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부의 국정 기조 전환을 요구하면서 1차로 6월에 1만7천 명의 교사들이 시국선언을 한 데 이어, 정부의 징계와 형사고발 협박에도 7월에는 2만8천 명 교사들이 2차 시국 선언을 발표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교조 정진후 위원장을 파면하는 등 파면 1명, 해임 21명, 정직 67명 등 89명을 중징계하겠다고 발표하고, 시도교육청을 앞세워 이들을 검찰에 형사 고발하였다. 전교조 합법화 이후 최대 규모이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검토 시간이 필요하다며 고발을 미루자 교과부가 직접 나서서 직권 고발하는 초강수를 던지기까지 했다.
시국 선언 수사 돌입은 속전속결, 수사 결론은 깜깜무소식
검찰은 교과부의 고발을 기다리기라도 하였다는 듯이 이례적으로 단 며칠 만에 이들 시국선언 주도 교사들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교과부와 시도교육청, 검찰 삼박자가 딱딱 맞아들어가는 순간으로, 이것이 6월에서 7월 말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곧바로 8월 5일을 전후하여 정 위원장 등에 대한 소환 조사에 들어갔다. 교사가 아니어서 국가공무원법이 적용되지 않는 전교조 직원들까지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며 소환하는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졌다. 중앙집행위원도 아닌 사람들을 중앙집행위원이라며 소환하는 등 기초 사실 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
그들이 얼마나 허겁지겁 시국 선언 교사 탄압에 나섰는지 알 만한 장면이다. 그 사이 전교조 사무실에 대한 압수 수색도 진행하고, 고발된 교사들의 이메일도 다 열어보았다.
속전속결로 끝낼 것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검찰 수사는 어찌된 일인지 그 후 50일이 가까워 오는데 답보상태다. 호언장담하던 형사 처벌은커녕 기소 여부조차 못 밝히고 있다. 불법이라며 핏대를 올리던 교과부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꿀 먹은 벙어리이기는 마찬가지다.
그 사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 후폭풍으로 검찰 총장이 바뀌었고 곧 법무장관도 바뀐다. 각종 비리로 취임도 못해보고 낙마한 천성관 내정자에 이어 새로 취임한 신임 검찰 총장은 국민 신뢰회복과 검찰 개혁을 국민 앞에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검찰에게는 우울한 소식들이 연일 쏟아진다. 지금 우리 검찰은 기로에 올라있다. 대국민 신뢰를 회복하느냐는 시금석이 시국선언 교사들에 대한 처리가 될 것 같다. 검찰은 시국선언 교사들을 기소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안 하는 걸까?
무죄 선고율 최고, 영장 발부율 최저, 국민 불만은 최고 수준
대한민국 검찰의 슬픈 현주소를 보여주는 각종 소식들이 쏟아진다. 14일 발표된 2009년도 사법연감과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이 기소한 사건에 대한 무죄율은 사상 최대이고, 반대로 법원의 영장 발부율은 사상 최저다.
검찰이 신청한 영장 발부율은 서울서부지법 61.6%, 서울북부지법 62%, 서울중앙지법 67%로 나타나 이제 곧 50%대로 떨어질 지경이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 않아 검찰이 신청한 영장 2건 중 1건이 법원에 의해 기각될 처지다. 검찰에게는 또 다른 굴욕의 한 장면이다.
특히, 전국 일선 검찰청의 대표격이라는 서울중앙지검이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1심 사건 무죄 선고 인원은 2006년 329명에서 2008년에는 789명으로 2년 사이에 2.4배 늘었다. 무죄 선고 비율도 2.1배로 늘었다. 서울동부지검과 서울서부지검도 이 기간에 무죄 인원수와 비율이 2배 이상 늘었다.
그만큼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를 하고, 영장 신청을 무작위로 하는 사례가 많다는 방증이다. 검찰은 2003년 이후 강조된 공판중심주의와 불구속 수사 원칙 확대의 영향이라고 변명하고 싶겠지만 이렇게 무죄 선고율과 영장 기각률이 높아진 것에 국민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새로운 검찰의 수장인 신임 김준규 검찰 총장은 이런 상황을 접하고 '무죄 선고율을 줄이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여러 차례 지시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을 나타내는 정부 자료가 발표되었는데, 검찰이 국민 민원 만족도에서 정부 39개 부처 중 3년 연속 거의 꼴찌 수준으로 나타났다. 대국민 신뢰 회복이 얼마나 절실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이 또한 검찰의 굴욕이 아닐 수 없다.
국무총리실 소속 정부업무평가위원회는 해마다 1만명 안팎 국민과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정부 기관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내는데, 올해에도 정부 기관 39곳에 대한 평가를 분석해 순위를 냈다. 특히, 민원 행정서비스 만족도 분야에 있어서 검찰청은 경찰청과 함께 19개 청 단위 정부 기관 가운데 3년 연속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인 검찰청이 경찰청과 더불어 국민으로부터 가장 많은 불만을 사고 있는 기관이라는 의미이다. 그 주된 이유는 불친절과 권위적 태도 등이 지적됐다.
지금도 학업성적이 가장 우수한 문과 계열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과가 법학과이고, 이들이 최고로 선호하는 직업이 판사와 검사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지적 능력을 가진 엘리트 집단인 검찰이 국민에게 가장 불신을 받는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래 저래 대한민국 검찰은 우울해 보인다.
우울한 검찰을 더 우울하게 하는 것은 수뇌부의 위장 전입?
