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 선생님.
일면식도 없는 독자의 한 사람일뿐인 제가 이렇게 불쑥 편지를 드려도 되는 것인지 잠시 망설이다가 독자의 한 사람으로 독후감을 전해드리는 것 자체야 무슨 큰 흉이 되겠나 싶어 용기를 내 편지를 씁니다.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는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 소설들은 현실과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발언했으며 생동하는 문제적 개인들을 형상화해내면서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위로했고, 그러한 울림들이 사회를 바꾸는데 기여하면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순이삼촌>이나 <마지막 테우리> <지상의 숟가락 하나> 같은 작품들이 그러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읽으면서 몸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오랜만에 나온 선생님의 소설 <누란>(창작과 비평사)을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심하게 몸살이라도 앓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모두 무겁고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선생님께서 이 시기에 왜 이런 책을 쓰신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소설의 말미에 붙어있는 '작가의 말'에는 "절망의 바닥을 천착함으로써 수면 위로 다시 솟구치기를 희망한다"고 써 놓으셨더군요. 오늘의 현실이 비관적이라는 것은, 이 지긋지긋한 도시에서의 밥벌이를 벗어나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고 푸념하곤 하는 저도 인정합니다. 그리고 비극적인 현실을 냉정하고 정직하고 마주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현실을 극복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소설을 끝까지 읽어내는 일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어쩐지 중고등학교 때 단체 기합을 받을 때처럼 막연한 죄책감을 강요당하는 것 같기도 했고, 우리 세대의 사는 꼴이 다 이 모양인가 싶어져 스스로와 주변 친구들을 돌아보게도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어쩐지 억울하고 불편한 감정도 들었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소설책을 읽으며 왜 그런 마음이 들어야 했을까요.
소설의 주인공 허무성은 1987년 6월항쟁 당시 거리시위 때 버스 위에 올라가 뛰어난 대중 선동을 했던 학생운동 조직의 핵심이었으며 그 때문에 안기부 지하실에 끌려가 고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알려진 바대로 사람을 인격이 가진 존재가 아니라 작업의 대상물처럼 혹독하게 다루는 그곳의 고문은 가혹했습니다.
허무성이 경험한 지옥은 안기부 수사실이라는 극단적인 공간이었지만, 자근자근 자의식이 짓밟힌 뒤 비로소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는 대한민국 많은 어른들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현기영의 <누란>은... |
87년 6월항쟁을 이끄는 전위에 섰던 주인공 허무성은 오랜 수배생활 끝에 검거되어 남산 지하고문실에서 김일강 등의 손에 모진 고문을 당한다. 겁똥을 쌀 지경에 이른 허무성은 끝내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과 운동조직에 대해 자백을 하고, 장학금으로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김일강의 달콤한 제안을 받아들여 일본에서 유학생을 한다.
역사를 전공한 허무성은 귀국 후 김일강의 사촌형이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고 김일강은 국회의원이 된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관계를 지속하며 김일강의 정신적 노예가 된 허무성은 자신의 무기력한 현실과 잊히지 않는 고문의 기억으로 인한 공포, 과거의 배신에 대한 죄책감 등으로 정신적·육체적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출처 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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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훈련소의 입영문을 통과하는 순간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대가리 박아!'를 감당해야 하는 군대의 경험이나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순간 똑같은 트레이닝복을 지급받고 새벽구보를 하면서 기업의 창업사를 외우며 회사인간으로 거듭나는 순간을 거치는 광경들이 바로 그러한 예들일 겁니다.
젊은 날의 이상과 가치를 포기했다고 전향서를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하는 폭력. 또 어떤 면에서는, 사적인 사이버 공간에서 한국에 대해 좋지 않게 발언했다고 사회에서 퇴출당한 아이돌 가수의 경우처럼 사회 통념이나 상식과 다른 지향이나 가치관을 발설하는 순간 감당키 어려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들도 허무성이 마주했던 지옥과 크게 다른 게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소설의 출발점인 안기부 지하 수사실에서 대학생 허무성이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 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근태 선생이 1985년에 고발한 것처럼 사람의 어깨뼈를 뺐다 끼웠다 하면서 딱 죽지 않을 만큼씩 극한의 고통을 주며 없는 간첩단도 만들어내는 기술자들과 맞서기에 당시 대학생들은 약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친구들 가운데도 누군가가 먼저 잡혀가고 그것이 발단이 되어 다른 이들이 줄줄이 잡혀가고 섬뜩하게 과장된 조직도와 함께 학생운동 조직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일들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고문에 굴복했다고 모두 허무성처럼 살까요? 그러나 과연 아무리 힘이 없고, 유약했던 당시의 대학생들이었다고 해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친구의 이름을 끝까지 숨기지 못했다는 것을 추궁하며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몰인정하게 몰아붙였는지는 의문입니다. 이 지점에서부터 저는 소설에 빠져들지 못하고 남의 이야기처럼 시큰둥하게 읽기 시작했던 같습니다.
