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하면 먼저 춘천가는 기차가 생각나고 무엇보다 강원도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여러 댐을 만나면서 생긴 소양호, 춘천호, 의암호 등 짙은 빛깔 호수들이 떠오릅니다. 제가 사는 동네 한강보다도 넓고 깊은 호수를 보노라면 춘천은 정말 호수에 둘러싸인 호반의 도시입니다. 참고로 한자말 호반(湖畔)이란 호숫가란 뜻이랍니다.
덕분에 여느 흔한 도시가 아닌 낭만이 떠오르는 도시가 된 춘천엔 '춘천가는 기차는 ~ ♪' '해 저문 소양강에 ~ ♬' 등의 유명한 노래도 생겼구요. 차를 타고 춘천 호숫가를 보며 달리는 경춘가도 드라이브길이 유명하지만 그 건너편에는 차도가 아닌 보행로와 자전거길도 있어서 애마를 타고 가을날 따사로운 햇볕을 등에 쬐며 춘천 호숫가를 달려 보았습니다.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경춘선 기차를 타고 종점인 남춘천역에 내립니다. 원래는 춘천역이 종점이었는데 시대에 밀려 그만 사라진 역이 되었네요. 그런 일이 못내 아쉬운지 인터넷 지도에는 아직도 춘천역이 그려져 있습니다. 남춘천역에서 춘천 MBC를 향해 달리면 얼마후 짙은 빛깔의 넓은 호수가 나타납니다.
춘천 MBC에서 왼쪽으로 난 나무들 사이 산책로를 따라 풋풋한 의암호 호숫가를 달려도 좋고, 오른쪽 춘천 시민의 휴식공원 공지천을 지나 소양강을 향해 난 잘 닦인 자전거길을 달려도 좋습니다. 길 중간에 나타나는 작은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중도'라는 춘천의 섬에 들어가 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남춘천역에서 춘천 MBC 안마당에 도착하니 마침 조각 전시회도 하네요. 다양하고 재미있는 조각들도 구경하고 벤치에 앉아 좀 쉬자니 눈앞에 호수가 시원하게도 펼쳐져 있습니다. 호수 옆이라 전망도 좋고 이런 전시회 행사도 자주 한다니 방송국 같지 않고 문화센터같습니다. 춘천 MBC에서 방향을 틀어 왼쪽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호숫가를 달려 갑니다. 한국의 호수도시(Lake City)답게 야외 공연장이 있는 청소년 회관같은 공공시설들이 호수를 따라 들어서 있습니다.
이곳에도 주말을 맞은 시민들이 호숫가 여기 저기에 모여 앉아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네요. 산책로 겸 자전거길도 끊기지 않고 잘 연결되어 있구요. 춘천의 섬 '중도'에 가는 작은 선착장도 만납니다. 중도는 인근 가평의 자라섬처럼 캠핑도 할 수 있고 자전거 하이킹하기도 좋은 섬입니다.
이날도 가족들과 젊은 청년들이 바리바리 싼 짐을 양손에 들고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네요. 이젠 얼굴에 닿는 햇살이 그리 따갑지 않은 계절이라 소풍가기 좋은 때인 것 같습니다. 그곳이 넓은 호숫가나 섬이라면 더욱 좋겠지요.
도시나 시골이나 호숫가에 낚시꾼이 빠지면 섭하겠죠. 여기도 낚시꾼들이 아예 호수 위에 좌대라고 하는 집까지 차려놓고 낚시 삼매경에 빠져 있습니다. 뒤로는 첩첩산중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에 나옴직한 좌대들이 떠있는 호수 풍경이 잔잔하고 평화롭습니다.
춘천 MBC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앞에 호수를 낀 공지천 공원이 나타납니다. 작은 공원이지만 들어갈 수 있는 잔디밭도 있고 조각공원처럼 예술작품들도 서있는 곳으로 춘천 시민들이 애용하는 공원이지요.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쉬어가는 아늑하고 단란한 느낌의 공원입니다.
공원 매점에서 간식도 먹고 잔디밭에 앉아 잠시 쉬다가 다시 애마를 타고 공지천옆 제방길을 달려 갑니다. 한강 자전거길처럼 깔끔하게 만든 길이 제방과 호숫가를 따라 계속 나있습니다. 길이 고무처럼 푹신푹신하게 만들어져 걷거나 조깅하는 사람들도 편하겠네요.
참, 공원 옆에는 투구처럼 독특하게 생긴, 이디오피아 전통가옥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이디오피아 참전기념관도 있습니다. 2층에 올라가보니 5백원짜리 자판기 커피가 이디오피아산 커피로 만들었다고 써있어서 호기심에 한 번 마셔보았는데 역시 일반 자판기 커피와는 다른 맛과 향이 나네요.
공지천 제방길을 지나 옛 춘천역 방향으로 가는 호수 길은 인도 옆에 자전거 길이 따로 닦여 있어 달리기 좋습니다. 군데군데 호수를 향해 앉아서 쉬어 가라고 만든 예쁜 벤치와 함께 드라마 <겨울연가> 주인공 남녀 사진이 표지판처럼 세워져 있는걸 보니 그 드라마의 한 장면에 나온 곳인 것 같습니다.
호숫가에는 '해 저문 소양강에 ~ ♪'로 시작하는 노래에 나오는 소양강 처녀도 있답니다. 그야말로 낭만 속 인물이었는데 호숫가에 큰 동상을 만들어 놓았네요. 해 질 녘에는 정말 운치가 있겠습니다. 춘천을 기억하게 하는 여러 상징물을 만들기 위한 춘천시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옛 춘천역 끄트머리 호숫가까지 다 달렸더니 배가 고파서 먹을 곳을 찾다가 춘천 중앙시장과 닭갈비 골목으로 유명해진 명동엘 갔습니다. 주말이지만 한산하고 조용했던 호숫가와는 달리 이곳은 동네사람들과 외지에서 관광온 사람들로 꽉 찼네요.
그 옆 동네에는 춘천호숫가처럼 조용하고 아늑한 동네가 있는데 바로 약사동입니다. 사람이 지나가면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동네 개는 어찌나 용한지 저같은 외지인과 동네사람을 보지도 않고 가려서 짖네요. 어릴 적 제가 살던 동네 모습과 참 흡사하여 서울로 가야할 기차 출발시간이 되었는데도 이 작은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습니다. 그 중 춘천의 달동네격인 망대골목은 입구에 있는 '망대 서민 이발관'의 이름처럼 정겨움이 묻어나는 동네랍니다.
젊은이에겐 추억을 심어주고 나이든 이에겐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도시 춘천은 작은 도시이지만,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서 내어준 호수가 있어 아름답고 질리지 않은 곳인 것 같습니다. 도시도 그 호수를 닮아서인지 안온하고 차분합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춘천의 호숫가를 달려보면 가을이 성큼 느껴질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