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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주 전 KBS 사장이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언론악법 통과뒤 향후 언론지형에 관해 강연하고 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언론악법 통과뒤 향후 언론지형에 관해 강연하고 있다. ⓒ 남소연

'지금의 KBS'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의 답은 이렇다. 나의 개인적인 소회나 평가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시청자, 국민이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나의 재임시절 KBS가 '편향적'이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지금의 KBS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볼 것이고, 반대로 과거 KBS가 그래도 괜찮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어떻게 1년 만에 이렇게 뒤집어지는가라고, 한탄할 것이다.

그나마 객관적인 평가라고 한다면 여론조사이겠는데, 최근 나온 여론조사에서는 KBS가 신뢰도 1위 자리를 MBC에 넘겨주고, 영향력도 크게 떨어졌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시청자, 국민의 다수는 '지금의 KBS' 평가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더 많이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반 시청자, 국민은 그러한데, 안에 있는 KBS 구성원들은 어떨까. "정권 바뀌고, 사장 하나 바뀌었는데, 기사 작성의 ABC까지 바뀌어 버렸다"는 어느 KBS 후배 기자의 자조와 절망이 담긴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좀 더 공개적으로는 '어느 KBS 기자가 쓰는 참회록'이라는 글이 인터넷에 나돌았다.

최근 KBS의 보도행태에 분노하고, 그로 인해 동료 기자들이 겪는 아픔에 잠을 이룰 수가 없어 글을 올립니다... 사내 게시판에는 연일 절망과 분노로 가득찬 글들이 쏟아집니다....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리고 KBS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과 노여움을 느끼는 기자, PD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입니다. 최근 KBS의 변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의 언론사에서 신나게 일만 하던, 때로는 좌파 빨갱이라는 욕을 먹어 가면서도 꾸준히 스스로의 길을 걷던 젊은 기자, PD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여러분이 현장에서 마주치는 그 썩을 놈의 KBS 기자, PD들입니다. 대부분 2-6년차 기자, 바로 정연주 사장 재임 시절 들어온 '정연주 kids(아이들)'입니다.

KBS 출신 이명박 후보 언론특보들의 활약

KBS가 이렇게 바뀌기 전인 2007년 11월 21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KBS에 왔다. '질문 있습니다!'라는 KBS 특별 토론그램에 출연하기 위해서였다. 대통령 후보 한 명을 상대로 패널과 일반 시민, 누리꾼이 질문하고, 후보가 이에 답을 하는 특별기획 프로였다.

이명박 후보는 부인과 함께 방송이 시작되기 20분 전쯤인 밤 9시 40분께 KBS 본관에 도착했다. 그의 주변에는 박형준, 나경원, 정병국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뿐 아니라 언론특보들도 대거 함께 했다. 이들 중 특히 내 눈에 띈 인물은 KBS 출신으로 이명박 캠프에 들어간 사람들이었다. 김인규 방송전략실장(전 KBS 기자), 이성완 TV 토론팀장(전 KBS 시사프로 PD), 양휘부 상임 특보(전 KBS 기자, 현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등이 이명박 후보 주변에 있었다.

나와 부사장, 보도본부장이 이명박 후보 일행을 시청자 광장 안에서 맞았다. 이명박 후보뿐 아니라 다른 정당의 후보도 시청자 광장에서 맞았다. 선거철에는 특히 민감하여, 어떤 후보는 마중을 하고, 또 어떤 후보는 마중을 않을 경우 시비가 일기 때문에 정당의 대선 후보는 가리지 않고 마중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차OO KBS 시청자센터장은 지난해 11월 21일 밤 11시 생방송 '질문 있습니다!'라는 KBS 특별 토론그램에 출연하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게 생방송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 "자연스럽게 하세요"라고 조언(?)을 했다.
차OO KBS 시청자센터장은 지난해 11월 21일 밤 11시 생방송 '질문 있습니다!'라는 KBS 특별 토론그램에 출연하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게 생방송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 "자연스럽게 하세요"라고 조언(?)을 했다. ⓒ PD저널

이날이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그날 차OO 시청자 센터장의 행태가 유별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명박 후보가 생방송 토론에 들어가기 직전 이 후보에게 "자연스럽게 하세요"라고 애교 섞인 조언을 하는가 하면 토론 사회자인 정관용씨와 이명박 후보가 생방송에 앞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에도 이명박 후보 바로 옆에 붙어 서서 귀를 쫑긋하는 장면이 사진에 찍혀 이튿날 <PD 저널>과 <오마이뉴스>에 크게 등장했던 것이다.

