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미네르바, 그리고 이제 박원순. 그러나 그의 진실은 반드시 이긴다."
국가정보원의 민간사찰에 맞서 시민사회단체들이 뭉쳤다. 국정원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2억여 원 손해배상을 청구당한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상황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22일 오전 11시 참여연대 지하 느티나무홀에 모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이번 일은 시민사회와 공존하지 않겠다는 정권의 선언이며, 한국의 대표적 시민운동가도 정부를 비판했다가는 큰코다친다는 치졸한 보복 소송"이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함께하는시민행동·한국YMCA·한국여성단체연합·환경운동연합·참교육학부모회·민주언론운동연합·문화연대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사회단체 15곳과 전국의 지역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소속 177곳은 함께 '정권비판세력 탄압 대책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이들은 박원순 변호사가 국정원 사찰 활동을 공개하기 전부터 비슷한 징후가 여러 차례 발견됐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비판세력 견제'가 현실로 드러난 사례일 뿐이라는 것. 실제로 지난해 국정원은 한반도대운하 반대 교수모임 소속 교수들의 동향을 파악했고, BBK 재판을 담당한 재판부에 전화해 비판을 받았다.
표적감사에 학원사찰... 사업지원 끊고, 기업 후원도 가로막고
이날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과연 지금 대한민국에서 개인이나 시민단체에게 정부를 비판할 자유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전국 시민사회단체들은 모두 정부의 조직적 압력과 방해를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이학영 한국YMCA사무총장은 "형식적 차이는 있지만 이번 사례는 과거 독일의 히틀러처럼 국가라는 이름을 남용해 개인을 억압한 사례"라고 강조하면서, "참여정부 시절 각 정부 기구나 위원회에 들어간 사회단체 활동가나 교수들이 임기를 마치기 전에 해촉된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주장했다.
다른 시민사회단체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정부와 일부 협조적인 관계를 맺어온 여성이나 환경 분야도 이명박정부의 부당압력을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여성부는 '앞으로 불법시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확인서를 쓰지않는 여성단체들에게 고용평등상담실 등의 사업에 대한 지원을 취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4대강 운하사업으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환경단체들의 피해가 컸다. 김종남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국정원 직원이 대기업 임원 방을 드나들면서 단체를 지원 못하게 하는 일들이 잦다고 한다"고 말했다. 환경재단이 주최하는 환경영화제는 올해 들어 지원이 중단됐는데, 이 과정에서 국정원 간부가 서울시 담당 본부장에게 지원금 보류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종남 사무총장은 "4대강 사업에 반대했던 전문가들은 학원사찰을 받고 법률가들은 자문변호직을 박탈당했다"면서 "일반 국민이라면 이런 압력이 무서워서 정부를 비판하기가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문화예술계에서는 감사원을 통해 영화예술단체들을 표적 감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대표영화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도 올해 들어 보수 영화인들로부터 '좌파 영화제'라는 비판을 받았고, 감사원은 특별조사국을 투입해 대대적 감사에 나섰다.
"다음 사찰 대상은 국회의원"
그러나 아직 국정원의 사찰 의혹이 물증을 통해 사실로 밝혀진 사례는 많지 않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활동가들은 "유무형의 압력은 상당하지만 우리는 불행히도 국정원만큼의 정보력이 없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민영 사무처장은 "앞으로 시민사회단체들은 물론 인권단체·법률가단체들이 함께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를 수집하고 증언을 준비해서 사례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김종남 사무처장은 "우리보다 언론인들이 사실을 확인해서 알려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후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해 결성했던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산하 '정권비판세력 탄압 공동대책위' 활동을 재개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 개편할 예정이다. 또한 국정원과 국정원 직원의 직권남용 행위에 대한 검찰 고발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국회에서 야당들과 함께 공동대응도 펴나간다. 이번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원의 민간사찰 문제를 집중제기하고, 이후 국정조사도 촉구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이번 진실을 밝히는 데 국회가 주저한다면 다음 사찰 대상은 국회의원들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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