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점심 무렵, 서울 서대문구청 강당에 갔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열릴 예정인 '2010학년도 대입수험생-학부모를 위한 입학사정관제도 및 수시입학 설명회' 때문이었다.
설명회를 30여분 앞두었을 무렵부터 빈 의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학부모들로 대강당은 술렁였다. 대학입시에 대한 학부모들의 치열하고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사전 참가자 접수는 300명, 그러나 500여명은 족히 되는 듯 보였다.
서대문구청 대강당에 모인 학부모들의 고민
"ㅇㅇ이 담임선생님한테 물어봤는데 입학사정관 그것 별로 신경 쓸 필요 없다던데 ㅇㅇ엄마는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신경 안 쓸 수 있어? 앞으로는 100% 입학사정관이 아이들을 합격시키고 떨어뜨리고 할 거래잖아""그런데 들어봤어? 입학사정관제도에 유리한 전략 학원들 생긴 거. 입학사정관 입맛에 딱 맞는 이력서나 자기추천서 쓰는 법, 포트폴리오 작성 이런 거 패키지로 묶어서 풀코스로 알려주는 과정이 월 350만원이라는데? 그런데 강남은 어떤가?" "그건 아무것도 아냐. 5천만 원짜리 장관상도 있다며? 5천만 원 주면 점수 따고 들어가는 장관상을 만들어 준대! 장관상 하나면 점수는 보장되는 거지"'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바로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엄마들의 이런 이야기를 듣다가 끼어들었다. 둘 다 고1 학부모, 아이들이 같은 반이라 알게 된 사이란다. 입학사정관제도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학부모 A: "일관된 점수가 아닌 아이의 적성을 중시하여 선발하는 이 제도는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공정성이 의심스럽다. 막말로 입학사정관 마음 아닌가. 입학사정관 주관으로 아이들의 미래가 좌지우지 되는 것 아닌가. 각 대학에서 평가기준이나 지침 같은 걸 제시하면 그나마 아쉬운 대로 객관적인 것을 조금이라도 기대할 수 있으련만 현재는 전혀 공개하지 않으니 공정성과 객관성을 전혀 믿을 수 없다. 때문에 지금은 절대 반대한다."
학부모 B: "선진국이 성공했다고 우리도 성공하란 보장이 없다. 걸핏하면 바뀌는 대학입시제도, 정말 골치 아프다. 경제 5개년 계획처럼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지금부터 10년 20년을 바라보고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입학사정관제도와 관련된 교육을 제대로 구축한 다음 해야지 이렇게 갑자기 시행하는 것은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대학입시를 더욱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
전혀 낯선 엄마들과 선뜻 안면을 틀 수 있는 것은 '갈팡질팡 제 갈 길을 찾지 못하는 대한민국 입시제도로부터 어떻게든 내 아이만큼은 승리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학부모의 절박한 사명감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 사회자가 설명회 시작을 알렸다.
입학사정관제도를 설명하는 사람은 건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이자 건국대학교 입학처장인 문흥안 교수. 그는 입학사정관제도 도입에 앞서 이 제도 연구에도 관여했다고 밝혔다.
"입학사정관제는 기존의 입학전형에서 학생부와 수능 및 대학별 고사(논술고사 등) 등의 학업능력 중심으로 선발하던 전형에서 벗어나 학생부 비교과 영역을 포함한 서류(자기소개서 등)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선발하는 제도를 말한다. 따라서 입학사정관제는 학업능력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다른 잠재적인 능력이나 본인만의 특기나 장점이 있을 경우 유리한 전형이다. 입학사정관제는 2008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 등의 일부 대학에서 부분적으로 시행한 이래 지난해에는 16개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제를 확대 도입하였다." - 설명회 자료 중쉽게 말해 기존처럼 수능이나 내신 성적으로 수험생들을 일렬종대로 세워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각 대학이 지명하는 입학사정관이 지원자의 여러 가지 서류(교사추천서, 자기추천서, 포트폴리오 등)들을 종합적으로 검토 평가하여 신입생의 잠재력을 판단, 신입생을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장점 강조한 입학사정관제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라디오 방송 연설에서 "임기(2012년) 안에 100% 가까운 대학이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학생들을 선발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확대시행을 적극 강조했다. 또 지난 7월 24일 괴산고등학교를 방문, 입학사정관제의 장점만 내세우며 적극 홍보했다.
대통령의 이런 말과 행동 때문인지 대학들은 입학사정관제도에 의한 신입생 선발은 올해 대폭 늘었다. 지난해에는 전체 4년제 대학 정원 35만 명 가운데 1% 남짓한 4555명을 선발했고, 올해는 47개 대학에서 2만 2천여 명(인터넷 일부자료는 2만 6백여 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전체 4년제 대학 정원의 6%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2010년에 10명중 6명이 입학사정관제도로 선발될 거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추세대로라면 대통령의 방송연설처럼 2012년에는 100% 가까운 확률에 근접한다는 이야기다.
선발 인원이 대폭 늘었으니 입학사정관도 그에 맞춰 대폭 늘어야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작년 203명에서 올해는 360명으로 157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나마 정규직이 아니라 대부분 계약직이란다. 때문인지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입학사정관'이란 단어를 넣고 검색을 하면 이들을 양성하는 학원들이 수도 없이 검색된다. 어쨌거나 이처럼 턱없이 부족한 입학사정관들이 아이들의 잠재력을 제대로 발견할 수 있을까?
아울러 함께 검색되는 것은 입학사정관제에 유리하게 대학입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주겠다는 입시학원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입학사정관제도가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을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앞에서 두 엄마의 대화중에 나온 350만 원짜리 패키지 학원들도 있고 심지어는 1천만 원짜리 과외도 있다는 소문이다. 그런데 이런 소문은 틀린 것이 아닌가보다. 이날 문 교수의 입학사정관제 설명 가운데 "올 여름방학 때 고민이 컸을 것이다.…1000만원만 내면 입학사정관 입맛에 맞게..."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잠재력을 보고 뽑겠다고? 그게 가능해?"
