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제중원1 이기원 지음. 삼성출판사
제중원1이기원 지음. 삼성출판사 ⓒ 윤석관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를 말하는 것일까? '제중원'에서는 의사를 세 가지로 나누어 분류하면서 우리에게 자세히 일러준다.

 

소의치병 : 소의는 병을 고치고, 중의치인 : 중의는 사람을 고치며, 대의치국 : 대의는 나라를 고친다. 보기에도 한 치의 의심도 있을 수 없는 기준이 아닌가?

 

이 책은 우리들에게 바람직한 의사는 어떤 의사인지를 생각해보는 동시에 바람직한 인간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이 책의 제목을 '제중원'이라 지었다.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은 저자 이기원씨가 <하얀거탑>이라는 일본드라마를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각색하는 과정에서 일본과 조선이 가지고 있는 의학사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발견했고, 그렇게 조선의 기원을 찾던 중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저자는 '제중원'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박서양'이라는 백정출신의 의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모티브로 제중원의 주인공 '황정'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이 팩션(faction)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읽어야 한다. 즉, 이 책은 뼈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허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두고 역사적 사실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어떤 이가 원래는 나라를 팔아먹은 놈인데 이 책에서는 그렇게 그려지지 않는다"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 책은 단순히 우리 역사의 단면을 빌려와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진짜 역사로 착각하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의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스스로 길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백정의 아들 소근개

 

처음부터 등장하는 매맞는 소근개는 참으로 효성이 깊은 청년이었다. 몸이 약한 어머니를 위해 매품을 팔아 약값을 마련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의 효심이 단박에 나의 가슴에 전달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품뿐일까? 그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것이 백정에게 있어서 혼을 파는 행위인 밀도살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그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담보로 큰일을 벌이지만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숨을 거두고 그는 그대로 쫓겨 다니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소의치병'. 병을 치료할 줄만 아는 작은 의사를 만난다. 그 의사는 다름 아닌 어머니의 병을 수술해준 와타나베였다. 그는 소근개가 업고 온 어머니를 수술하지만 100냥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술비를 요구한다. 그리고 수술비가 여의치 않은 상황을 알고 나서 치료를 거부한다. 얼마나 야비한 인간인가? 이거 완전 납치범이잖아? 목숨줄을 틀어잡고 돈을 요구하다니….  저런 파렴치한이 어디 있을까? 소근개만 분노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 역시 와타나베의 비열함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황정과 백도양

 

부적절한 인연으로 인해 만나게 된 소근개(황정)와 백도양. 시간이 흘러서 그들은 의학이라는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료가 되고, 그렇게 서로 부딪히면서 대립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함에 있어서 신여성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진 당찬 여성 유석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유석란에 대한 애정라인은 이 소설에서 크게 부각되기는 하지만 주인공들 사이의 직접적인 애정행각(?)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시선들의 레이저와 레이저로 인해 후끈 달아오르는 공기의 변화로 인해서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이와 같은 밀고 당기기가 훨씬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조선인 최초의 의사가 되기 위해 황정과 백도양은 서로 대결을 벌인다. 물론 유석란을 차지하기 위한 대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인자가  되기 위한 대결임에도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제중원에서 조수 일을 하고 있던 알렌과 황정. 그리고 나중에 제중원에 입성하게 되는 헤론과 백도양의 사랑과 성공의 대결구도가 재미있게 그려진다.

 

제중원2 이기원 지음. 삼성출판사
제중원2이기원 지음. 삼성출판사 ⓒ 윤석관

하지만 반전이 등장한다. 짐작했던 것처럼 황정이 가지고 있던 백정이라는 신분은 그가 의사가 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방해물로 작용하는데, 그러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이 어머니를 잃고 밀도살을 한 이후에 각자의 길을 걸어갔던 아버지였다.

 

다리 한쪽을 절단해야 할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병원을 찾은 아버지를 불러세우고 그에게 수술을 권유하면서도 차마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황정.

 

멀리서 아들을 지켜보며 아들의 성공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괜찮다고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겠느냐며 황급히 수술제의를 뿌리치고 밖으로 나가는 아버지.

 

결국 황정은 쓰러지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서 우리나라의 신분사회의 모순인 양반과 천민의 단면이 또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황정이 부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좌의정 딸의 수술과정에서 빚어진 유교사상의 굴레는 또 한 번 우리에게 남녀관계에 대한 조선시대의 편협한 시각이 잘 드러나도록 그려진다. 

