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를 6개월 동안 돌아다니다 시드니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밀렸던 일들을 대충 끝냈다. 오늘은 다시 호주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자동차 정비도 했다. 군대 첫 휴가를 나온 사람처럼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과 식사도 하며 여행담을 떠들고 지냈다. 다시 떠나는 우리를 보며 고생길이 훤하다는 듯이 측은한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실에 얽매여 떠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부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이번에는 남부 해안가를 따라 호주 서쪽 끝에 있는 서부 호주의 행정 중심지 퍼스(Perth)까지 가서 호주 서해안을 돌아볼 계획을 세우고 떠난다. 더위와 우기에 대비해 비가 와도 취사준비를 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텐트도 좀 큰 것으로 다시 장만하고 모기약, 취사도구 등 지난번 여행하면서 아쉬웠던 것들을 생각하며 이것저것 준비하였다.
일단 우리를 불러준 친구가 있는 캔버라를 향해 떠난다. 캔버라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호주의 수도다. 그러나 한국의 서울처럼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경제의 중심지 또한 아니다. 시드니와 멜본의 중간 정도에 도시계획을 세워 만든 행정도시다.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한 시드니와 전통을 자랑하는 멜본에서 수도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시드니와 멜본 중간에 인공 도시를 세웠다고 한다.
캔버라에서는 호주의 수도답게 많은 축제와 문화 행사가 열린다. 박물관도 수준급이며, 이민자로 이루어진 국가답게 다민족이 주체가 되어 열리는 문화 행사도 많다. 내가 책을 통해서만 보았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동상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곳도 캔버라 박물관에서였다.
캔버라의 대표적인 축제는 매년 봄에 열리는 꽃 축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캔버라에 사는 사람들은 시드니에 비해 추운 겨울을 보낸다. 아마도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아 열리는 축제라 이곳 사람들이 더 정성을 들이는지 모르겠다. 몇 번 와보는 축제이지만 항상 잘 왔다는 생각을 한다.
꽃 축제라고 하지만 튤립 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튤립을 중심으로 갖가지 꽃이 색의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 놓은 정원이 일품이다. 왜 튤립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지 잘 알 수는 없으나 갖가지 종류의 튤립이 많이 피어 있다. 튤립하면 네덜란드라는 국가와 빨간색의 탐스러운 튤립을 생각하지만, 이곳에는 색과 모양이 다른 많은 종류의 튤립이 있다. 튤립의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은 캔버라 꽃 축제를 통해 알았다.
벚꽃을 연상케 하는 연 분홍빛의 자그마한 꽃이 만발한 나무들 사이로 튤립, 제비꽃 등의 꽃으로 수놓은 정원 사이를 거닐다 보면 하루가 길지 않다. 나 같이 꽃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무관심한 사람들의 발걸음까지도 유혹하는 아름다운 꽃 축제다. 이곳을 찾은 사람을 위해 음악도 연주하며, 아이들의 볼거리가 될 만한 요정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돌아다니기도 한다.
일 년 내내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를 한 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색색의 꽃을 힘껏 피웠다가 떨어지는 꽃들,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각처에서 몰려든 사람들, 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가?
사람도 언젠가는 땅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데, 나는 어떠한 모습의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아니 꽃을 피울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드니 동포 잡지에도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