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보도연맹사건이라는 국가에 의한 무차별 학살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수의 탈을 쓴 자들은 전쟁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그들은 빨갱이였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점점 드러나는 피해자의 수와 관계자의 증언은 그 변명을 우습게 만들었다.
최소 20만에서 많게는 100만. 희생자의 대부분이 순박한 국민. 그야말로 대량학살 이었다. 여기 저기 남아있는 기록과 증언은 일제 강점기의 그것보다 더 악랄할 정도였다.
폐광에 사람을 꾸역꾸역 집어 넣어 묻어 버렸고 사람들을 철사로 엮어 돌만 매단 채 수장했다. 부산 거제 방면에서는 총알을 아끼기 위해 산채로 사람을 엮어 수장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남녀를 강제로 정교를 맺게 한 다음 바다에 버렸다. 빨갱이라고 위협하며 강간을 하고 죽인 일도 있었다.
5.
대한민국이 원래 이런 나라였던가? 우리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이렇게 악랄했던가? 지도층이 한심한 적은 많았지만 생명 하나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귀히 여기던 민족이었다.
벌레를 밟아도 죽지 않게끔 신발(짚신)을 헐겁게 만들던 민족, 세끼 밥을 못 챙겨 먹을 만큼 가난했지만 벌레도 먹고 살아야 한다며 고수레를 외치던 민족, 까치와 함께 살자고 감을 다 따지 않았던 민족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권력자고 그에 따르던 군인들이라지만 어떻게 그리 잔악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었을까.
당시 이 나라의 지도자 층, 특히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의 간부들에게 조국과 국민이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부분 한번쯤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독립군을 때려잡던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 그들 대부분이 바로 그곳 출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