 

결국 황정은 '제중원'에서 쫓겨나고 밀도살했던 과거까지 드러나게 되어 죽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그런 황정을 살리는 것은 바로 황정이 제중원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행했던 중의치인의 덕이 가장 컸다. 개인적으로 백도양을 지지했던 헤론 원장은 마지막 순간에서 황정을 인정하는 부분에서, 사실 황정이 쫓겨나고 헤론이 황정을 지지하게 되는 과정 사이에 별다른 설명 없이 갑자기 넘어가는 것이 '옥에 티'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로 제작할 때는 아마도 마마환자의 치료과정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황정과 백도양이 행했던 방법을 앞에 두지 말고, 헤론이 황정을 지지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로 부각시켜서 이야기를 전개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도양이 마마의 예방을 위한 실험대상으로 하인들을 이용하여 천연두를 접종했던 것과는 다르게 황정은 소년이 충분히 마마를 이겨낼 수 있도록 약하게 만들어서 충분히 이겨낼 수 있게끔 접종했다는 것에서 둘 사이의 차이점은 드러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치료했던 와타나베가 황정을 선택하여 수술할 때 백도양이 느끼게 되는 황정과의 차이점은 바로 의학적인 손재주로도 극복하지 못하는 본질적인 것임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황정과 도양은 암 조직을 떼어 내는 데 서로 다른 수술관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도양은 암 조직을 크게 떼어 내는 스타일이었다. 따라서 수술 시간이 단축되어 환자가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이로운 점이 있다. 하지만 출혈이 많고 조직에도 손상이 간다는 단점이 있다."

 

"황정은 어떻게 하면 암 조직만 떼어 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듯했다. 이는 개복 시간이 길어 환자의 회복이 더딜 수 있지만, 반대로 다른 조직이 덜 상하기 때문에 출혈이 적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꼼꼼하지 않으면 암 조직을 완벽하게 제거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황정은 매우 꼼꼼하게 수술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이라면 과연 어떤 사람에게 수술을 받으시겠습니까? 아마도 이렇게 물었을 때, 백이면 백. 황정에게 수술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수술 스타일을 보면 그 사람이 환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잘 알 수 있을 테고, 그것은 처음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의치병의 단계에 있는 의사라면 무미건조하고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투와 무조건 검사부터 해보고 판단해보자고 할 것이다. 환자의 경제적인 입장을 생각해보지도 않고 말이다. 그렇게 찍어볼 것은 다 찍어보고 난 후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역시 XXX이네요. 어이 간호사 이분 수술날짜 잡아드려."

 

하지만 황정과 같은 중의치인의 단계에 있는 의사라면 보다 꼼꼼히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몇 가지 의심 가는 부분에 대해서 환자에게 상세히 일러주고 난 뒤에 거기에 필요한 검사항목만을 실시하도록 할 것이다. 그렇다고 환자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아니고, 최대한 안심시키고 완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면서 이야기 할 것이다.

 

대의치국이 바로 의사의 길

 

'제중원'에서 조선의 상황은 점점 더 서구의 열강과 청나라와 일본의 주도권 싸움 속에서 혼란 속으로 치닫게 되고, 을사조약으로 인해서 결국 그 주도권은 일본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전국 각지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고, 우연히 그들의 치료를 하게 된 황정은 치료를 행하면서 자신이 나아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저 멀리 만주 벌판에서 조선을 되찾기 위한 수많은 독립군들에게 자신의 의술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실제로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박서양 의사도 그와 같은 길을 걸었다고 한다. 나는 갑자기 제중원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진짜가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우리나라 근대의 역사에 관해서 더욱 궁금증이 커졌다.

 

아마도 이 책 제중원은 우리에게 진짜 역사를 이해하려는 동기부여를 위한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의사가 되고 싶은 학생들과 현재 의료직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최소한 중의치인을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현재 병원과는 거리가 먼 나의 진로에 있어서 이 책은 조금 더 그 시대를 알고 싶은 의욕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황정과 백도양의 대립에서 그리고 있는 핵심,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함이 우선이라는 소중한 가르침은 감사히 받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제중원 1 - 이기원 장편소설

이기원 지음, 삼성출판사(2009)


#제중원#이기원#삼성출판사#단예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