수층의 결집이나 영남권에서의 강세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지지기반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데이터로는 잡히지 않지만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지역주의다. 최근 지역주의를 추동하는 유의미한 사건이 없지 않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보인다. 지난 5월 23에 노무현 전대통령이 서거했다. 노 전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에 일생을 걸었다. DJ 대통령은 8월 18일 서거하기 전에 37일간 병원에 있으면서 뉴스의 초점이 됐다. DJ는 지역주의란 단어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8월 15일 MB는 광복절 경축사에서 지역주의 해소를 언급했다. 일단 이걸 기억해 두자.

주지하듯, MB는 지난 대선에서 수도권에서 압승했다. 대선 역사상 1963년 5대 대선에서 윤보선 후보가 수도권에서 61.1%를 얻은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KSOI 8월 조사에서, MB 지지도가 저점이었던 6월에 비해 많이 오른 지역은 강원·제주다. 31% 포인트 올랐다. 그 다음은 19.9% 포인트 오른 PK다. TK에서도 17.7% 포인트 상승했다. 이 결과와 앞의 사건 흐름을 연결시키면 이렇게 된다. 결국 노 전대통령 사망 이후 DJ 국장까지 국면에서 잊혀졌던 지역주의란 단어가 새삼 환기되면서 지역정서가 조용히 일어났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번 KSOI 조사를 보면, 수도권에서도 MB 지지도가 많이 올랐다. 6월 대비 서울은 15.3% 포인트, 경기·인천에서 15.9% 포인트 올랐다. DJ 국장 수용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는 호남에서 12.6% 포인트 올랐으니, 수도권의 상승폭에 대해서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허나 충청권이 고작 5.3% 포인트 오른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친여성향, 보수성향, 지역정서 등으로 설명이 되는 다른 지역과 달리 수도권의 상승은 다른 맥락이다.

지난 대선을 전후한 EAI 패널조사 자료를 분석한 강원택에 따르면 수도권에 거주하는 호남이나 충청 출신들은 호남에 거주하는 호남·충청인들보다 MB를 훨씬 많이 지지했다. 예컨대, MB에 대한 지지에서 호남 거주자는 13.8%, 충청 거주자는 45.9%인데 비해 호남 출신의 비호남 거주자는 27.2%, 충청 출신의 비충청 거주자는 61.5%였다.

수도권에서 MB 지지율이 상승한 비밀은 '신지역주의'

정책 수요도 좀 달랐다. 충청과 호남 거주자는 선거이슈 중에서 고용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으나, 비충청·호남 거주자는 부동산 문제를 제일 높게 쳤다. 이것은 '출신'지역에 따른 지역주의가 아니라 '거주'지역에 따른 지역주의가 등장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여기에 수도권에서의 MB 지지율이 상승한 비밀이 있다.

지역주의가 출신이 아닌 거주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신지역주의'라 할 수 있다. 구지역주의가 출신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에 좌우된다면, 신지역주의는 거주 지역을 대변하는 정책에 민감하다. 신지역주의의 핵심은 수도권이다.

강원택에 따르면 호남출신 비호남 거주자 중에서 81%가, 충청출신 비충청 거주자 중에서 86%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PK의 경우는 69%, TK는 50.4%였다. 인구, 산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이다 보니 권역별로는 정책대상 규모가 제일 크다. 수도권에 많이 모여 있는 자영업이나 비정규직, 저소득층은 특성상 정부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수도권 보수화'를 형성한 저류(底流)다. 이처럼 하나의 독자적인 이해와 정서를 갖는 지역단위로서 수도권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수도권은 민주주의에 대한 지향도 강하다. MB 정권 출범 이후 수도권은 강부자, 고소영 등 개각파동, 촛불정국, 입법전쟁, 노 전대통령 서거 등의 시점에서 전국 평균보다 낮은 MB 지지도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도권이 이탈할 만한 민주주의 관련 이슈가 없었다. 미디어법 강행처리 기억은 휴가철과 DJ 서거 때문에 묻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정부의 정책대응이 강한 소구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MB가 벤치마킹하는 클린턴 성공의 진정한 비밀은 따로 있다