그의 이런 행태를 두고 KBS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다. 사내 게시판에는 이명박 후보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하는 모습이 추하다며 그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이 많이 올랐다.

바로 이런 분이 "바위처럼 자리를 지키겠다"는 나의 발언이 있은 다음날  "(한국방송) 공사 안팎에선 작금의 편파 방송이 광기를 띠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하면서, 자동 보직해촉을 18일 앞두고, 보직 사표를 던지며 기자회견까지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봄, 총선 때 고향인 경북 어느 지역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최근에는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그의 부끄러운 행실이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지난 8월 29일자 8면 머리기사에서 이런 내용이 전해졌다.

차 씨는 작년 총선 직전 모 건설업체 대표 S씨에게 '프랑스 뮤지컬 공연단 초청 사업을 하면 KBS가 도와주게 할 테니 출마를 도와 달라"고 부탁해 1억 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차 씨는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려 했으나, 공천에서 떨어졌다... 차 씨가 대선 직후엔 '이명박 후보에게 당선축하금을 줘야 한다'면서 S씨에게 3000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교양 PD 출신인 차 씨는 2007년 대선 직전 이명박 후보 지지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KBS를 떠났다.

이 기사의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얼마 뒤, 불구속 기소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런 인물들이 중요직책을 맡고 있으니...

차OO 센터장과 함께, 평균 연봉 1억 원 안팎의 '귀족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가진 '공정방송노조'(1직급 노조)의 대표를 지냈고, '녹취록 파문' 때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의원님, 한 배입니다. 좌초되면 저희는 죽습니다"라고 했던 윤OO 전 KBS 심의위원은 지금은 편성본부 외주제작국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디 윤OO뿐이겠는가. 이명박 후보의 방송특보를 지낸 김OO의 사내 조직이라는 소문이 나돌아 온 '수요회'의 주요 멤버들 상당수가 지금 요직을 맡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내가 2003년 4월 취임사에서 정치권에는 절대 인사 청탁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는데도, 1주일도 채 안 돼 당시 민주당 거물급 정치인을 통해 인사 청탁을 해온 '간 큰' 인물도 있었다. 나는 바로 다음 인사  때 그를 (보도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한직으로 보내보렸다. 그 일로 (나와 감방동기인) 그 민주당 인사는 그 뒤 나를 만날 때마다 '독한 사람'이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런 인사청탁을 한 인물인 김00은 '귀족 노동자' 단체인 '공정방송노조' 공동 위원장을 하면서 윤OO와 함께 '반정연주' 대열에 앞장 섰으며, 나의 해임 이후 해설위원으로 복귀했다. 그가 2003년 5월, 민주당 거물급 정치인을 통해 청탁했던 자리는 '해설위원실장'이었다.

또 2TV '뉴스광장' 앵커 공개 모집 때 응모도 하지 않았던 인물이 앵커를 결정하는 날, 느닷없이 내게
'뉴스광장 앵커 교체 관련'이라는 제목으로 된 이메일을 보내 앵커시켜 달라고 졸라 댄 박OO 기자라는 '간 큰' 인물이 또 있었다. 당시 보도본부에서는 앵커를 공개모집을 했으며, 팀장 투표, 관련부서 투표 등을 통해 최고 점수를 받는 기자 또는 아나운서를 앵커로 뽑았다(아마도 박OO 기자는 사장이 앵커 결정에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특파원 결정이건, 앵커 결정이건, 사장인 내가 개입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공개 모집 절차'라는 시스템을 통해 결정했을 뿐이었다. 나는 '제왕적 권력'을 가졌다고 흔히 비판받아 온 KBS 사장자리를 '가장 힘 없는 자리'로 만들겠다고 취임 초기부터 공언을 해왔던 터였다).

