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박비향(撲鼻香)'을 내면서 촛불 정국에 대한 아픔과 원망, 분노 다 내려놓겠다. 정말 그 갈등을 놓고 화합과 소통을 위한 전도사가 되겠다."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으로 촉발된 촛불 정국의 책임을 지고 지난해 8월 퇴임한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4일 저녁 '촛불 정국 이후의 화합과 소통'을 언급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아픔과 원망, 분노"를 내려놓는 방법은 올 3월 MBC <PD수첩>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할 때와 같았다.
정 전 장관은 이날 오후 6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자신의 회고록 <박비향(撲鼻香)>(올림 출간)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뼈를 깎는 추위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들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었으리오(不是一番 寒徹骨 爭得梅花 撲鼻香)"라는 시구에서 따온 책 제목답게 그의 회고록은 그가 실패를 넘어 성공한 농업인으로 자리 잡고 장관으로 입각하기까지, 또 촛불 정국 당시의 자신이 겪은 고통을 세세하게 담았다.
정 전 장관은 이 책에서도 "촛불정국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PD수첩 제작진과 시위대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다 내려놓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PD수첩>을 고발한 것에 대해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사실대로 밝혀 역사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라며 작년 여름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이 '왜곡보도'로 인한 것이란 인식은 그대로 드러냈다.
"<PD수첩>은 쇠고기 협상에 관한 보도가 아니라 광우병에 초점을 맞춘 공포의 드라마였다"라고 강조한 정 전 장관은 <PD수첩> 제작진에게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는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언론의 자유 못지않게 책임도 중요하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출판기념회에서 선보인 영상도 회고록의 내용 마찬가지였다. 촛불집회 모습부터 시작된 영상에서 정 전 장관은 "사표를 가슴에 품고 임한 쇠고기 협상"에서 "오보로 인한 광우병 촛불 정국"에 희생된 '장군'이었다.
한승수 "사실 근거하지 않은 소문 만든 TV 때문에 정운천 장관 일찍 그만 둬"
한편,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인사들도 입을 모아 "국민들이 정 전 장관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했다"며 정 전 장관의 '중도하차'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정 전 장관과 함께 내각에서 일한 한승수 국무총리,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이만의 환경부 장관, 이영희 노동부 장관, 변도윤 여성부 장관과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 등이 내빈으로 참석했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정 전 장관을 "12척의 배를 몰고 왜군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과 같다"고 추켜올렸다.
또 "정 전 장관이 작년에 이명박 정부 초기 내각에 들어와 같이 일을 하다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미 쇠고기에 대한 소문을 만들어낸 TV 때문에 일찍 그만두고 나갔다"며 아쉬움을 진하게 표했다.
변도윤 여성부 장관도 축사를 통해 "1차 내각 때 (정 전 장관이) 특별히 고생을 많이 하셨다"며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고 정 전 장관의 진심을 국민들이 들어주셨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은 "(언론이)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리는 것처럼 반복적으로 세뇌했다"며 "촛불 시위 때 마이크 잡고 토론하겠다며 광화문에 나섰던 정 전 장관의 용기는 참으로 대단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때 친북 성향의, 사회를 보던 까랑까랑하던 여대생이 '정운천 물러가라'며 마이크도 안 줬다"며 "적군의 한가운데 선 정 전 장관의 그 기백과 자세를 볼 때 (촛불 집회 참가자들이) 지고 있다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박 사무총장은 이어 "지나가는 객도 아니고, 그 주무 장관이 이야기하겠다는데 막는 것은 이미 망가지고 패배한 토론이었다"며 "모든 혼란을 수습하는데 누군가의 책임이 필요해 정 전 장관이 나갔다"고 덧붙였다.
정 전 장관은 이에 대해 "모두들 그때 그런 일을 겪은 연대감이 있었다, 마음은 동지였다"며 감사함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