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사람이 더 이상 희귀동물이 아니다"책을 좋아하지만 주위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책을 읽는 사람은 "희귀동물" 취급을 받을 정도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서재(블로그)를 열고, 나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위안을 얻었지만, 알라딘을 떠나면 다시 책 이야기는 쑥 들어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볼 때,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큰 공적 중의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읽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오마이뉴스와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이사장 이재정)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노무현 강독회>는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기가 막히게 잘 읽어냈다. 오연호 대표기자에 의하면 강독회 공고 첫날에 60명이 다 들어찼고, 인원을 더 모집하기 위해 대회의실 벽을 허물어 100명 이상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최종 신청자는 110명이었다.
이날 개회사를 한 이재정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과 국무회의를 하던 첫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국무위원들과 청와대 뒷산을 오르며 노무현 대통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책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당신의 사상을 책으로 빗대 표현하며 국무를 논하는 모습이 선하게 들어온다. 특히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한다>(현대경제연구원)의 경우 꼭 읽어보라며 연구원에 10권을 기증하기도 했다고 한다.
첫날 인상깊었던 것은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에게 인삿말을 해달라는 점이었다. 110명이 다 인삿말을 했을 때 시간은 8시 40분, 예정시간에서 1시간 이상 지난 시간이었다. 앞으로 강독회를 하면 강사들이 말을 많이 할 텐데, 독자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갖가지 사연이 넘쳐나고 때로는 마음이 심하게 요동쳐서 달래느라 힘들었다. 기흥에서 2시간 넘게 달려온 분도 있었고, 천안에서 온 분도 있고, 아예 월차를 내거나 조퇴를 하고 온 분도 있었다. 한 공익근무요원은 경남에서 할아버지들에게 6.25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대화하다가 말문이 막혀서 야단만 듣고 왔다며 실력을 길러 할아버지들을 설득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마다 사연은 가지가지지만 한 선생님처럼 지금까지 가치관과 신념이 정리되지 않음을 깨닫고 생각의 밑천을 얻으러 온 분들이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몸소 던져준 화두가 얼마나 강력한지 노무현 대통령의 흔적을 통해서 이해를 하고 싶은 분들이 많았다.
공부하는 시민 보면서, 하늘에서 두 대통령님이 얼마나 좋아하실까
첫 번째 강사로 나온 오연호 기자는 노무현 대통령과 인터뷰하면서 느꼈던 소회 중 책에 미처 싣지 못했던 부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다. 참여정부 임기 말 청와대에서 인터뷰를 수락했을 때, 2~3시간 정도 또는 잘 해야 4~5시간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본의 아니게 2박3일 동안 하게 되었다.
"왜 저랑 인터뷰하셨습니까?"라고 묻는 질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요즘 나한테 잘한다고 기사를 쓰면 사쿠라 취급 받지? 지금 막 사쿠라가 피고 있는 거야"라며 선문답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 오연호 기자가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인터뷰한 1991년부터 19년 동안 한결같이 변함이 없는 특징은 바로 "부당한 특권"에 대한 도전의식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세상이 아무리 뭐라 해도 아낌없이 버릴 수 있는 것이 인간 노무현이다. 조선일보와 소송할 때는 민주당 대변인 시절이었다. 조선일보 배달부들이 '비빌 언덕'을 찾아 노무현 대변인을 찾았을 때, 조선일보 기자가 와서 "노무현 의원님은 이 일에서 손을 떼십시오"라고 경고했을 때, 노무현 대변인은 "조선일보 기자는 이 일에서 손 떼시오"라고 맞대응한다. 조선일보와의 평생 전쟁의 서막이었다. 당 대표 등 중역들이 모두 말렸지만 노무현 대변인은
"이런 신문사, 기자들에게 특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라는 한마디로 끝까지 소송을 진행했다. 이와 너무나 유사한 장면이 민주당 경선에서 나온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십시오."조선, 동아일보가 신문사 지분 소유 제한에 대한 의견을 철회하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굴복하지 않자 온갖 인신공격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하던 당시였다. 그 이후로 탄핵, 죽음에 이르기까지 노무현 대통령은 살아온 신념 그대로 "모든 것을 버렸다".
