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타임캡슐이라도 터졌나?
일제고사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학교는 평온하게 공부하고 있는데 일부 지역에서 학교 현장의 교육파괴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방학 보충으로도 모자라 개학하자마자 0교시, 7, 8교시가 등장하고 심지어는 밤 11시까지 공부를 시키는 지역도 있습니다. 중학교에서는 예체능 교과 교사에게 수업을 뺄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초등학교에서마저 교감선생님이 6학년 담임을 불러 예체능 수업을 하지 말라고 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충북 제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교육청에서 온 10월 시험 대비 일제고사를 봐서 기초학력과 미달인 학생을 불러다 부모를 질책하고 전학을 가라는 일이 생겼습니다. 충북 옥천에서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부모에게 잘못된 정보를 줘서 특수학급에 보내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한 학교에서는 9월 들어 토요휴업일에도 학교에 부르고 심지어 일요일에도 등교를 시킨다고 합니다.
추석을 앞두고 재량휴업일을 다시 없애는 학교도 생기고 있습니다. 올 추석 연휴가 3일이라 대부분 초등학교가 연휴 앞뒤로 재량휴업을 해서 5일간 쉬는 곳이 많습니다. 그런데 교장선생님들 회의에서 연휴를 조정할 수 없냐는 이야기가 나왔다더니 급기야 충북 모교육청은 장학사가 가만히 있는 학교에 왜 안 줄이냐고 전화도 한답니다. 여름방학 전에 온 학교 다니면서 다른 학교랑 비교해 보충수업 날짜와 열의가 부족하다고 압력을 주던 방식과 비슷합니다. 일제고사 앞에서는 민족 최대의 명절도, 교과부가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학교장 재량권도 필요가 없나 봅니다.
충남에서는 모든 6학년 학생들을 데리고 온라인 평가를 치르고 있다고 합니다. 토플, 토익 시험이나 온라인평가를 하는 줄 알았더니 일제고사 준비도 온라인으로 시키나 봅니다. 하긴 신종플루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요즘, 고열로 학교에 못오는 학생들도 일제고사 준비를 비켜가지는 못합니다. 온라인으로 시험지 풀고 이것을 확인해 올리라는 공문이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선생님들은 날마다 시험지나 풀리는 학원강사 같다고 하고 학생들은 시험지 보는 것도 지겨워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급기야 지난 17일 전주에서는 성적 때문에 꾸중을 들은 6학년 학생이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도대체 지금 이 곳이 2009년 대한민국 맞나요? 혹시 오래전 타임캡슐로 봉합해 묻어둔 사건들이 터지기라도 한 건가요?
교과부, 드디어 시정 명령 내리다
그렇지요. 하고 싶은 공부, 즐거운 학교(미래형교육과정 구호)를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교육과정까지 바꾸고 있는 교과부가 이런 상황을 두고 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9월 18일 전국 교육청에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를 대비하여 생기는 교육과정 파행 현상을 즉시 바로잡고, 어기면 엄중 조치하겠다는 공문을 전국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왜냐하면 교과부는 학생들 개인의 절대 성적을 올리고 기초미달인 학생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일제고사를 보는 것이지 이렇게 교육과정을 파행운영하고 학생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라? 교과부 공문도 안 먹히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교과부는 이 공문을 즉시 일선학교에 보내라며 눈에 띄게 보냈는데 학교에는 오늘까지도 도착을 안 한 곳이 많습니다. ktx를 타면 하루에 전국 어디든 오가며 업무를 볼 수 있고, 인터넷 강국인데다 상부지시라면 무조건 생각하지 말고 지켜야하는 학교사회에 공문이 안 오고 있습니다.
시험대비 하지 않고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경기도는 어제 왔다는데, 언론에 연일 오르내려 시급한 지역에는 왜 아직도 안 왔을까요? 일제고사 시험범위는 2번이나 자세히 알려주면서 말입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그건 시도교육청들이 자기가 한 일이 있어서 그럴 겁니다. 학기초부터 공문 내려보내서 시험 대비 시키고, 모의고사 시험지 풀고 보고하라고 그랬으니 이걸 학교에 하지 말라고 하면 얼굴이 안 서겠지요. 심지어 일제고사 준비 제대로 했나 주간보고를 하는 지역도 있고, 일일보고를 하는 곳도 있습니다. 장학사들이 일일이 다니면서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그걸 부정하는 공문을 차마 내려보내고 싶지 않겠지요.
교과부장관님, 법치를 제대로 시행해 주십시오.
제가 사는 지역은 작년에 꼴찌를 했다고 날마다 사건이 터지고 있습니다. 모든 지역이 다 그런 것이 아니라 몇 지역에서만 그런다니 더 이해가 안됩니다. 이젠 교사라는 것이 부끄럽고 학부모인 것이 죄스러울 정도입니다. 이러려면 교과부가 아예 태어날 때 부모도 선택하고 태어날 지역도 고를 능력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초중등교육법 제 23조 (교육과정 등) |
①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한다.
②교육인적자원부장관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며, 교육감은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정한 교육과정의 범위안에서 지역의 실정에 적합한 기준과 내용을 정할 수 있다. [개정 20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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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입니다. 교육은 교사 마음대로, 교육장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고시한 교육과정대로 하는 것입니다. 교육과정을 어기면 법을 어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행사 하나를 하더라도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학습 진도나 내용을 고려하고 현장학습도 교과학습과 연계해 운영합니다. 수년간 교육과정을 정상운영하라는 지시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내려왔습니다.
또 국가교육과정에서는 교과학습 내용을 계절과 학생들의 상황을 고려해 재구성하라고는 되어있지만, 선다형 일색의 문제는 내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7차 교육과정 총론 |
⑶ 교과의 평가는 선다형 일변도의 지필 검사를 지양하고, 서술형 주관식 평가와 표현 및 태도의 관찰 평가가 조화롭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 교과부 고시 제1997-15호, 제2007-79호 |
게다가 학교가 교육과정을 파행운영하면 징계를 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학교폐쇄까지 가능하다는군요.
7차 초등학교 교육과정 총론과 재량활동 해설서 |
학교가 교육 과정 편성, 운영 등 수업이나 학사에 관한 사항을 위반하였을 경우, 관할청에서는 시정 또는 변경 명령을 할 수 있으며(법 제 63 조),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학교의 폐쇄(법 제 265 조)까지도 명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 교육부 고시 제1997-15호 |
교과부장관님, 공문을 내린 김에 그 동안 파행운영을 한 교육청을 제대로 파악해서 징계처분을 해 주십시오. 그 동안 몰라서 그랬다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고, 앞으로라도 이런 파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시도교육감님들에게 확실하게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런데도 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제대로 징계하십시오. 지역 교육감님들이 체험학습 안내하는 편지 한 장 보냈다고 성실과 복종 의무 운운하며 교사들을 해임시켰는데, 이번 사안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 일입니다. 얼마 전 법에도 보장된 시국선언 했다고 교사 88명을 해임, 정직 처리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님부터 법치를 강조하는데 감독권을 행사해서 학생들 숨통 좀 틔워주십시오.
확실한 재발 방지책은 일제고사 폐지
장관님, 그리고 확실한 재발방지 대책도 세워주십시오. 이 모든 사태는 사실 교과부가 만든 것입니다. 지역과 학교를 경쟁시키겠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년부터는 학교간 성과급도 경쟁시키겠다면서요.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이런 압력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시험 점수는 공개한다면서 뭔 쓸데없는 공문내리냐고 비웃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탈도 많고 학생들만 괴롭히는 일제고사를 하루 빨리 폐지하여 교육과정을 정상화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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