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
평창은 동계올림픽 후보라는 것을 통해 많이 알려졌지만 요즈음 떠오르는 웰빙
물결을 타고 메밀이 인기를 얻으면서 평창군 봉평면의 효석문화제도 각종 뉴스에
다양하게 등장하는 것 같다.
봉평면 일원, 문화마을 일대에서 열리는 제11회 효석문화제를 둘러보았다.
조금 일찍 퇴근하고 서울에서 출발해서 부지런히 갔는데도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 되었다.
춘천에서 왔다는 미리내 색소폰 합주단의 연주를 들으면서 한가지 독특한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지휘자가 여느 지휘자의 그것과 다르게 검은색 연미복이 아닌
하얀 모시적삼을 입고 지휘를 하였다는 점이다.
고무신에 모시적삼. 그런 차림으로 열정적인 지휘를 하는 것에 대해 관람객들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화답을 했다. 제대로 된 음악당이 아닌 운동장에 마련한 무대와
천막으로 된 객석 전부였지만 귀에 익숙한 곡들을 한 곡 또 한 곡 열심히 연주하는
합주단의 단원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함께 연주를 감상한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박수를 치며 앙코르를 불러댔다.
축제 행사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먹거리 장터다. 그 중에서도 자장면
전문가의 손놀림으로 직접 만들어지던 수타 자장면이 인기였다. 밀가루 반죽을 치댄
끝에 드디어 밀가루 덩어리로 자장면을 만들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조금씩 굵기가 가늘어지면서 점차 그 밀가루 덩어리가 길어지기 시작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가늘고 탄력있는 자장면의 면발이 완성되면 여기
저기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이런 장면을 보고나서 먹는 자장면은 더 맛있는 것
같았다.
품바 공연이 열리던 무대 옆의 오순도순길 가에는 그냥 서서 공연 관람을 하던
사람들도 많았다. 굳이 간이의자에 앉아서 보지않아도 스피커의 음량이 워낙 커서
시원한 강바람을 등지고 편하게 관람을 하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적극적인 행사
참여자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공연을 대하는 것 같았다.
장터 곳곳에는 평창군 봉평면의 특색을 보여주는 물건들부터 아주 다양한 상품들이
환한 불빛 아래 진열되어 있었고 여전히 손님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장터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정말 자신들이 바라는
어떤 물건이나 상품을 우연히 만나게 되기를 희망하기라도 하듯이.
연주회도 보고 장터를 둘러본 다음 메밀밭 야경과 허 생원의 나귀 보러 가는 길에
놓여진 섶다리를 건넜다.
주로 경북의 북부 지역과 강원 지방에 놓였었다는 섶다리를 건너는 것은 옛날의
어릴적 추억을 찾아 건너는 기분이었다. 굵은 기둥을 세우고 가로 세로 나무들을
묶은 다음 잎과 가지들이 촘촘한 땔나무들을 튼튼하게 엮어서 장마철 지난 후에
수량이 줄어든 냇가를 건널 수 있게 만들었다던 섶다리에는 이웃 마을 간의 협력이
배어 있는 듯 했다. 비록 이듬해 장마철이 되면 큰 물이 넘치면서 떠내려 가게 되는
섶다리는 해마다 1년 만큼의 추억을 큰강으로 바다로 실어나르는 돛단배 같았다.
건너면서 마치 허생원과 동이가 나귀와 함께 이 다리를 건너는 것을 보기라도 한
것 같은 심정이었다.
섶다리를 건너가서 일행들은 홀로된 검은 나귀를 만날 수 있었다. 어둠이 깔린
봉평 메밀밭 앞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표정의 나귀를 바라보았다.
평생을 이 장터에서 다른 장터로 떠돌아다니며 지낸 장돌뱅이 허생원이 조선달과
함께 봉평장에서 다음 장터로 이동할 때 같이 길을 갔던 그 나귀를 재현하려는 듯
머리에 붉은 꽃을 단장하고 있었다.
하얗게 피어있는 메밀꽃들이 다 지고나면 나귀들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게 될까?
뜨거운 가을볕 막아줄 썬캡을 쓰고 예쁜 마차를 끌면서 손님과 함께 할 때가 정말
좋았었는데 ... 하는 회상이라도 하게 될까?
카메라 플래쉬의 섬광에 반사된 날벌레들의 운무가 하얗게 핀 메밀꽃들과 어울려
봉평의 밤풍경을 장식하고 있었다.
메밀꽃 축제 "제11회 2009 평창 효석문화제"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2년 100산'의 멤버들과 함께 강원도의 태기산을 오르기로 했는데 태기산을 등산하는 전날 11일(금) 늦은 오후에 미리 평창에 도착해서 봉평의 "메밀꽃 축제" 현장을 둘러보았다. 가을의 날씨를 일찍 느낄 수 있는 고지대의 서늘한 기온이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행사장마다 모여서 효석문화제를 즐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