영원한 권력을 꿈꾼 남자,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가장 정성을 들인 분야는 권위주의 청산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권력을 4개로 구분했다. 정치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 시민권력. 다행히 1997년과 2002년 우리는 정치권력을 바꿔봤다. 하지만 단군 이래 절대로 바꿔보지 못한 권력이 바로 경제권력과 언론권력이다. 삼성 등 대자본은 북한의 김정일처럼 지독한 세습을 누리고 있고, 언론은 경제권력과 결탁해 절대권력을 만들어가고 있다. 권력의 지형이 이렇게 허약한 대한민국에서는 경제, 정치, 언론권력이 모두 짬짜미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너무 쉽게 연출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과 "지배"라는 열쇠말로 이 현상을 풀었다.
국민의 것이 아닌 권력의 사유화 과정에서 '지배'가 만들어진다. 권력을 위임하면서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선언하고, 권력의 사유화를 방지하고 지배에 저항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특징이다. 즉 권력은 위임하되 지배는 거부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단초다. 이는 권력과 지배를 분리하는 과정이다. (노무현 대통령 인터뷰 육성)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을 누가 움직이는가에 관한 권력구조에 집요하게 천착한 결론이 바로 "시민권력"이다. 정치권력이 위태위태한 냉정한 현실을 대통령으로서 깊이 체험했기 때문에 정치권력 정점의 권력인 대통령으로서 시민권력을 깊이 연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사는 이렇다.
"대통령으로 퇴임하지만, 진정한 권력, 시민권력의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노무현 대통령 퇴임사)당시 이 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오연호 기자도 100%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안연이 한숨을 푹 내쉬며 길게 탄식했다.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아만지고, 뚫고 들어갈수록 더욱 단단해 보인다. 바라보니 어느 틈에 앞에서 손짓하더니 문득 뒤에서 (채찍질하시네.) 선생님은 차근차근 배우는 사람을 이끌어가는구나. 내가 그만두고 싶어도 차마 그럴 수 없네. 이미 나의 모든 재주를 다 쏟아부었지만 (나의 눈앞에) 우뚝 서 계시는 듯하다. (또 힘을 내서) 따라가고자 하지만 어찌 해볼 길이 보이지 않네."- 논어, 안연편(해석은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사계절)을 참조함)<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을 언급한 부분을 보고 있으면, 공자의 수제자 안연이 공자를 향해 탄식한 장면이 떠오른다. 오연호 기자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을 보통으로 공부한 게 아니다. 71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며 4대국 보장 체제 등을 제시했는데, 이를 깊이 연구해봐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한다. 이 말은 노무현 대통령 당신은 김대중 대통령을 깊이 연구했다는 말이 된다. "조금 해보려고 하면 DJ의 발자국이 있었다"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소회다. 그래서 취임 3년차에 청와대 출입 기자들을 모아놓고 비공개 오찬을 연 자리에서 "DJ는 정책의 천재이자 정치의 천재다"라고 평가를 내놓았다.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을 깊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김대중 대통령을 함께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두 대통령이 함께 하늘나라로 가셨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늘나라에서 깊이 상의할 게 많아서 그랬을까. 두 분이 국민들에게 내놓고 간 필생의 화두가 어쩜 그렇게 닮았는지 지금도 가슴에 품고 다닌다.
"
깨어 있는 시민(노무현 대통령), 행동하는 양심(김대중 대통령)" 덧붙이는 글 | <노무현 함께 읽기>의 기획 후기로서 블로거뉴스, 아고라, 알라딘 등에 동시 연재합니다. 매주 일요일 첫 리뷰 기사를 올리고 나서, 독자 피드백을 포함한 포스트는 매주 화요일에 올릴 예정입니다. 목요일 강독회를 참여하고 나서 리뷰, 피드백, 강독을 포함한 후기는 금요일에 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