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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파른 언덕에 빌라들이 모여있는 구리시의 한 동네.
가파른 언덕에 빌라들이 모여있는 구리시의 한 동네. ⓒ 한미숙

"조금만 늦었어도 이사 못 오실 뻔 했어요. 지금 사시는 집에 요즘 전세금이 1500(만 원)이나 뛰었어요. 서울에서 오는 사람들이 부쩍 많은데 집이 없어요 집이…."

장보러 가는 길에 차 한 잔 생각 나서 동네 부동산에 들렀다. 우리가 이사 올 때에 전셋집을 연결해주고 좋은 이웃으로 지내며, 길을 오갈 때마다 한번씩 들러 수다를 떨기도 하는 곳이다.

지난 7월 초에 우리는 대전에서 경기도 구리시로 이사왔다. 구리는 아이들이 어릴 때 2년 정도 살아본 적이 있어서 그리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현관문만 닫으면 온전히 우리만의 공간이 되는 아파트와 달리, 여러 가구가 한 집에 모여 살며 사방으로 들려오는 소리들로 이목을 조심스레 살펴야 하는 주택의 구조는 한동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동네는 새벽부터 일어나 일터로 가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밤 12시 전에 골목이 벌써 조용해진다. 동네는 오래된 양옥들이 옹기종기, 아니 다닥다닥 붙어 있다. 게다가 거의 3층집이다. 원래 2층집이었는데 누군가 옥탑방을 만들어 세를 준 것이 시작이었던지 너도나도 주인세대들은 옥탑방을 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동네 전체가 3층집이 되었으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곳만 해도 반지하에 갓난아기가 있는 신혼부부와 혼자 자취하는 총각, 두 세대가 산다. 또 2층엔 주인이 살고 옥탑방에는 맞벌이 하는 젊은 부부가 살고 있다. 그래서 한 집에 다섯 세대가 살고 있는 것이다.

 언덕길 한편에 자투리 땅을 이용해 꽃과 토란대를 심었다. 뉴타운 사업이 진행되면 이런 모습도 사라질 것이다.
언덕길 한편에 자투리 땅을 이용해 꽃과 토란대를 심었다. 뉴타운 사업이 진행되면 이런 모습도 사라질 것이다. ⓒ 한미숙

 '푸른 것들'과 흙이 새삼 귀하게 보인다.
'푸른 것들'과 흙이 새삼 귀하게 보인다. ⓒ 한미숙

"그때 요 근처 ** 아파트 한 번 보신 적 있잖아요. 그게 지금 전세로 얼만지 알아요? 글쎄 1억이 넘는다니까요. 이 동네가 그렇게 비싸지 않았어요. 근데 전세가 너무 달리네요. 오려고 하는 사람은 많은데 집이 없으니까 값만 계속 올라가고 있어요."

 당첨! 전셋집 구하셨군요. 좁은 골목길에 이삿짐을 부리는 사다리차.
당첨! 전셋집 구하셨군요. 좁은 골목길에 이삿짐을 부리는 사다리차. ⓒ 한미숙

 전깃줄이 얽혀있는 주택가. 전봇대에 걸린 '못받은 돈' 받아준다는 광고가 있다.
전깃줄이 얽혀있는 주택가. 전봇대에 걸린 '못받은 돈' 받아준다는 광고가 있다. ⓒ 한미숙

구리로 이사 올 때만 해도 부동산 아줌마가 이렇게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5월 중순에 집을 보기 시작해서 6월에 계약을 했으니 그때만 해도 이런 분위기는 짐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서울 외곽지역 특히 구리나 남양주로 이사하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서울 강남쪽에서 전세물량이 부족하고 가격이 계속 오르니 그나마 거리상 가까운 이곳이 주목을 받은 것이다. 우리가 봤던 **아파트 전세금은 두 달 사이에 2000(만 원) 이상이 오르고 지금도 오르고 있다.

자고 나면 널뛰기하듯 오르는 전세금에 문득, 불안하고 조급해지는 마음은 전세를 살고 있는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오르면 지금 당장 무리를 해서라도 대출을 받거나 빚을 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급박한 심정이 된다. 그러나 그런 조급함으로 너도나도 돈을 빌려 집을 샀다가 거품이 빠지면서 금융위기가 온다면 그땐 또 어떡할까? 서민들은 빌린 돈의 원금과 이자를 고스란히 떠안고 어쩌면 평생을 그 돈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 송고



#구리시#뉴타운#재개발#전셋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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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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