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와 딸이 속옷 사러 간 매장
엄마와 딸이 속옷 사러 간 매장 ⓒ 임현철

"여자들끼리 갈 때가 있으니 남자들은 집에 있어요."

어제 저녁 식사 후, 아내는 뜬금없는 말을 던졌습니다. 딸아이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잽'을 날렸습니다.

"어디 가는데 남자들만 집에 있으라 하죠? 불공평해요."
"아들, 한 번만 봐줘. 그럴 일이 있으니까."

아내와 딸아이는 총총 걸음으로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두어 시간 후, 손에 쇼핑 가방을 들고 돌아왔더군요. 내용물은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의 브래지어와 팬티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들이 벌써 브래지어 해?"

"웬 속옷?"
"딸 가슴이 나와서 브래지어와 팬티 좀 샀어요. 친구들은 이미 하고 다닌대요."

"초등학교 5학년들이 벌써 브래지어 해?"
"벌써라뇨? 큰 얘들은 1, 2, 3단계 중 3단계를 입는 아이도 있대요."

"빠르긴 빠르네. 당신은 언제 처음 브래지어 했어?"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지금은 많이 빨라졌죠?"

아내는 자신이 처음 브래지어 사러 갈 때 상황을 전했습니다.

"가슴이 나오는데 엄마한테 이야기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겨우 돈을 타 속옷 가게에 갔는데, 너무 부끄러워 뭐라 말을 못하겠더라. 미적거리고 있는데 말을 시켜 겨우 샀다. 이런 옛날 생각이 나서 여자들끼리 속옷 사러 갔다 온 것이다."

 브래지어 고르는 아이.
브래지어 고르는 아이. ⓒ 임현철

"이렇게 답답한 브래지어를 왜 하고 다니는지…"

"브래지어를 왜 2개 밖에 안 샀어. 좀 넉넉하게 사지."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나. 우선 2개만 사고 다음에 사려고."

"우리 딸 이제 다 컸네. 아가씨, 속옷 가게에서 브래지어 고르던 소감 한 마디 하시죠?"
"아빤~. 기분 좋았어요. 브래지어가 크기가 그렇게 다양한 줄 몰랐어요. 하얀 색 브래지어를 골랐더니 엄마가 때 탄다고 안 된대요."

어느 새 아이는 브래지어를 차고 가족 앞에 원더우먼처럼 '짠'하고 나타났습니다. '응애'하고 태어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저렇게 컸을까, 싶더군요.

"아가씨, 처음으로 브래지어 찬 느낌은 어때?"
"아빠, 저 폼 나요? 그런데 답답해요. 이렇게 답답한 브래지어를 왜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딸아이도 크는 과정에서 여자들이 왜 브래지어를 하는지 알겠지요. 또 어릴 적이 좋았다는 것도 알겠죠.

브래지어를 한 아이를 보니 괜스레 슬퍼지더군요. 아이들이 크는 것과 비례해 상대적으로 나이 먹는 것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흐뭇하더군요. 아이 키우는 재미, 이런 거겠죠?

덧붙이는 글 |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브래지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