안 그래도 우울한 검찰에 또 하나의 악재가 겹쳤다. 얼마 전 김준규 검찰 총장이 새로 취임한데 이어 곧 이귀남 범무부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 법무장관 내정자도 위장 전입 사실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로서 우리 나라 법무행정을 책임진 수뇌 라인들이 모두 위장 전입으로 주민등록법을 위반한 것이 확인된 셈이다. 최고 행정부 수반인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법무장관 이귀남, 검찰총장 김준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위장전입을 한 것이다. 여기에 이번 인사 청문 대상으로 사법부 최고 지위인 민영일 대법관 역시 위장 전입 사실이 있음을 시인했다.
국가 원수인 대통령으로부터, 검찰 행정 최고 책임자로서 법을 어긴 사람들을 기소하고 이들에게 유죄 선고를 해야 하는 법무장관과 검찰 총장, 그리고 대법관이 위장전입을 하여 주민등록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데 아무도 처벌 받은 적이 없다. 주된 이유는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한 것과 아파트 구입을 위한 것이라고 변명한다. 이러니 위장전입을 금지하는 주민등록법은 '나이롱법'이라는 비아냥을 받는다.
2007년 대검찰청 범죄 통계에 의하면, 한 해 1504명이 입건돼 733명이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다. 힘없는 국민들은 위장 전입으로 처벌받는데, 이들을 기소하고 처벌하는 수뇌부들이 위장전입을 하니, 이래서야 국민 앞에 검찰 위신이 서겠는가?
검찰 앞에 놓인 숙제 '시국선언은 선거 운동인가?'
대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검찰 개혁을 내걸고 취임한 신임 검찰 총장은 검찰 내에서부터 학연과 지연에 치우친 인사를 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검사들의 신상 정보에서 학력과 출신 지역을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성공 여부를 떠나 분명히 긍정적인 시도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검찰 개혁을 했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김 검찰총장과 이 법무장관 체제 앞에 놓인 진짜 큰 시험대가 있다.
먼저, 법원이 공개를 결정한 용산 참사 관련 자료 공개가 그것일 수 있다. 일단 김 총장은 이를 거부했다. 아직 이귀남 장관 내정자의 판단은 공개되지 않았다.
두 번째 시험대는 아마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기소 여부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교사들은 시국선언 등의 이름으로 수없이 많은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혀 왔다. 전교조와 대척점에 있는 교총도 '비상 시국선언'을 발표한 적이 있으며,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내용의 서명운동을 전개한 바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번도 처벌받거나 징계 받은 적이 없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교과부가 애초에 정부 법률 공단에 법률 자문을 받아 본 결과 '교사들의 시국선언을 불법이라고 할 수 없다'는 내부 입장을 정리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입장을 바꾸어 시국 선언이 불법이라면서 이들을 중징계하고 형사고발까지 했다.
검찰이 이들을 유죄로 기소하기 위해서는 교사 시국 선언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위한 선거운동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만약 시국선언이 선거운동이 아니면 국가공무원법 상의 '집단행동 금지, 성실의 의무 위반, 그리고 교원노조법 위반' 등 어느 것에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명확하다. 그런데 시국 선언 당시에는 선거도 없고, 특정 정당을 편드는 것도 아니라서 검찰은 난감할 뿐이다. 검찰에게는 풀기 어려운 최고 난이도 문제이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유일하게 지금까지 이들을 고발하지 않고 징계위원회에도 회부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즉, 시국 선언이 징계 사유가 되지도 않고, 형사 고발해도 무죄 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법조계 의견이다. 김 교육감 자신도 교수 시절 수없이 많은 시국선언에 참가해 왔는데 처벌이나 징계 받은 적이 없다는 점도 또 다른 이유이다.
검찰의 사면초가... 무혐의 처분하자니 눈치! 기소하자니 무죄 걱정
검찰은 이제 판단해야 한다. 시국 선언 사건 수사가 이미 마무리된 상황에서 더 시간을 끄는 것은 비겁한 편법이다. 당사자들이 인정하고 있고, 수사 대상자를 모두 불러서 소환 조사를 했고, 이메일뿐 아니라 자료도 압수 수색을 통하여 모두 가져갔으니 더 이상 수사할 것도 없다. 검찰은 수사가 끝이 났으면 당연히 수사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것이 도리이다.
작년 한 해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다가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은 789명이다. 그런데 만약 검찰이 시국선언 주도 교사 89명을 기소하였는데 이들이 무죄를 선고받는다면 아마 최근 사건 중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무죄 선고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안 그래도 높아지는 무죄 선고율에 또 하나의 불명예를 뒤집어 쓰게 되는 셈이다.
검찰은 지금 사면초가에 놓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 위기가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검찰이 마녀 사냥과 공안 정국을 꿈꾸지 않는다면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교사 시국 선언에 대한 수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풀기 어렵다고 계속 시간만 끌고 미루는 것은 직무유기로 국민 불신만 키울 뿐이다.
현 MB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가 전교조가 추구하는 것과 맞지 않아 전교조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책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정책 기조가 다르다는 이유로 기소권과 징계권이라는 국가 공권력을 이용해 이를 탄압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정치적 중립이 생명인 검찰을 여기에 들러리 세운다면 우리 역사에서 또 하나의 권력의 시녀 오명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제 검찰은 어느 쪽이든 결론을 내 놓아야 한다. 시국선언 교사에 대해서 검찰이 기소와 무혐의 처분 사이에 어떤 결정을 내놓을 지 국민의 시선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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