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들이 붐비는 길 한 가운데 세상 모든 근심과 불안과 공포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젊은이가 있다. 한시가 급한 잰걸음으로 무언가를 찾는 청년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시퍼렇게 질려간다. 이 고비만 넘기면 그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든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람들은 냉연하고, 그리 관대하지 못하다. 점점 한계에 이르는 압력을 억누르지 못하는 괄약근은 손대면 토~옥하고 터질 것만 같은 위태로움으로 바람 앞에 등불 신세다. 바로 눈앞에 지옥의 낭떠러지가 펼쳐진다.
그렇다. 나는 지금 애타게 화장실을 찾고 있다.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다. 하지만 도심에서 짐 가득 실은 자전거가 첫 번째 짐이요, 함부로 화장실 문을 열어주지 않는 가게나 공공시설은 두 번째 암초요, 개인 집을 찾아가 애타게 부탁을 해 봐도 화장실조차 없는 집이 많으니 이것은 세 번째 수렁이다. 시골이라면 들꽃 사이에, 나무 아래에 혼자만의 민망하고 짜릿한 비밀을 풀어 놓을 텐데 말이다.
미처 뭐하나 둘러보기도 전에 온두라스도 휙휙 지나갔다. 큰 축제도 없고, 눈길을 끌 만한 역사 유물도 없어서 가능하면 빨리 지나가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속도를 내기에 몸이 무리였다. 화장실 증후군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영양부족과 물이 그 원인인 듯 싶었다. 지독한 짠돌이 여행자는 출발 이후 단 한 번도 물을 사 마신 적이 없었으니까.
폭풍설사. 멕시코에서부터 시작된 이 지독한 굴레는 현지인이 먹는 음식과 물을 같이 한 나에게 늘 따라다니고 있었다. 콜라 마실 때만 잠시 속이 편안하지 속에 좋다는 바나나를 먹어도 머릿속엔 변기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심지어 윗구멍으로 멀쩡하게 들어간 밥도 아래 구멍으로 죽이 되어 나오기 일쑤였다.
하늘은 나에게 설사라는 시련을 주셨지만 자애롭게도 변비는 거둬주셨다. 이러니 급하지 않아도 일단 주유소든 경찰서든 화장실은 최대한 들르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가끔 타이밍을 맞추지 못할 경우엔 낭패하기 십상이다.
이번이 꼭 그랬다. 이 세상의 멸망보다 더 절망적인 일은 기약도 없이 찾아온다. 레스토랑들은 품위를 이유로 입장을 거절했고, 인심을 기대한 멀쩡한 집들은 아예 화장실마저 없는 곳이 수두룩했다. 미로처럼 펼쳐진 골목을 한참을 뒤져도 빛의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고 열성 신도 저리가라 할 정도로 절박한 기도가 울려 퍼졌다.
그 때 도로에 한 골목이 눈에 띄었다. 꺾어 들어가니 자동차 고물상이 있었다.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일단 미안하단 소리부터 하고 냅다 달려 들어갔다. 주인도 내 얼굴과 어정쩡한 폼을 보고는 대충 상황이 짐작 갔는지 손으로 가리키며 화장실 위치를 알려 주었다. 지옥의 낭떠러지에 떨어질 찰나 극적으로 천국으로 가는 밧줄을 잡았다.
문짝이 떨어진 한 평짜리 화장실이었다. 더구나 화장실은 고물상 입구와 작업장 중간에 있어 지나가는 직원들을 항상 마주해야 했다. 그러니 왼손으로 신문지를 들고 앞을 가려야 했다. 어디 그 뿐이던가. 난관은 또 있었다.
엉덩이와 한 뼘 된 거리 아래로 며칠은 푹 삭힌 듯한 옛 변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기겁하여 차마 편하게 앉지를 못했다. 내가 잡은 게 썩은 동아줄이었던가. 죽을 맛이었다. 날개도 없는 화장실 변기에 최대한 접촉 면적을 작게 해 슬며시 앉았다. 그러고는 오직 두 다리에만 모든 힘과 정신을 집중했다. 왼손과 다리가 파르르 떨려오는, 실로 엄청난 체력 소모가 요구되는 자세였다. 다행히 직원들은 모른 척 해 주었고, 변 위에 아주 조심스레 김나는 새로운 변을 얹어야 하는 극한 체험을 기특하게도 나는 잘해내고 있었다.
역시나 속이 좋지 않았는지 뒤에서 고약한 누런 분비물이 뿜어져 흘러 내렸다. 하이라이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간신히 볼 일 마치고 일어서는데 변기 물탱크가 오래 전부터 고장 나 있었던 것이다. 순간 침묵했다. 세면대도 이미 고장이라 물을 받을 수도 없었다. 파리와 모기가 뒤섞여 왜 이리 껄떡대는지 완벽히 증명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위생 시설이었다. 일전에 이보다 더했던 중국 자전거 여행 경험에서 우러나온 여유와 노하우가 없었다면 나는 정말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사정을 아는 주인은 그냥 나오란다. 나는 왼손에 들고 있던 신문지로 조용히 변기를 덮어두었다. 그리고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와서는 고물상 수도꼭지에서 손만 간단히 씻었다. 주인에게는 연신 고맙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착잡한 심정이 묻어나는 이곳에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었다. 천국이든 지옥이든 다시 세상으로 나와야 했다.
얼마나 극심한 부담이었는지, 얼마나 긴박한 안타까움이었는지, 또 얼마나 절박한 공포였는지. 내 고약한 온기로 가득한 화장실을 지나면서 나는 득도한 신선처럼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고물상을 나오자 새삼 햇살이 반갑고, 바람이 시원하며,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온순해 보였다. 이것을 환희(歡喜)라고 하는 건가.
허나 거리로 나와 다시 군중 속으로 파고 든 나의 표정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저 태연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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