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살림이 있는 교육 두번째 시간이다.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의 김은영 선생님이 '옛 이야기에서 배우는 우리말글'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은영 선생님은 처음부터 '우리말글'에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옛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때부터 우리말글이 가진 힘을 알게되었고, 이것을 잘 가꾸고,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마을학교에서는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해온 '국어'라는 단어 대신 우리 말로 쉽게 풀어쓴 '우리말글'이라 부른단다.
'국어'교육 vs '우리말글'교육사람됨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그 사람이 쓰고 있는 '말'과 '글'일 것이다. 잠시 국어시간을 생각해 봤다. 글의 종류와 성격, 주제와 소재 등을 노트 정리하고, 시험에 나올 것들만 외우던 생각이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글을 써야하는지 제대로 배운 것 같지 않았다.
'우리말글' 시간에는 '주고받는 말'을 가르친다. 무엇을 주고 받는가? 바로 우리겨레가 오랫동안 삶에서 가꾸어 온 말인 '토박이말'이다. 토박이 말은 지역, 상황, 사람에 따라 빚어지는 소리에 차이가 있다. 소리에 그 겨레의 얼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 겨레 안에서만 보더라도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산간에 사는 사람들의 말씨가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난다면, 서남쪽 평야에 사는 사람들의 말은 한결 부드럽고 정겹다.
닿소리(자음)와 홀소리(모음)은 소리에 따라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닿소리인 'ㅁ' 에 '모아지는 힘'이 있는가 하면, 'ㅂ'에는 '흩어지는 힘'이 있다. 몸, 모둠, 만남, 뭉치다, 뭉글뭉글, 몽글몽글이 전자에 해당 된다면, 불, 빛, 밝다, 불다가 후자에 해당한다. 이런 소리의 결이 무엇인지 알고 '주고받는 말'을 배운다면 얼마나 우리말이 풍성하고 맛깔 스러울까?
'우리말글'의 수난
우리나라는 글자를 갖기 전 '입말'의 꽃을 피우며 살았다. 입말은 삶의 뿌리이고, 우리 일상과 무의식에 깊게 뿌리 내려서 우리 삶을 이끌어 왔다. 일제식민지, 전쟁과 분단, 미군정과 독재정권을 거치며 말의 뿌리인 입말이 먼저 파헤쳐지고 어지렵혀지면서, 우리말을 가볍게 여기거나 무식한 말로 여기게 했다.
또 '남을 다스리는 사람'과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나뉘어 지고, 갈림이 공고해지면서 입말은 자연스럽게 나뉘어졌다. 옛부터 '계집'은 평민이 쓰던 말인데, 식자층에서 평민과 구분을 짓기 위해 '부인'이라는 한자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계집'이란 말이 천박하게 여겨지는 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입말 중의 가장 알맹이인 '토박이말'을 살리고 가꾸어 내는 일은 입말의 신비함을 깨치고 우리 겨레의 삶을 이해하고 통찰해가는 슬기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은영선생님이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남편이 '자기~ 똥쌌어?'라고 물었단다(한바탕 웃음). 은영선생님은 '똥을 싼게 아니고, 눈 거거든'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쌌다'는 것은 똥 오줌을 못 가리는 아이들이 바지에 지린 것을 말하고, '눈 것'은 변기에서 일을 해결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낱말의 참뜻이 가려지지 않으면 느낌과 생각 뜻이 뒤섞인 채 말을 주고받아 말글살이가 가볍고 깊지 못하게 된다.
'겨루다', '다투다', '싸우다'의 말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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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낱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풀이해 놓은 것이다.
