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엣지'라는 말이 대세긴 대센가 보다. <오마이뉴스>에서 엣지있는 블로거를 소개하고 싶다면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의뢰가 왔을 때, 나는 이미 내 안에서 이 단어의 종식을 선언했다. 드디어 이 '엣지'라는 단어가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이곳저곳 달리다 결국 도달할 곳 없어 나에게 오고 말았구나, 생각했다.
나는 전혀 엣지있는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이 기사도 맡으면 안 되는 거였지만, 당시 전화통화 상황상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왠지 거절을 하면 통화가 길어질 것 같았고, 나는 통화가 길어지면 안 되는 긴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긴급하게 네, 네, 알겠습니다 하다 전화를 끊었다. 이러나 저러나 구차해지긴 마찬가지. 그래서 나는 결국 결심하고 말았다. 나, 엣지 있기로. 생각보다 되게 간단한 문제였다.
내가 엣지있는 블로거? 어쩌다가...
우선 내 소개를 간단하게 하자면 'ALLAK'이라 불리는 27살 청년이다. 나는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말이 많다는 뜻이겠다. 말이 많으면 언제나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실수가 많으면 사람들이 꼬이지 않는 법. 결국 난 심심한 영혼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게 악순환이다. 내가 심심하다고 느끼니 심심하지 않으려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인데, 나는 심지어 불특정 다수에게 길거리에서 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캠페인이 시카고에서 실시한 'A캠페인'이었다. 내가 질문을 하면 대답(Answer)을 얻는 식의 캠페인이었고, 당시 나의 질문은 '사랑과 평화와 공존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그 질문에 대답을 하면 꽃을 주는 식의 캠페인이었는데, 그것이 나의 수많은 실수 중 한 가지 일지는 모르지만 확실하게 대답 할 수 있는 것은 그날 나의 운명은 바뀌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라도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의 눈빛에서 나오는 그 에너지를 발견할 때의 그 쾌감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나로 인해 스스로 발견하지 못했던 에너지를 발견해 나갈 때, 그 변화되는 그 표정을 끊임없이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결심했다. 걱정 인형을 만들기로. 그것이 바로 'Don't worry Be happy'의 B를 따와 만든 'B캠페인'이다.
다수의 대중과 이야기하고픈 27살 청년의 무한도전
걱정인형. 'Worry doll'이라 하는 이 인형은 과테말라 고산지대 인디언들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동화에서 유래됐다. 한 아이가 너무 걱정이 많아 잠을 못 이루자 그 모습을 딱하게 본 그 아이의 할머니가 구석에서 작은 인형을 꺼내 주며 이야기하길 "이 인형에게 너의 걱정을 이야기 하고 베개 맡에 두고 자면 자는 동안 대신 걱정을 해줄 테니 너는 걱정을 이 아이들에게 맡기고 편히 자렴" 해서 그 아이는 편히 잤다, 하는 이야기다.
사실 나는 이 인형을 인사동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들과 눈빛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면서 팔고 싶었다. 나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내가 만든 걱정인형으로 많은 사람들의 걱정을 들어주며 여러 사람의 걱정을 공유하고 위로해야 겠다, 이 걱정인형을 판 돈으로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축구공을 선물해야 겠다,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와, 이거 너무 신난다, 다짐하곤 수차례의 실패 끝에 걱정인형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당시 나는 인사동으로 나갈 준비가 되었으나 때는 2월이었고 2009년 2월은 여느 2월과 마찬가지로 몹시 추웠기 때문에 바로 포기했다. 대화도 좋고, 걱정, 위로 다 좋지만 인간적으로 2월은 너무 추웠다. 전국의 스키장이 풀가동인 시즌 아닌가. 난 본능적으로 이건 아니다 싶었고 하는 수 없이 따뜻한 봄날이 올 때까지만 온라인으로 걱정인형을 팔자는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됐다.
물론 처음엔 걱정인형을 알리는 것에 주력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강매하다시피 하여 점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결국 어느 정도의 자금을 모았다. 나는 그 자금을 가지고 캄보디아의 어린이들에게 축구공을 선물하기 위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번 돈으로 축구공을 준비하고 배구공을 준비하고 헌 옷가지를 준비했고, 걱정인형을 구입하셨던 치과의사 한 분이 칫솔100개를 무료로 제공해주시기까지 하여 이민 가방 한 가득을 아이들 선물로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아이들에게 축구공을 선물해주고, 그쪽 NGO단체와 함께 축구 골대도 세우고 돌아오니 나는 이렇게 '엣지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좋은 데 취직해서 행복하게 못 살까봐 걱정하는 사람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나는 그렇게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내가 한일을 과장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난 그저 내가 재밌는 일을 찾아 나선 일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재밌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남들은 '좋은 일 한다'고 한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걱정인형 사이트에 걱정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다보면 내가 정말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났구나, 좋은 환경이구나,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하지만 그건 특수한 케이스라는 걸 조금만 읽다 보면 알게 된다.
걱정인형 사이트에 올라온 대부분의 걱정은, 우리 아이를 유학 보내려고 하는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고3인데 수능이 걱정이다, 대학에 왔는데 생각보다 대학 생활이 재미없어 걱정이다, 토익점수와 학점이 나오지 않아 걱정이다, 대학 졸업반인데 취업 때문에 걱정이다, 취업을 했는데 적성에 안 맞아 그만두고 싶은데 용기가 안 생겨 걱정이다 등의 걱정이 넘쳐난다.
이 걱정들은 모두 한 가지만 바라보고 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걱정을 하고 사는 것이 마치 당연하고 평범한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진실로 궁금했던 것은 좋은 직장이라는 단어가 행복이라는 단어랑 결합되느냐 하는 것이다.
대충 중간 과정은 빼고 그 정의를 두루뭉술하게 덮어버리진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나는 좋은 연봉을 주는 회사가 좋은 삶의 질, 즉, 행복까지 주진 않는다고 개인적으로는 판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난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간단하게 생각하니 행동은 굵어졌다.
걱정없는 세상 꿈꾸는 내가 바라는 건...
나는 독립영화를 한 편 찍었고, 현재는 맘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반디플러스'라는 팀에 합류하여, 한국외대 대학생들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영어연극을 가르쳐주며 그 아이들이 공연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옆에서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대학생들에게는 학점을 주고, 아이들에게는 자신감과 영어에 대한 친화력을 높이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시작 단계라 여러 회사에 후원을 요청 중이지만, 한국외대 측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계시어 올해 신설 과목으로도 개설되었다.
현재는 50명의 대학생들이 약 12개 초등학교에 투입되어 교육 중이다. 그 아이들이 서툰 몸짓으로 무대 위에 서서 그동안 대학생 선생님들에게 배운 동작과 문장을 여러 사람들에게 뽐내는 상상을 하면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 설렌다.
내 바람은 한 가지다. 모두가 걱정없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거다. 걱정인형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로했으면 좋겠고, 개인적으론 반디플러스 프로젝트도 오래 유지 됐으면 좋겠다. 서로 질투하고 시기하기보다 서로 사랑하고, 각각의 위치에서 행복을 느끼며 세상과 깊숙이 소통했으면 좋겠다. 남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위에 있다고 느끼는 우월감을 행복으로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변화는 아주 작은 움직임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래전부터 우리 모두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