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국민 사찰에 대한 박원순 변호사의 지적에 대해 국정원이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진실 공방이 한창입니다. 국정원의 국민 사찰이 진실일까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 격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최근 제가 직접 목격한 이야기를 하나해야겠습니다.
지난 주말 4대강 국민 검증단이 낙동강을 답사할 때, 신분을 밝히지 않은 낯선 두 사람이 하루 종일 검증단을 따라다녔습니다. 검증단이 우포늪이 가까운 경남 합천군에서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농지를 빼앗기고 쫓겨나는 농민들을 만날 때부터 흰색 차량이 검증단 일행을 따라왔습니다.
낙동강의 8개의 보 중 가장 하류에 있는 함안보가 들어 설 자리에 모여 보가 이 지역에 홍수를 더 조장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는 동안 낯선 두 사람은 낙동강 검증단 바로 곁에 서서 모든 말을 엿들었습니다. 검증단이 단체 사진을 찍으려 하자 두 사람은 슬그머니 빠져나갔습니다.
검증단이 강변 여과 시설이 있는 경남 창원시 대산 정수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이 설명을 하는 동안 함안보에서 따라왔던 정체불명의 사람이 검증단에 등을 돌린 채 열심히 발언 내용을 적었습니다.
시민단체만이 아니라 국회의원이 함께하고 있는데, 감히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따라다니다니 황당스럽습니다. 거기에 국회의원 발언 내용까지 일일이 적고 있다니 간덩이가 보통이 아닙니다.
낙동강 검증단이 양산시 원동면 한 마을로 이동하였습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4대강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었습니다. 평생을 농사지어오던 자기 땅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되었으니 농민들은 분노와 서글픔과 안타까움으로 푸욱~푹 한숨만 내쉬고 있었습니다.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검증단이 토론을 하는 동안 혼자 마을을 주~욱 돌아보았습니다.
낙동강유역환경청 해명 |
이 기사와 관련, 낙동강유역환경청은 10월 27일 해명기사를 게재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이 공문에서 낙동강유역환경청은 "4대강 검증단에 동행했던 사람들은 국정원 직원이 아닌 4대강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낙동강유역환경청 유역계획과 직원들이었다"면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4대강 검증단 활동에 동행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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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으로 인해 몰수될 마을을 한 바퀴 돌아 토론 중인 마을회관으로 돌아오니 한쪽 곁에 오전부터 따라다닌 낯선 두 사람이 보입니다. 그 중 한 사람이 '혹시 얼마전 잡지에 나오지 않았냐?며 저를 아는 체를 하였습니다. 지난 7월호 '좋은 생각' 잡지에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모자 쓴 제 얼굴을 어찌 그리 잘 알아볼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국민 검증단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나온 사람인걸 알면서도 제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이름과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그저 "환경을 사랑하는 시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국정원 소속인지, 아니면 정부 관련 부처 공무원인지, 그도 아니면 4대강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 관계자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검증단을 염탐하러 나온 사람들이 분명하기에 더 이상 세세히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환경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도 않고 저렇게 열심히 따라다니고 있을까요? 순간 정보를 캐러 다니는 이들이니 반드시 수첩에 그날의 동태를 메모하고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그머니 뒤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뒷짐을 지고 있는 손에 작은 수첩이 들려있고, 4대강 국민 검증단들과 마을 주민 간에 오고간 이야기를 빼곡히 받아 적은 것이 보였습니다. 얼마나 많이 받아 적었는지 볼펜 글씨가 흐릿하게 뒷면까지 보입니다. 눈치 채지 못하는 동안 얼른 찰칵! 하였습니다.
수첩의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민은 검증단에 구체적인 대안을 요구. 막연하게 4대강 사업을 중단하게 할 수는 없다.그동안 노력해본 결과임주민 동의 없이 하천 구역 지정한 것은 절차상 하자가 있는 것임"수첩에 적힌 내용을 보니 4대강 국민 검증단의 동태를 상부에 보고하기 위한 것이지, 단순히 환경을 사랑하는 시민이 적을 내용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떳떳한 사업이라면 왜 이런 짓까지...제가 영월 서강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환경운동을 처음 시작한 10년 전, 주모자라는 굴레를 쓰고 경찰과 검찰에 수차례 불려 다니며 조서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 2년간 매일 아침마다 정보과 형사로부터 하루의 일정을 물어보는 안부 전화(?)를 받곤 했습니다. 지역에서의 이런 정보활동은 정보과 형사의 입장도 있고, 공개적인 것이니 어느 정도 애교로 봐줄만합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의 타당성을 조사하는 국민 검증단의 일거수일투족을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가까이 따라다니며 감시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입니다. 4대강 사업이 정말 국민 앞에 올바르고 떳떳한 일이라면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4대강 사업의 거짓말이 탄로 날까 두려워 검증단이 누굴 만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일일이 파악하는 것이겠지요.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 이런 일은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에도 한반도대운하 반대 교수모임 인사들을 국정원이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은 당시 일부 교수들을 직접 만나고 다닌 사실이 확인됐지만, "사찰은 아니다"라고 부인했었죠.
이젠 과거 독재의 유물인 불법사찰 망령이 완벽하게 부활한 것일까요? 정부는 4대강 국민 검증단을 쫓아다닌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내용을 파악하려고 했는지 분명하게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는 이 기사를 출고한 뒤에 두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이리저리 전화를 돌렸다. 접촉한 인사 중 마산창원진해 환경운동연합 임희자 사무국장은 "나도 좀 미심쩍어서 그 사람들에게 소속을 물어봤더니, 낙동강 유역 환경청 직원이라는 답변을 들었다"면서 "최종적으로 신분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계속 그들이 따라다녀서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