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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난 8월 18일의 내 '생활일기'를 읽어보았습니다. 그 날의 일기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소개해 봅니다.

 

아직 피서철임을 고려하여 8시 20분쯤 버스 터미널에 가서 10시 30분발 버스 표를 구입하는데, 매표원 중년 여성이 내 노짱 티셔츠를 보고 반색을 함. 잠시 그리움에 젖는 표정. 내가 잠시 노짱의 '바보 정신'을 말하고 나도 '바보'로 살아왔다는 말을 하니, "바보들이 머리가 굉장히 좋대요. 자기가 손해보는 것을 잘 알면서도 손해를 본대요. 그래서 바보고, 그게 진짜 바보래요"라는 말을 해서 감동을 받음. 내가 "나도 평생을 바보로 살고, 바보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상 이 노짱 티셔츠를 입고 삽니다"라고 말하니, 그녀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임. 좋은 아침임을 실감함.

 

나는 그 날 버스 승차권을 구입한 다음 집에 오자마자 버스 터미널의 그 중년여성 매표원 얘기를 어머니와 마누라에게 했습니다.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그 매표원이 한 말과 내가 한 얘기를 마치 녹음 테이프를 틀 듯이 아주 즐겁게 읊었지요. 

 

"좋겄수. 그렇게 아침부터 기분 좋은 일이 있는 데다가, 오늘 서울 가서 딸도 만나고 아들도 만날 테니…."

 

아내는 묘한 억양으로 내 즐거운 기분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어머니도 내가 노상 입고 다니는 노짱 티셔츠가 누군가로부터 호응을 얻은 사실에 위안이 되셨는지 적이 기뻐하는 기색이었습니다.

 

"근데 그 매표원이 당신의 노짱 티셔츠를 오늘 처음 본 모양이죠? 당신이 매표소에서 버스 표를 끊은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매표원이 여럿이니까 오늘 처음 봤을 수도 있어. 또 전에는 표 끊는 사람이 많아서 바빠 가지고 챙겨보지 않았을 수도 있고…."

"하여튼 당신은 좋겄수. 애인이 또 한 명 생겼으니…."

"듣고 보니 그렇네. 오늘 또 한 명 애인이 생겼어. 어쩌면 오늘 그 사람 덕택에 태안 버스터미널의 매표원들이 전부 내 애인이 될지도 물러. 네 명인가 되지 아마…. 해간 이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애인이 많은 사람도 드물 겨."

"어련하겠어요. 노짱 티셔츠를 입구 다니는 것도 실은 애인 만드는 작업이라구 헌 양반이니께."

 

그 여성 매표원 덕분에 아내와 재미있는 대화도 나누고, 온 집안이 아침부터 더럭 밝아진 셈이었습니다.

 

그 후로 나는 버스터미널을 갈 적마다 매표소의 애인들을 보는 기분이 더욱 삼삼하고 좋았습니다. 노친의 병환 때문에 8월 22일(토) 또다시 친정을 찾은 누님을 다음날 오후 배웅해 드리면서 매표소에서 안양행 버스 표를 구입할 때도 여성 직원들의 미소가 전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더군요.   

 

매일같이 노짱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내 행동에 좀더 자신감이 붙는 것 같고…. 그러고 보니 내가 노상 노짱 티셔츠를 입고 생활한지도 벌써 한 달하고도 열흘이 넘었군요. 지난 7월 21일부터 입기 시작했으니…. 노짱 티셔츠를 입고 생활하는 동안 어느새 여름이 가고 가을의 초입에 들어서서, 다시금 세월의 덧없음도 느끼게 되고….

 

나는 지난 7월 24일 <노짱 티셔츠를 입고 저항정신을 가다듬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꽤 많은 분들이 그 글을 읽었습니다. 내가 노짱 티셔츠를 입게 된 동기(내게 노짱 티셔츠가 생기게 된 재미있는 사연) 등은 그 글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므로 다시 기록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매일같이 노짱 티셔츠를 입고 사는 기본 이유, 저버릴 수 없는 '의지'는 또 한번 소개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 글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노짱님 티셔츠를 봉하마을에서만 입어서는 안 돼. 또 노짱님 관련 행사 같은 데만 입고 가서도 안 돼. 언제 어디에서나, 노상 입어야 돼. 나도 이날까지 어지간히 '바보'로 한 세상을 살아왔는데, 자존심을 갖고 계속 '바보'처럼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바보 노무현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나도 어느 정도 바보이기 때문이고, 노무현의 '바보 정신'을 추구하기 때문이야. 이 노짱 티셔츠를 입는 것은 노짱의 '바보 정신'을 표방하고 추구한다는 뜻이야. 노짱의 바보 정신을 끊임없이 표방하고 추구하기 위해서, 민주주의 가치들이 어이없이 훼손되고 파괴되고 퇴보하는 이 시절에는 더욱 열심히 이 노짱 티셔츠를 입어야 해.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된 의지가 있기 때문에 나는 지난 8월 18일 아침 (태안) 버스터미널 매표소의 여성 직원에게도 노짱 티셔츠를 입는 이유와 의지를 간명하게 표현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동안 나는 두 벌의 노짱 티셔츠를 번갈아 가며 참 열심히 입었습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입었다가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벗는 옷이 노짱 티셔츠였습니다. 문상(問喪)만 아니면 어디를 가든 입고 갔습니다. 성당에도, 마누라 학교에도, 우체국에도, 농협에도, 시장에도, 서울성모병원에도, 강남성심병원에도, 고엽제전우회 야유회에도, 고장의 문학회 모임에도, 용산미사에도….

