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의 소망이 절실했던 두 팔을 못 쓰는 중증여성장애인이 너무나 간절히 배우고 싶은 꿈을 꾸었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뜻을 가진 장애인 7-8명의 학습동아리로 시작해서 충북 유일의 장애인 야간학교를 만들었다. 그 야간학교가 검정고시를 통한 정규학력취득교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장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비록 낙선하기는 했지만 무학으로 발음이 어늘한 뇌병변여성장애인이 지자체 기초의원선거에 나가기도 했다. 낙선과 당선의 의미보다 어려운 신체와 환경 속에서도 사회에 나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게 영화를 보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병원에서 차별받지 않게 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에 날개를 달려고 노력한 것이 더 의미가 깊다.
이 곳은 단순한 검정고시와 문화예술교육의 장이라기보다는 살아있는 가슴들의 훈훈한 정들이 오가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생활나눔의 장소이기도 하다. 비오는 날이면 팔이 하나이든, 팔이 하나도 없든 부치개를 부쳐서 나눠먹고, 장애야학생 중 누군가 입원하거나 그 집의 아이들이 큰 탈이 나면 서로 돌봐주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수급비로 가족들이 근근이 살아가면서 더 어려운 독거노인들의 5000원 자동이체 후원을 하는 여성장애인엄마들도 여러 명 있다.
그리고 아가씨 때부터 자원봉사하다가 두 아들을 낳은 애기엄마가 되어서도 10년을 한결같이 함박웃음을 나누는 엄마도 있다. 그녀의 아들들은 이곳에 오는 것을 아주 즐거워하고 장애엄마의 아이들과도 잘 어울린다. 장애, 비장애 구분없이 어릴 때부터 함께 손잡고 웃음나누면 차별과 차이의 구별도 없어질지 모른다.
충북도 내 유일의 장애인 야간학교는 2004년 9월 장애, 비장애인들의 가정방문학습으로 시작되었다. 이듬해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30평 건물을 임대해 '장애인 야학 다사리'로 명칭을 정하고, 때로는 지자체 문턱을 닳도록 다니며 설득하면서, 때로는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농성을 하였다.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아가는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하여 5년이 지난 현재는 지자체의 지원으로 작년에 충북 새마을회관 1층의 깨끗하고 넓은 터전으로 이전하고, 통학차량도 지원받고 있다.
현재 30명의 교사가 학생 70명을 가르치고 있으며, 미국장애인도 최근 다사리 장애야학교에 등록하여 다양한 교육을 매일 받고 있다.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 검정고시를 위한 정규학력취득 수업을 진행한다. 유료강사비가 지급된다고 해도 교통비 정도이며, 대부분의 강사들은 자원봉사 뿐만 아니라 먹거리를 후원하기도 한다.
야학교 선생님들은 단순한 선생님이 아닌 모든 방면에 전천후 파워를 발휘한다. 운전도 하고, 장애야학생들은 업거나 안기도 하고, 때로는 응급처치를 하는 간호사가 되기도 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는 그들은 정말 표나지 않는 큰 선생님이다.
또한 컴퓨터·생활영어 한국화·서예반, 서양화·창작시반, 상담치료·시사교육·집단상담교육, 장애인 생활체육·장애아동 사물놀이 등 다양한 특별활동반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서예교육의 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커리큘럼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 연달아 선정되어 3년째 지원받고 있으며, 종이뿐만 아니라 도자기에도 먹그림과 먹글씨를 써서 집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평생교육우수프로그램이 되어서 소통이 원거리 이동이 어려운 많은 다사리 장애인들이 컴퓨터로 시를 쓰고 국내유수의 장애인인터넷기자가 되어서 좋은 기사를 쓰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교육방법으로 인해 교육생 중에는 미국에 거주하다 등록해서 교육을 받고 미국장애인도 있으며, 지난 8월에는 고입검정고시를 패스한 합격생도 나왔다. 그리고 야학교를 다니는 환갑이 되신 분도 있고 아직 채 걸음마를 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공부하는 장애엄마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터전으로 옮긴 뒤로 이전에 비해 자원봉사자와 후원이 늘지 않고 있어 부족한 재정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학교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상태이다.
다사리 관계자는 "지자체나 각종 단체는 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사리에서 시창작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는 어떤 젊은이는 집에서만 20여년을 지내다가 다사리와 손을 잡은 뒤부터 시골에서 다사리 근처로 생활공간을 옮겼다. 그리고 수급지정을 받고 매일부터 다사리에 온다. 웃음이 무척 많아진 그를 다사리에서는 미소왕자라고 부른다.
두 다리
두다리로걸으면얼마나좋을까
아름다운 풍경은 보면서
시도 쓰고그림도 그리고
표현 하고 싶은데........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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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장애인 눈물
무어라고말하고싶은데
구름속에서내리는 비처럼
나의언어가 흐트러진다
높은언덕을올라가는 것처럼 힘이든다
글과 그림으로 하루를 보낸다
구름낀하늘처럼 내마음에
눈물이 내리고 있다.
다사리에서 그를 본 누군가는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니 생각이 없어서 웃음이 많아 미소왕자인 줄 안다. 그러나 그가 지은 시를 보면 웃음은 희망과 눈물에 바탕이 된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는 한국화나 서예보다 자유롭게 구상하고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나는 서양비구상부분을 좋아한다. 시간의 수레가 얼만큼 지나가면 그는 미소왕자로 미소로서만이 아닌 자유가 담긴 작품들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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