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정책이 쏟아집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습니다. 제대로 잘 닦아야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서울환경연합, 커뮤니티 '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자출사)과 함께 최근 자전거정책 중 자전거등록제에 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출사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독자 대상으로 의견을 들어보고 관련 기사를 내보냅니다. 9월 15일(화)에는 관련토론회를 마련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말] |
내년부터 자전거등록제 실시, 이웃나라 일본을 보자자전거등록제는 자전거마다 고유번호를 정해주고 그것을 등록한 뒤 관리함으로써 도난, 분실, 무단방치를 줄이겠다는 제도다. 자동차나 원동기장착 이륜차(이륜차로 줄임)를 등록하는 것과 같은 제도다. 행정안전부는 내년부터 이 제도를 실시한다고 한다.
일찍부터 자전거등록제를 실시한 일본은 자전거를 살 때 판매처에 등록비(5천円)를 내면 등록을 처리해 준다. '의무제'가 아닌 '선택제'다. 중고 자전거를 개인끼리 거래할 때도 가까운 자전거 판매처에 가서 등록할 수 있다. 만약 자전거등록증을 잃어버리면 다시 발급받아야 하고 등록증 없이 자전거를 타거나 남의 자전거를 타다가 검문을 당하게 되면 도둑으로 몰릴 수도 있다. 이런 곤란한 일을 겪지 않으려고 등록을 '해버리고 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의무제'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자전거를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았을 때는 경찰에 신고하는데 그 자전거를 찾을 확률은 아주 낮은 편이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자전거를 찾으려고 경찰력을 동원한다는 것은 경찰력 낭비다. 실제 일본경찰이 직접 자전거를 찾아나서는 일은 드물고 검문했을 때 운 좋게 도둑을 잡거나 버려진 자전거를 되찾아오는 정도가 고작이라고 한다. 이런 현실로 볼 때 도난 방지라는 측면에서 보면 자전거등록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자전거등록제를 시행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은 점 때문이다.
[문제점] 실효성 의문, 자전거 활성화 역행1) 실효성이 없다많은 사람들은 자전거등록제가 도둑을 막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 그러나 일본 자전거등록제처럼 자전거등록제로는 자전거 도둑을 막지 못한다. 자전거 도둑들에게 조금 겁은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효과는 아주 적다. 자전거등록제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자전거도둑에 대한 분노와 불안감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자전거등록제를 실시해 자전거를 되찾은, 일본의 극히 일부 사례에 지나친 환상을 품고 있다.
수십, 수백만원짜리 자전거를 도둑맞고 경찰서에 신고하러 간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각종 사건처리에 짓눌려서 피곤에 지친 경찰관들이 선뜻 자전거 도둑을 잡겠노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살인사건, 강도사건도 못 푸는 마당에 자전거라니...'라는 표정으로 살짝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자전거등록제를 실시하는 일본에서도 반응은 비슷하다고 한다.
'새로 사라'는 진심어린(?) 조언을 들었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자전거등록제를 한다고 해서 경찰이 발벗고 나서서 자전거를 찾아줄 수 있을까? 설사 경찰이 발 벗고 나선다 하더라도 도둑맞은 자전거를 찾을 수 있을까? 부품은 산산이 분해되었고, 등록번호가 찍힌 차체는 녹여지거나 압축되어서 재활용자원으로 팔린다면 무슨 수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경찰관이 검문하는 모습을 생각해보자. 경찰관이나 자전거 탄 사람이나 '못할 짓'이다. 자전거등록제가 실시된다 해도 이런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못 볼 것 같다. 자전거도둑보다 더 위험한 불법도 그냥 '융통성'으로 지나쳐 버리는 게 현실이다. 인도를 휘젓고 다니는 이륜차, 인도에 주차한 자동차는 분명 '불법'이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이런 불법들은 대부분 '융통성'으로 용서된다.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관이 지나가는 자전거를 붙잡아서 검문하고 본부와 통신해서 도난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검문을 하지 않는다면 자전거등록제는 있으나마나다. 고작해야 잃어버린 자전거를 봤을 때 그게 내 자전거라는 것을 증명하고 되찾아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장물 자전거가 거래되는 것을 조금은 막을 수 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훔친 자전거를 그대로 타고 다니거나 거래할 도둑은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효과 또한 기대할 수 없다.
자동차와 이륜차 등록 역사는 오래 됐다. 그러나 아직도 자동차 도둑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무적차량들이 돌아다닌다. 이것만 보더라도 자전거등록제가 얼마나 유명무실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자전거는 스스로 지킬 수 있고 스스로 지키는 게 당연하다. 정부나 법률로 지켜달라고 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요구이며 안일한 생각이다.
