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끼리 갈 때가 있으니 남자들은 집에 있어요."어제 저녁 식사 후, 아내는 뜬금없는 말을 던졌습니다. 딸아이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잽'을 날렸습니다.
"어디 가는데 남자들만 집에 있으라 하죠? 불공평해요.""아들, 한 번만 봐줘. 그럴 일이 있으니까." 아내와 딸아이는 총총 걸음으로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두어 시간 후, 손에 쇼핑 가방을 들고 돌아왔더군요. 내용물은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의 브래지어와 팬티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들이 벌써 브래지어 해?""웬 속옷?""딸 가슴이 나와서 브래지어와 팬티 좀 샀어요. 친구들은 이미 하고 다닌대요.""초등학교 5학년들이 벌써 브래지어 해?""벌써라뇨? 큰 얘들은 1, 2, 3단계 중 3단계를 입는 아이도 있대요.""빠르긴 빠르네. 당신은 언제 처음 브래지어 했어?""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지금은 많이 빨라졌죠?"아내는 자신이 처음 브래지어 사러 갈 때 상황을 전했습니다.
"가슴이 나오는데 엄마한테 이야기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겨우 돈을 타 속옷 가게에 갔는데, 너무 부끄러워 뭐라 말을 못하겠더라. 미적거리고 있는데 말을 시켜 겨우 샀다. 이런 옛날 생각이 나서 여자들끼리 속옷 사러 갔다 온 것이다."
"이렇게 답답한 브래지어를 왜 하고 다니는지…""브래지어를 왜 2개 밖에 안 샀어. 좀 넉넉하게 사지.""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나. 우선 2개만 사고 다음에 사려고.""우리 딸 이제 다 컸네. 아가씨, 속옷 가게에서 브래지어 고르던 소감 한 마디 하시죠?""아빤~. 기분 좋았어요. 브래지어가 크기가 그렇게 다양한 줄 몰랐어요. 하얀 색 브래지어를 골랐더니 엄마가 때 탄다고 안 된대요."어느 새 아이는 브래지어를 차고 가족 앞에 원더우먼처럼 '짠'하고 나타났습니다. '응애'하고 태어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저렇게 컸을까, 싶더군요.
"아가씨, 처음으로 브래지어 찬 느낌은 어때?""아빠, 저 폼 나요? 그런데 답답해요. 이렇게 답답한 브래지어를 왜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어요."그러게 말입니다. 딸아이도 크는 과정에서 여자들이 왜 브래지어를 하는지 알겠지요. 또 어릴 적이 좋았다는 것도 알겠죠.
브래지어를 한 아이를 보니 괜스레 슬퍼지더군요. 아이들이 크는 것과 비례해 상대적으로 나이 먹는 것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흐뭇하더군요. 아이 키우는 재미, 이런 거겠죠?
덧붙이는 글 |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