 

지난해 병상생활 이후 추위를 타는 체질이 돼서 한여름에도 티셔츠 위에 겉옷을 입어야 했지만, 겉옷의 단추를 모두 풀어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서울에 가서 지하철을 탈 때는 <노짱 티셔츠를 입고 저항정신을 가다듬다>에 썼던, "노짱을 긍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망각'을 경계토록 하는 것이 되고, 노짱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왕 그런 뜻을 표하며 살 바에는 좀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었다"라는 말을 상기하며 많은 사람이 내 옷차림을 보게 되기를 원했지요.

 

그동안 여러 번 서울 출타를 하면서 노짱 티셔츠를 입고 가지 않은 날은 단 하루뿐입니다. 8월 22일 두 가지 일로 서울을 갔습니다. 내 대자(代子, 신친(神親) 관계를 맺은 피후견인의 남자)이며 문우인 이경복(태안문학회원, 수필가)씨의 여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양재동 교총회관(컨벤션웨딩홀)에 갔다가 저녁에는 내 대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명동성당으로 가서 고 김대중 토마스 모어 전 대통령님 장례미사에 참례했지요. 그래서 나는 그 날 노짱 티셔츠를 벗고 와이셔츠를 입으면서, 넥타이는 두 개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노상 노짱 티셔츠를 입고 생활하면서 특별히 불편했거나 어색했던 일은 없습니다. 단 한번 사촌형님 한 분에게서 언짢은 기색을 접했을 뿐입니다. 노친의 병환 때문에 또 한번 친정을 찾은 누님과 누이동생이 사촌오빠들을 좀 뵙고 싶다고 해서 내 차로 두 분 형님 댁을 간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둘째 사촌 형님이 내 노짱 티셔츠를 보시더니 "왜 그런 걸 입고 댕기느냐"고 핀잔 투로 한 말씀을 하시더군요.

 

옛날 언젠가 한번 술자리에서 '광주(光州)' 얘기가 나왔을 때, 내가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참하게 죽고 다치고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말을 하자, "그런 얘기할 것 읎어. 육이오 때는 더 많이 죽었어"라는 말로 단번에 내 입을 틀어막았던 분이지요. 내 노짱 티셔츠 착용을 최초로 유일하게 타박하시는 분이 사촌형님이라는 사실이 되우 섭섭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이상하게 어머니가 좋아하셔요. 어머니가 동의하시고 좋아하셔서 입는 거예요"라는 말을 하니, 사촌형님도 더는 아무 말이 없으시더군요.

 

어디를 가든 노짱 티셔츠를 입고 가는 일에 아무 부담이 없었지만, 5·60대 수십 명이 함께 하는 상조회 모임에 갈 때는 지레 위축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수구적인 관습과 사고방식의 울울창창한 밀림 속에서 막막함을 많이도 감내해 온 처지라, 어떤 충돌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되어 많이 망설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용기와 모험 쪽을 선택했지요. 다행히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고….

 

한 번은 거리에서 만난 한 후배가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이런 말을 하더군요.

"너무 광적으로 그러시는 거 아니래요?"             

 

노짱 서거 때와 49재 때, 두 번이나 봉하마을을 갔다 온 일을 지역신문에 공표했을 때도 여러 사람들에게서 직접 간접으로 들었던 말이었습니다. 또다시 그런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불현듯 안도현의 시가 떠오르더군요.

 

"안도현이라는 시인이 있어.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 받는 시인이지. 그 시인의 작품들 중에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있는데, 자네 말을 들으니까 갑자기 짧은 그 시가 생각나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그 세 구절 시가 갑자기 내 가슴을 울려."

 

그 후배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나는 또 한번 그 짧은 시를 읊어주고 나서 "사실은 그리워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서야"라는 말과 함께 씩 웃어주며 몸을 돌렸습니다. 그 후배가 그 후 어떤 느낌을 받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계절은 여름을 지나 초가을로 들어섰습니다. 늦더위도 없지는 않겠지만, 인제 점점 서늘함이 짙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곧 노짱 티셔츠도 벗어야 되겠지요. 지레 서운해지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한가지 생각을 해봅니다. 긴 팔 노짱 티셔츠가 만들어져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

 

가을용 겨울용 긴 팔 노짱 티셔츠가 만들어져 나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왕이면 '김짱노짱 티셔츠'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서로 손을 잡고, 그 잡은 손을 높이 쳐들고 밝게 웃는 모습을 새긴 티셔츠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내가 그 티셔츠를 여러 벌 구입해서, 지난 7월 내게 노짱 티셔츠를 보내주셨던 연기군 서면 와촌리의 두 분 '젊은' 할머니들께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스산하면서도 감미로움을 안겨주는 가을 초입에서 색다른 소망을 안고,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올 가을의 첫 번째 글을 맺습니다.


#김대중#노무현#노짱 티셔츠#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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