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우리 아이들을 보고 예쁘다고 말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저귀를 살 돈도, 여건도 되지 않는다. 정부의 지원이 없어서 아이를 기를 수 없는 여건이다.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본적인 인권이 지켜지는지 의문이다. 어딜 가든 동물 취급을 받는다." (코트디부아르 출신 A씨)"한국정부의 구체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파키스탄 출신 B씨)지난 8월 19일 국가인권위 앞에서 열린 '재한 난민의 고통 토로회'에서 나온 증언들이다. 이처럼 정치·종교·인종·국적에 따른 박해를 피해 자국을 떠나 한국에 온 이들은 법과 인권의 '완전한 사각지대' 안에서 고통 받고 있다. 고용허가제, 다문화가족지원법 등 제도적으로 '고려'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이주민에 비하면 이들은 사실상 '배제'된 존재다.
"모든 생활영역에서 인종과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인종과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은 사람의 인권을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삼고 입법예고된 '인종차별금지법'도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한 이들을 보호하진 못한다.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지난 1994년부터 지금까지 난민신청자는 약 2336명 정도인데 우리는 이보다 적은 숫자의 한국인만이 재한 난민의 존재를 알고 있을 거라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고 자조했다.
'차별' 이전에 '배제'되어버린 난민 신청자... 왜곡된 정부 시각 아래 고통 받아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 구성원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을 우려가 있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러한 근거로 인하여 보호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UN의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하 난민협약) 1조에 따른 난민의 정의다. 한국은 지난 1992년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가입한 이후, 1994년엔 정식으로 난민 인정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2000년부터는 유엔난민기구 집행위원회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 없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94년부터 지금까지 난민 신청 외국인은 총 2336명이다. 이 가운데 난민으로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116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이 중 법무부의 심사만으로 난민 지위를 얻은 사람은 61명 뿐이다. 나머지는 소송으로 지위를 인정받거나 이미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가족과 결합하면서 난민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정부의 난민 인정이 이처럼 인색한 데는 "이들의 난민 신청이 국내 체류 혹은 취업을 노린 것일 수 있다"는 '왜곡된 시선'이 숨겨져 있다. 현재 법원에서는 난민의 지위를 부정하는 중요한 판단 지점으로 '경제활동을 계속하기 위한 난민 신청'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고, 입국 후 상당기간이 경과한 후 이뤄진 난민신청은 대부분 불허되고 있다.
국제난민지원단체인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는 "정부가 '경제적 요인' 때문에 난민 지위 인정에 인색한 것은 사실"이라며 "난민 신청을 하면 인정 여부를 떠나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체류가 가능하기 때문에 악용될 수 있다고 법무부가 의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최근 법무부는 지난 4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난민인정 여부를 놓고 소송 중인 외국인에게 "(국제협약상) 생계보장의 지원 없이 강제퇴거 명령을 보류해달라"고 낸 권고를 "외국인들이 국내 취업을 노리고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난민 지위 심사기간도 장기화된다. 평균 2~3년, 최장 7년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정부가 이들에게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으면서 난민 지위 인정 전까지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정부도 취업도 못하는 난민 신청자들이 생계 지원도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불법 취업'을 해도 묵인해주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몰려 외국인 보호소에 감금되거나 박해와 탄압을 피해 탈출한 본국으로 송환을 요구받는 경우까지 생긴다. 9월 현재 경기도 화성의 외국인 보호소에 구금된 난민 신청자는 모두 13명이다.
"우리 국민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외국인이라면 고려하겠지만..."
제도적으로 '배제'된 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낮은 인권 감수성, 타자에 대한 배타성이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는 "우선 난민인정 제도의 역사가 짧고 제도화가 잘 되어 있지 않은 것이 하나의 원인이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이라는 게 큰 원인"이라며 "예를 들어 국제결혼 이주민, 즉 다문화가족처럼 우리 국민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외국인이라면 정책적으로 조금 더 고려가 있는 데 반해 난민은 우리나라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소외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현재 난민과 관련된 법 조항은 출입국관리법 속의 몇 개 조항밖에 없다, 시행령·훈령 등 구체적인 지침에 따라 일을 하는 공무원의 경우 구체적인 지침이 없는 난민에 대한 행정 처리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난민 관련 법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례로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의뢰해 실시한 '난민 등 인권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300여 명의 난민신청자 및 난민인정자들은 난민심사 때 통역을 요청하지 않은 경우가 69.5%에 이른다. 통역을 요청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도 모른 채 심사에 응한 것이다. 관련 부처는 이 사실을 난민 신청자들에게 공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심사를 진행했다.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이와 관련해 "노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들은 국가가 일정 부분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데 반해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시스템은 전무하다"며 "이들은 인권과 법적으로 완벽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어 "현재 난민 신청자들이 600~700명 정도로 너무 소수라서 사회적인 관심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사회적 인식도, 요구도 없다"며 "철저히 한국의 민주주의는 자국민만을 위한 것이고 그 범주에 들지 않는 타자를 배제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 사례로 최근 난민인정협의회의 심사 태도를 지적했다. 법무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국가공무원 5명, 민간 전문가 5명으로 구성된 난민인정협의회는 법무부의 1차 심사 이후 탈락한 난민신청자들을 재심사하는 기구다.
"1차 심사를 한 기관 산하의 기구가 재심사를 한다는 것도 모순인데 현재 이 협의회가 엄청난 속도로 일하고 있다. 두 시간 동안 무려 160명 정도를 처리한다. 작년에는 20명~30명 수준이었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본국으로 송환되는 등 '사형선고'나 다름 없는 결정인데도 한 사람을 심사하는 데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것이다."김 사무국장은 이러한 일처리의 뒷배경에는 난민 신청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내년 6월 20일부터 발효되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난민 신청 이후 1년이 경과 시에 취업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에 따른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난민 지위 심사를 졸속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인권의 보장은 국가의 제도를 통해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난민에 대한 인식이 없다 보니 이런 정책, 이런 행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현재 '난민 등 지위 및 처우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 대표 발의로 나와 있긴 하지만 난민 신청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확산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