정부나 법률이 지켜줄 수 있는 것은 개인이 지킬 수 없는 것이거나 공공이익을 위한 것들이다. 이제까지 자전거를 포함한 그 어떤 사유재산도 도난방지 목적으로 정부에 등록된 것이 없다. 자전거를 등록해서 도둑을 막자는 생각은 신발을 등록해서 신발 도둑을 막자는 생각과 다를 게 없다. 자전거 다음에는 신발을, 신발 다음에는 자동차 음향기기나 네비게이션을 등록하자고 할 것인가?
2) 자전거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는 정책이다사람에 따라서는 신발이나 옷처럼 생필품이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는 자전거를 등록하라고 한다면 순순히 받아들일까? 등록을 해야 한다는 이유가 고작 도난, 분실, 무단방치 방지라면 기꺼이 이해해 줄까?
자전거등록제를 실시하면 먼저 자전거 시장부터 주춤해질 것이다. 어차피 등록할 것이라면 더 편하고 빠른 자동차나 이륜차를 타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자전거시장이 아주 활발한데 자전거등록제로 찬물을 끼얹으면 자전거가게들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자전거가게 운영자 편에서도 자전거등록제는 귀찮을 수밖에 없다. 자전거를 팔면서 등록을 해야 하는 이유까지 설명해줘야 하고 등록대행까지 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등록을 안 하겠다고 버티는 손님에게는 대책도 없을 테고 자전거를 안 팔 수도 없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3) 사생활 침해자동차나 이륜차는 범죄에 쓰일 수도 있고 세금을 걷어야 하기 때문에 등록을 하고 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자전거는 범죄도구가 되지도 않으며 세금 대상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전거등록제는 사생활 감시와 세금을 걷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비록 목적은 다르지만 범죄자에게 채우는 전자팔찌와 다를 게 없다. 어떤 목적이든 꼬리표(등록)을 달고 다닌다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4) 행정력 낭비운영, 유지비용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자전거등록비로 자전거등록제를 운영,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자전거등록비로는 등록자료를 입력하는 정도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모자라는 운영, 유지비용은 세금에서 가져다 쓰거나 따로 자전거세(?)를 걷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전거등록비에 자전거세까지 내야 한다면 아무도 자전거등록제를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금에서 갖다 써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자전거를 타지 않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내는 꼴이 된다. 운영인력과 시설도 따로 두어야 한다. 자동차등록 시설과 인원을 쓸 수도 있겠지만 그 시설과 인력으로는 힘들다. 결국 또 담당공무원을 뽑을 수밖에 없다.
5) 일본과는 환경이 다르다일본에서 타는 자전거들은 대부분 생활형, 비싸지 않고 실속이 있는 것들이다. 신발처럼 생필품이 되다시피 했다. 자전거를 훔쳐간다고 하더라도 자전거 도둑은 목적지까지만 타고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만큼 찾기도 쉽다. 경제수준을 생각할 때 자전거를 훔쳐서 타거나 팔만큼 가난한(?) 사람도 많지 않다.
한국은 다르다. 비록 생활용이라고는 하지만 일본 생활용자전거보다 더 화려하고 비싸다. 당연히 도둑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 또한 자전거를 훔치는 목적이 급해서 잠깐 타고 내버리는 경우보다는 돈이나 부품을 노리고 훔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물며 수백만원씩 하는 고급자전거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전문 도둑들이 자전거등록제를 비켜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또한 한국에서 자전거는 생활수단 또는 운동수단이기도 하지만 개성표현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주 업그레이드를 하거나 중고거래를 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등록을 하고 등록수정 또는 양도절차를 거쳐야 한다면 번거로울 수밖에 없다.
[대안] 의무등록제보다는 선택 등록제를, 제도보다는 시설을
자전거등록제는 효과도 없고 폐단이 훨씬 더 많다. 자전거등록제를 시행하겠다고 하는 행안부나 이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채 환상에 빠져 있다. 또 형평성이나 사생활 침해 문제 등 중요한 것들을 지나쳐 버리고 있다. 정부가 내세우는 녹색성장 펌프질에 들떠서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자전거 도둑을 막자는 것이다. 자전거등록제가 아니더라도 자전거도둑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다.
