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credit).'
몇 년 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이크로 크레디트 기관인 '그라민 은행'을 창시한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가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이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조직이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활동하고 있으며, 조직의 성격이나 지향에는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일반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소액의 창업자금을 대출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동을 한다.
지난 9월 17일에 금융위원회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서민의 자활지원을 위한 미소금융(마이크로 크레디트)사업'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자활지원사업과 사회적 기업의 조직화 현장에 있으면서 평소 마이크로 크레디트와 같은 사업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했던 필자는 보도자료를 접하고 일단 반가웠다. 그러나 보도자료를 모두 읽은 후에 이 사업이 금융위원회의 바람처럼 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발생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정부의 재정지원 없이 민간 기부 등을 중심으로 향후 10년간 2조 원 이상의 기금을 조성하며, 이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소액서민금융재단'을 '(가칭)미소금융중앙재단'으로 확대·개편하고 전국에 미소금융사업수행 법인을 200~300여개로 확대할 예정이다. 그리고 운영은 자원봉사자 위주로 할 계획이다.
금융위원회의 계획은 몇 가지 문제점을 보인다.
첫째,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향후 10년간 2조 원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마이크로 크레디트 지원 규모가 1483억 원이다. 지난 10년 간 지원 규모가 1483억 원인데, 앞으로 10년간 정부의 재정적 지원 없이 그 15배 가량의 기금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간 민간 차원에서 도모된 마이크로 크레디트 활동의 기금이 대체로 기업이나 은행에서 나왔음을 고려하면, 금융위원회는 어떤 방법을 써서 똑같은 자금 출처에서 15배 가까운 금액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인지?
둘째, 금융위원회가 밝힌 그간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총 조성 금액 중 지원실적은 772억 원이다. 지원 금액이 조성 금액의 52.1%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위원회는 미소금융사업의 사업 수행 근거로 수요에 비해 미흡한 지원규모를 들었는데, 이 지적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현재 52.1%에 불과한 지원 실적의 이유에 대해서 냉정하게 분석해봐야 한다. 마이크로 크레디트와 같은 대출 제도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적음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기존의 조성 금액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데 무려 13배에 이르는 금액을 조성하겠다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 자원봉사자를 사업 수행 인력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표자야 무보수·명예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치자. 그러나 실무 인력을 자원봉사자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은 사업에 대한 이해가 혹시 매우 취약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이용하는 이들은 단순히 대출 서비스만 필요한 이들이 아니다. 지속적인 사후 관리와 경우에 따라서는 각종 사회복지 서비스의 연결도 요청되는 이들이다. 즉,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전문적 능력과 매우 밀착적인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헌신성이 실무에서 요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원봉사자가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실무를 담당한다는 것은 사업 실패에 대한 위험을 시작도 하기 전부터 안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금융위원회는 소상공인진흥원이나 소상공인지원센터와 연계해서 창업이나 경영에 대한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러한 연계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금융위원회는 성공적인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어떻게 운영되는지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 번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넷째, 미소금융사업을 통해 대규모로 운영하지 않더라도 영세사업자나 자활공동체 창업을 목표로 하는 이들, 사회적 기업 등에 대한 각종 대출 제도가 있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이 제도들을 통폐합하겠다는 것인지, 그렇지 않겠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통폐합하겠다면 현재 운영되는 각종 대출 제도에 대한 엄격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굳이 미소금융사업을 통해 지원하기보다는 각기의 대출 제도가 더 잘 운영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각 영역마다 대출 대상의 성격이 다르고 대출을 통한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점을 무시하고 대출 제도를 통폐합할 필요는 없다.
다섯째, 금융위원회는 2조 원으로 향후 10년간 20만~25만 가구가 미소금융사업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좀 단순하게 계산하면 1가구당 800만~1000만원에 불과한 금액이다. 3년 내지 5년의 분할상환을 적용하면 1가구당 2000만 원 가량이 미소금융사업을 이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 보도자료에 의하면 가급적 1000만 원 이하의 소액을 대출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1000만 원이든, 2000만 원이든 생각하기에 따라서 적은 금액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창업을 위한 자금으로 생각하기에는 적다. 잘해야 시설 개보수 정도이고 점포를 임대차 하려면 이미 다른 방법을 취한 이후에 보완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 물론 대출 신청자가 필요로 하는 금액을 모두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통해 충당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으나 기왕에 창업을 지원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좀 더 현실적인 금액 설정이 필요하다.
여섯째, 금융위원회는 전달체계가 서로 연계되지 않아 중복지원의 소지가 큰 현실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면서 서울 거주 9등급 저신용 자영업자가 복지부, 서울시, 소액서민금융재단 지원 민간단체 등에 중복 신청이 가능하다는 것을 사례로 들었다. 누군가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이용한다는 것은 빚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원이 아니라 대출이다. 어느 누군가가 생계 문제로 좀 더 좋은 대출 조건을 찾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금융위원회는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다시 생각했으면 한다.
일곱째, 해외의 성공적인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상당수가 단계적 대출방식을 채택한다. 물론 단계적 대출방식이 성공적 운영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은 아니나, 상환 실적에 따른 단계적인 대출 확대는 자활의지와 상환율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미소금융사업의 대출 제도에는 이런 방식이 반영되지 않는데,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인지 궁금하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그 자체로 상환율이 높을 수 없다. 어떻게 운영되느냐에 따라 상환율이 달라진다.
한국에서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현재보다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할 필요는 없다. 정부는 활동의 기반을 조성하면 된다. 그러면 그 기반 위에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모여서 기금을 조성하고 대출을 한다. 이미 한국의 시민사회는 상당한 정도의 마이크로 크레디트에 대한 경험을 쌓아왔다. 이들의 경험을 잘 살리고 그간 이들이 활동하면서 부족했던 점을 채울 수 있는 시스템을 정부가 보완해주면 된다.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위해 지금 이 시기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좀 더 치밀한 계획을 세운 이후 사업에 대한 의지를 천명해도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http://cafe.daum.net/wed95)에도 올려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