아직도 순진한 믿음을 버리지 못한 탓일지 모르겠으나 저는 당시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이기심을 넘어서 상당한 위험과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학생운동에 나서게끔 했던 것, 우리 세대를 열광하게 했던 그 힘은 어떤 열병과도 같은 시대정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박정희 정권과 신군부의 무단통치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가슴에 응어리지고 싹튼 탈권위에 대한 열망, 표현의 자유, 어느 조직에서건 의사결정의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일, 인권, 분단극복, 약자에 배려와 사회복지에 대한 지향, 여성의 차별과 무권리를 개선하는 일 같은 것들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가치를 얼마나 확대했는가가 어쩌면 대통령을 누구로 뽑았나 하는 문제보다도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의 이웃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저는 여전히 그런 생각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소설 속의 허무성이 고문에 굴복했다고 해서 스스로의 사회정치적 생명이 끊겼다고 생각하는 일. 위대한 혁명가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해서 김일강 같은 세력에게 자신의 운명을 모조리 의탁한 채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것 같은 상태로 세상에 대해 오만 냉소를 다 퍼붓는 일들이 저는 조금 뜨악하기도 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학생운동 조직의 한 그룹이 붕괴됐다고 해서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 자체가 파산하는 것인가 싶기도 했구요.
자신들이 민중들의 삶을 좌지우지한다고 착각한 학생운동 그룹이 있었을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런 생각을 되짚어보자면 자신들만이 상황의 변화와 무관하게 시종일관 어떤 지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는 소아적인 착각이 극단적인 전향도 불러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설에 나오는 허무성의 주변의 인물들이 모조리 허무와 냉소에 빠져있다는 점입니다. 당시의 학생운동 관련자들 대부분이 학생운동 경력을 팔아 정치권에 구걸하면서 국회의원이 돼 보수세력의 앞잡이가 되거나, 뚜렷한 주장도 자긍심도 없이 자조하면서 논술학원의 강사가 되거나, 절망에 빠져 텔레비전에 넋을 빼앗기고 만 소설 속의 문정선 같은 사람들뿐일까요?
1980년대 대학에 다닐 때 저희 또래들은 스스로를 4.19세대와 자주 비교하곤 했습니다. 당시 이미 4.19혁명과 6.3운동 세대들은 이미 현실에 발이 묶인 기성세대가 되어 있었고,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그들 세대로부터 진보적인 예민함, 탈권위적이고 민주적인 가치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없었던 탓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 세대들은 1980년 5월 광주를 기점으로 '과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운동을 시작했으며,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굴러가게 될 것임을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당시의 우리들에게는 주장은 많았지만 성찰은 부족했고 스무 살 청년들다운 순수함도 있었지만 미숙함도 많았습니다. 그런 부족한 가운데서 대개의 사람들은 삶의 문제를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했으며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미숙했던 20대들이 그렇게 건강한 상식을 가진 선량한 이웃들로 성장하면서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조금씩 개선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90년대 초중반에 쏟아져 나오던 성찰 없는 후일담 소설들을 혐오한다고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저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당시의 젊은이들이 생각과 지혜가 부족했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조악했던 면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쉽사리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북의 주체사상을 지고지순의 가치인 양 목소리 높여 주장하던 자들이 어느 순간에 표변해서는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이북을 무력침공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식의 매카시즘을 선동하는 모습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세상을 유지하고 움직이며 조금씩 인간다운 가치를 진전시켜온 것이 그런 분열적인 인간들의 선동에 의한 것은 아닐 겁니다.
고민하던 그들은, 여전히 선량한 이웃으로 살고 있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속의 우울한 인간들을 안쓰러워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스스로의 이념에서 파산한 채 삶의 어떤 희망과 전망도 스스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그 우울한 인간 군상들, 정치권을 기웃거리며 더러는 거들먹거리기도 하던 미성숙한 인물들. 그들은 어쩌면 동시대 동년배들 전체를 떠올려보면 지극히 예외적인 소수가 아니었을까요? 그 당시 전대협 발대식에 모여들던 5만, 10만 명의 학생들만 떠올려보아도 그렇습니다.
정확한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고 하지만 당시 대학생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노동현장에 위장취업을 했던 이들이 1만 명 이상은 된다고 하는 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대개가 현장을 떠나오기는 했습니다만 그 수많은 이들이 여전히 선량한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저는 선생님이 소설에 그린 것처럼 극단적인 절망에는 빠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의 학생운동 세대들은 이제 세월이 흘러 기성세대가 되었습니다. 대개 배도 좀 나오고 흰머리도 희끗희끗해진 중년이 되었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은 그들이 젊은 날 스스로가 그리던 혁명가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삶의 현장에서 분투하며 땀 흘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학부모가 되었고 사춘기 아이들의 갈등을 이해하려고 골머리를 싸매기도 하지만 그러면도 자식들에게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다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강한 상식을 가진 이들입니다.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현실은 비극적입니다. 용산철거 현장에서의 살인진압이나 파업현장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에게 광적인 적대감에 휩싸여 무자비한 폭력을 쏟아 붓는 일.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정보기관들이 온 국민을 사찰하면서도 반성이 없는 지금의 정부가 예전에 우리가 겪었던 박정희나 전두환 정권에 비해 덜 잔혹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촛불의 광장에서 낙관하던 시민과 다중의 힘이 종잡을 수 없게 불규칙한 복류를 하면서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망동이 터무니없다고 여기는 상식의 힘이 20년 전에 비해 훨씬 커진 것은 분명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은 교육현실에 짓눌려 있으면서도 과거의 우리들에 비해 더 발랄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역사는 피 흘리며 신음하면서면서라도 조금씩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고 믿고, 그런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글을 맺자니 선생님의 소설을 마음대로 읽고 터무니없는 저만의 생각을 늘어놓은 게 아닐까라는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결례를 무릅쓰고, 어렵게 쓴 편지를 선생님께 보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미래를 가늠하게 하는 선생님의 소설을 오래도록 읽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