이날 문 교수는 학부모들이 가장 우려하는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해 "각 대학의 입학사정관 자신의 얼굴이 걸려있어 학부모들의 우려처럼 입학사정관 주관대로 선발하지 않는다. 입학사정관이 모든 과정을 관여하는 것도 아니고 일정 테두리 안에 든 학생들을 선발, 담당교수와 함께 최종결정을 한다"며 한국형 입학사정관제도를 설명했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의 객관성은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학부모들도 의문이 들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학부모 C: "말만 학생들을 수능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거지 결국 이게 뭐야? 그럼 이젠 일부 기득권자들의 부정입학을 아예 대놓고 합법화시키겠다는 거야?!"
학부모 D: "가뜩이나 예체능계 비리가 많은데 이젠 아예 대놓고 하자는 거야? 그나마 고등학교 선생들은 믿었는데 이젠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청탁창구로 바뀌겠네!"
학부모 E: "입학사정관제도도 결국은 기초성적이 기본이라는 이야기인데 성적도 보고 잠재력도 보고 그게 그거 아냐. 사전 서류심사를 끼워 넣으려고 공연히 잠재력 운운하는 것 아냐? 그렇지 않고서야 서류심사가 왜 필요해?
문 교수는 학교부성적은 5등급 이하로 별 볼일 없는데 입학사정관 제도로 합격한 사례와 대외활동은 좋지만 입학사정관의 눈에 들지 못해 불합격한 사례 등을 설명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입학사정관 제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려는 설명으로 들릴뿐이었다. 설명회가 시작된 지 한 시간이 넘어 입학사정관 설명은 끝났다.
문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지극히 가난한 난 무척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 명문입시학원이라고는 구경도 못해본 우리 아이들이 수능점수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터, '앞으로는 학생들의 내신 성적이나 논술로 학생들을 선발하지 않고 학생의 잠재력으로 선발한다'는 입학사정관제도의 겉포장에 속아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바뀌는 교육제도, 학부모들은 답답
이어서 2010년 대학입시 수시입학설명회가 이어졌다. 3분의 1가량이 빠져나가 빈 의자가 많이 보였다. 설명 중에 자리를 뜨는 사람들도 많았다. 잠깐의 시간에 옆에 있던 한 엄마와 이야길 나눴다. 아이가 고3이라 입학사정관제도 설명보다는 2010년 대학입시에 대한 것들이 더 궁금해 왔다는 그 엄마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한 학생의 사례를 들려줬다.
학부모 F: "Y는 내신 성적 5등급 이하로 공부를 못하는 애였다. 그런데 희한하게 입학했다. 그 엄마가 공모전만 담당하는 과외선생님을 하나 두고 전국의 공모전이란 공모전은 모두 참가, 수많은 상을 타고 그걸로 대학 입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입학사정관 제도가 대통령 말대로 앞으로 100% 전면 확대 되면 이런 경우는 더욱 비일비재할 것이다."(고3 학부모)
아이는 학교에 있는데 공모 과외선생님이 공모전에 대신 참가 입상을 했다는 건지, 학생 대신 공모전 작품을 써주었다는 건지, 공모전에 유리한 기술을 가르쳤다는 건지, 확인 불가, 애매하다. 그런데 그 속이야기는 어떻든 분명한 것은 우리 실정에 갑작스럽게 도입된 입학사정관제는 이런 입학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이때 가장 큰 피해자는 가난한 학생들과 그들의 미래라는 것. 또 한 엄마는 말한다.
학부모 G: "중3 엄마들도 올해는 참 힘들다. 이명박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이 제도가 함께 사라질 건지 아니면 단점을 보완하여 계속 유지될 건지 판단하여 입학사정관제도에 유리한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예전처럼 수능에 유리한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교육제도까지 바뀌는 꼴이니 …."(중3 학부모)
미국의 경우 이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100년이 걸렸단다. 일본도 이 제도를 도입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정착되지 못한 실정이다. 그런데 도입 2년, 만 1년밖에 안 된 나라에서 향후 3년에 100%, 즉 자신의 임기 중에 거의 모든 대학이 이 제도로 학생들을 선발할 것이라는 대통령의 계획과 말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위험스러워만 보인다.
입학사정관제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는 훌륭한 제도다. 그날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엄마들은 입학사정관제도를 아이들의 미래에 바람직하고 좋은 제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열이면 열, 현재는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제까지 우리의 공교육이 학생들의 창의성은 거의 고려되지 않은 점수 위주였는데 이렇게 묵살된 창의성 무엇으로 선발하겠다는 것인지, 서류심사는 왜 필요한지 도무지 정확한 기준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올해 고2인 아들은 올 초부터 체육대를 가겠다면서 여름방학 내내 외식조차 거절하면서 학교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며 운동을 했다. 학교에서 가능성 있는 학생 몇 명을 선발, 기초체력 향상 등 집중훈련을 시켰기 때문이다. 아이가 체육대를 목표로 운동중이라고 했더니 주변 사람들은 "가뜩이나 부정이 많은 예체능계 현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며 적극적으로 염려한다. 어쨌거나 내 아이도 결국 입학사정관제에 의해 미래가 결정된다는 이야기다.
입학사정관제도에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서류들이 있다. 서류 전형에 도움이 되는 경력을 만들어줄 돈도 없거니와 대학을 들어가도 등록금 일부는 대출을 받아야 가능한 입장에서 학교 선생님을 믿는 게 최선이지만, 그래도 엄마는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