1) 선택적 등록제선택적 등록제로 희망자만 등록하는 것이다. 자전거 타는 모든 사람들을 검문, 검색할 것이 아니라면 의무제든 선택제든 그 효과는 다를 게 없다. 의무제든 선택제든 운이 좋아야 범인을 찾을 수 있고 등록번호를 근거로 자전거를 되찾을 수 있다면 등록자는 등록제 혜택을 보는 것이고 등록하지 않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연스럽게 등록을 할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전거등록제는 효과적으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만약 등록제효과가 없다면 등록자들도 등록을 포기하게 될 테고 등록제는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다. 처음부터 의무등록제를 강제로 실시한다는 것은 행안부가 완벽하지 않은 제도를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 요구에 따라 정책을 마련해 주는 곳이지 국민을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국민에게 강요해서는 안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바탕이다. 의무제든 선택제든 실시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다.
▲현지 조사 : 자전거등록제를 실시하는 나라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 담당 공무원이 해당 나라에 가서 그 곳 공무원이나 경찰을 만나 관련서류를 검토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담당 공무원과 찬반 양쪽 대표 그리고 전문가들과 함께 정확한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 주민들 반응과 사용실태, 정부의 추진 실태 등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연구, 분석 : 다른 나라에서 조사한 자료를 연구, 분석하여 우리 상황과 비교해야 한다.▲국민의견 수렴 : 다른 나라 사례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에는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또는 자전거등록제를 실시하지 않을 것인지 결과가 나오면 그것을 바탕으로 국민의견을 모아야 한다. 통계 대신 찬반 양쪽 토론 내용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통계조사만 가지고 다수결식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려면 적어도 한두 해쯤은 걸린다. 그저 몇 달 동안 책상 앞에 앉아서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 의견을 듣고 결정할 일이 아니다. 2) 자전거 보관시설 마련자전거를 도둑맞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자전거를 안전하게 지켜줄 보관장소가 없다는 점이다. 자전거 교통량이 많은 곳에 공공보관소를 마련해서 일정 보관료를 받고 자전거를 안전하게 보관해 주는 게 보다 현실적이다. 이것은 관련사업을 활성화시켜서 경제성장에 이바지할 수도 있다. 일본에서도 실시하는 방식인데, 이렇게 현실적인 제도는 들여올 생각을 하지 않고 폐단이 더 많은 등록제를 도입하려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과 규제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낡은 생각 때문인 듯하다.
▲국공립시설 무료보관소 설치 의무화 : 주차장을 줄이거나 없애서 자전거 보관소를 만들고 공익요원이 관리하면 된다. 차량 사용을 줄이고 자전거 사용을 늘릴 수 있다. 국공립박물관, 국공립공원(수요나 계절에 따라 사용), 국공립 체육, 오락시설, 관공서, 교육기관.▲자전거 이용자들이 일정 수 이상 있는 단체나 회사에 자전거 보관시설 설치보조.▲사설 유료 보관소 : 자전거 통행량이 많은 곳에 다른 시설보다 사설 유료 보관소 설치에 우선권과 혜택을 줌.▲안전한 자전거보관소를 설치한 업소, 업체, 단체에 세제 혜택 : 환경보존, 교통량 분산 기여금 명목자전거는 자유롭기 때문에 편리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길로부터 자유롭고
세금으로부터 자유롭고
화석연료로부터 자유롭고
환경오염으로부터 자유롭고
꼬리표(등록제)로부터 자유롭다.
가장 중요한 자유는 꼬리표(등록)으로부터 자유다.
내 마음에 드는 빛깔로 칠할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부품으로 바꿔 끼울 수 있으며 때에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팔 수도 있다. 그렇게 하는데 아무런 서류도 규정도 필요 없다. 그게 얼마나 소중한 자유인가? 그걸 모두 포기하고 효과도 거의 없는 자전거등록제를 한다는 건 슬기롭지 못하다.
자전거등록제가 자전거를 지켜줄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조금만 주의하면 도둑맞지 않는데 그걸 포기하고 굳이 자전거등록제라는 빅 브라더(Big Brother)의 손아귀로 기를 쓰고 걸어들어가야 하는가? 더구나 그 Big Brother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해 주지 않을텐데도 말이다
.(*빅 브라더 :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시작된 용어. 사회를 통제하는 국가 권력이나 사회체계)어떤 제도든 실시하기 전에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그 제도를 실시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과 잃을 수 있는 것을 저울질 해봐야 한다. 좋다는 쪽으로 결정났을 때 국민에게 알리고 설득하여 허락을 받은 뒤 실시해야 한다. 행안부는 앞뒤 살펴보지도 않고 막연한 기대와 환상 때문에 즉흥적으로 자전거등록제를 실시하려고 하고 있다. 국력낭비이다. 그나마 활성화되고 있는 자전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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