 이명박 대통령 국정 지지도 변화 추이
이명박 대통령 국정 지지도 변화 추이 ⓒ 이철희

MB가 지금 취하고 있는 전략의 롤모델은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가치 어젠더'(value agenda)다. 클린턴은 최악의 언론환경, 야당의 극렬 공세 속에서 1994년 중간선거에서 대패했다. 클린턴은 끝났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런 비관 속에서 클린턴이 소생한 전략이 가치 어젠더다. 작지만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그럼으로써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지켜질 수 있는 정책들을 집중 개발·추진한 것이다. 덕분에 1996년 클린턴은 재선에 성공했다.

사실 선거라는 것은 부득불 포퓰리즘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선호와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을 약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당 지지도나 이념정향이 공고화되지 못한 상황이라면 포퓰리즘의 비중은 더 커진다. 또 대통령 직선제의 경우 제도의 특성상 이런 성격이 더욱 강화된다. 따라서 나쁘게 볼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진정한 변화로 나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8월 KSOI가 화합과 통합을 위해 MB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야당 등 정치적 반대진영과의 적극적 대화가 30.1%, 경제정책 기조 변화가 24.5%, 미디어법 강행처리 등 그간 국정운영에 대한 사과가 20.7%였다. 선거구제와 행정구역 개편 등 정치개혁은 14.5%, 인사정책 변화는 7.9%였다.

조사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MB더러 현실 정치세력과 대화하고 타협하라는 것이다.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시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자감세나 재정적자 등 경제정책의 틀을 바꾸라는 것이다. MB의 변화가 이러한 정도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현재의 상승세는 거품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만약 나아간다면 취임 초기의 42~48%를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기왕에 클린턴을 벤치마킹하고 있으니 MB정권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클린턴의 가치 어젠더가 먹혀든 것은 중도실용의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클린턴은 자서전에서 1996년 8월 현재 자신이 이룩한 성적에 대해 전당대회에서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실업과 인플레이션을 합산한 비율은 28년 만에 최저였다. 새로운 일자리가 1000만 개 생겼고, 1000만 명의 최저임금이 인상되었다. 2500만 명의 미국인이 케네디-카세봄 법안의 혜택을 받았으며, 1500만 명의 미국 노동자가 세금감면을 받았다. 또 1200만 명이 가족휴가법을 이용했으며, 1000만 명의 학생이 학생직접대출 프로그램으로 돈을 절약했다. 그리고 4000만 명의 노동자가 더 안정된 연금을 받게 됐다."

케네디-카세봄 법안은 일자리를 옮길 때에도 건강보험을 가져가게 해주고, 기존의 건강문제를 핑계로 보험회사가 보험 가입을 거부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가족휴가법은 본인이 아프거나,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새로운 자녀가 태어났을 때 등의 경우에 1년에 12주까지 휴가를 갈 수 있게 하는 법이다. 이 밖에도 클린턴은 생활보호대상자를 60% 줄이고, 아동 빈곤도 25% 내렸다.

이처럼 실질적인 변화가 있었기에 클린턴이 성공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MB가 보여준 정책은 그 양이나 질 모두에서 클린턴의 그것에 비견될 수 없다. '새 발의 피'다. 그렇다면 MB의 중도실용이나 친서민 정책은 조만간 벽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친서민 정책과 부자감세나 4대강 사업, 친기업 정책은 서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때 MB가 어떤 선택을 할까? 지금 지지율이 오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답은 쉽고도 간단하다. 과연 그가 그런 상식을 발휘할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서울에 온 북측 특사 조의방문단 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악수를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서울에 온 북측 특사 조의방문단 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악수를 하고 있다. ⓒ 사진제공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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