겨루다: 서로 버티어 승부를 다투다. 다투다: ①의견이나 이해의 대립으로 따지며 싸우다. ②승부나 우열을 겨루다. 싸우다: 말, 힘, 무기 따위를 가지고 서로 이기려고 다투다. '겨룬다'는 것은 가늠과 잣대를 가지고 온 힘을 다해 서로 맞서는 것이라면 '싸움'과 '다툼'은 가늠과 잣대 없이 서로 맞서는 것이다. 또 '싸움'과 '다툼'을 가려 쓴다면, '싸움'은 때로 몸을 다치거나 목숨을 내놓을 마음까지도 내어놓고 맞서는 것을 말하며, '다툼'은 삿대질이나 말로써만 맞서는 것이다.
국어사전이 여럿이지만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 뜻가림을 해놓은 것은 거의 없다. - 강의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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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학교의 응전 (우리말글 공부)마을초등학교 2학년 친구들은 '우리말 우리글(전국국어교사모임)'이라는 대안교과서를 이용해 공부하고 있다. 철따라 들려주는 옛이야기와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 한겨레 옛이야기등을 배우며, 우리 겨레가 오랜 세월 주고받은 토박이말을 재밌게 배워서 가려 쓸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있다.
5학년 친구들은 '글쓰기', '말글', '우리말고전'을 교과로 배운다. 글쓰기는 아이들이 생활에서 스스로 글감을 찾아 글을 쓰게 하고, 한해 마무리를 할 때 그동안 쓴 글을 모아 문집을 만든다. 또 우리말 고전(바리데기, 당금애기, 토끼전, 춘향전, 흥부전, 홍길동전)은 낮은 학년에서 배웠던 옛 이야기의 맥을 이어 우리 겨레의 삶과 말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한다.
옛 이야기에는 겨레의 얼과 삶이 갈무리 되어있다. 우리 겨레가 쓰던 깨끗하고 감칠맛 나는 말이 많이 담겨있기도 하다. 내용으로 치자면 진실한 삶을 꿰뚫어 보게 하는 슬기로 가득차 있다. 그 생명력은 20세기 수난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우리 삶을 지켜주고 있다. 인물과 역사 이야기 시간을 통해 사건을 해석하고 비평할 수 있는 힘을 길러, 나와 우리를 이루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갖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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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말놀이 <살이풀이> 김가네 집에 더부살이
박가네 집에 머슴살이
낭군만나 살림살이
시어머니 밑에 시집살이
고향 떠나 타향살이
여름 내내 오막살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너랑 나랑 들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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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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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옛 이야기를 듣고 읽으면서, 다음 이야기를 상상해서 써보거나 이야기를 고쳐 써 본다. 옛 이야기를 읽고 자진모리 장단에 맞춰 4음보로 말놀이로 만들어 우리말의 소리와 입말이 가지고 있는 뜻과 얼이 몸과 마음에 새겨지도록 한다. 말글은 삶 속에 뿌리내려 삶을 담아낼 때 푸지고 넉넉해질 수 있기에 한정된 교과로만 묶어 둘 수 없다.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며 말과 삶을 가꾸어 갈 수 있도록 날마다 날적이를 쓰고, 써 온 날적이에는 선생님이 짧은 편지글을 써준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부지런히 소통하고 서로의 삶을 부지런히 살펴가면서 말글이 껍데기가 되지 않도록 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열기 시간을 활용해 간단한 말놀이를 익힌다. 마을학교에서는 이렇게 말글살이를 일상에서 출발해,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힘을 기르도록 한다. 하루하루의 삶에서 솟아난 일상이 이야기를 노래․놀이로 가꾸어 가고, 그림으로 표현하며, 문집을 만들고, 연극으로 표현한다. 하루하루의 삶이 한 해의 삶으로 연결되고, 일상의 국어와 예술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일상이 예술로 빚어지고 가꾸어지는 것이다.
강의를 마치면서, 나는 어떤 말글살이를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이미 기사를 썼으니 독자들에게 여과없이 드러날 것이니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우리말글의 '결'을 배우고, 풍성히 살리도록 공부해야 겠다. 또 마을학교에서 자라나는 이들이 만들 '입말'과 '글말'의 세상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수동 마을신문 www.welife.org 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