그런데 이런 공개모집의 절차를 깡그리 무시한 채 박OO 기자는 앵커 결정 당일날 아침 내게 이메일을 보내 "저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뉴스광장 업그레이드에 힘을 쏟겠습니다"라고 했다. 당시 기자협회장이던 그는 박승규 노조 출범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KBS 보도본부 내에 소문이 나있었으며, 지금은 그의 소원을 풀어 앵커가 되었다. 누구에게 이메일을 또 보냈는지, 궁금하다.

이런 인물도 있었다. 내가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을 때 KBS 특파원으로 함께 워싱턴에서 일했던 오00는 내가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 회계부정으로 6개월 정직까지 받았던 인물이다. 회계부정의 성격으로 보면 파면, 해임 감이었으나 6개월 정직으로 살아남은 행운아였다. 그는 지금 KBS 1라디오의 주요 프로를 맡고 있다.

예를 들어 본 몇 몇에 불과하다. 바로 이런 부류가 요즘 KBS에서 속된 말로 잘 나가는 인물들이다. 그러니 신뢰도 1위가 가능하겠는가.

이런 부류로 상징되는 인물들과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 3년 8개월 동안 줄기차게 '반 정연주'를 외친 진종철, 박승규 노조의 실체, 5년 4개월 KBS 재임 기간 중 이루려 했던 꿈과 그 가운데 일부를 이뤘을 때의 보람, 그리고 수많은 좌절과 실패, 그 속에서 절절하게 느낀 나의 한계, 공영방송의 공적 가치... 그런 이야기들을 증언하고자 한다. 그러한 증언을 통해 KBS의 어제와 오늘의 실체가 어느 정도 보일 것이며,  KBS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사회의 문제, 모순, 한계, 희망 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KBS가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며, 그러기에 'KBS 이야기'는 단순히 KBS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원고 정연주 vs 피고 이명박 대통령

해임무효 소송자료 표지 '원고 정연주' '피고 대통령'이라고 밝히고 있는 해임무효소송기록 표지.
아직 1심이 끝나지 않았다
해임무효 소송자료 표지'원고 정연주' '피고 대통령'이라고 밝히고 있는 해임무효소송기록 표지. 아직 1심이 끝나지 않았다 ⓒ 정연주
'KBS 이야기'의 가장 절실한 대목은 아무래도 나의 사퇴, 해임 압박을 둘러싼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 이야기의 한가운데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지난해 8월 11일,  KBS 사장인 나를 해임한 당사자는 이명박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진행중인 '해임처분 무효 확인소송'의 당사자는 '원고 정연주' '피고 대통령'으로 되어 있다. 묘하게 운명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이 사적으로 얽혀 있는데다, 이렇게 해임당사자로 공적으로도 얽혀 있기 때문이다.

사적인 인연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돈 간이다. 내 사촌 형님의 처 이모 아들, 그러니까 사촌 형수의 이종사촌이 이명박 대통령이다. 내가 1975년 3월 동아일보에서 해직되고, 70년대 후반에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으며, 80년대 초에는 5.17 이후 수배되어 1년 가까이 도망자 신세가 되는 등 험한 세월을 보내다 보니, 친척들과 자연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1982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 가 거기서 18년을 지나는 통에 사촌 형수의 이종사촌이 누구인지도 잘 몰랐다. 이명박 대통령과 사돈 간이라는 사실도 지난해 알게 되었다.

서로의 고향으로 치면 참 가까운 거리다. 이명박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경북 포항 북쪽의 흥해에서, 내가 태어난 경북 월성군(지금은 경주시) 강동까지는 거리가 40리(16km)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강동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에 가족이 모두 경주로 옮겨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런데 중 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경주와 포항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인근에 있는 시골의 고만고만한 도시, 읍내 사이에는 흔히 라이벌 의식이 있기 마련이다.

경주-포항 사이도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예를 들면 경주-포항의 고등학교 사이 축구나 농구 경기가 있을 때면, 서로 방문지에서 험한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포항 팀이 경주에 오면 혼이 났고, 경주 팀이 포항에 가면 곤욕을 치렀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나돌았다. 그래서 우리들 사이에는 "경주 모기하고 포항 모기하고는 절대 사돈 삼지 않는다"는 농담도 있었다. 바닷가인 포항 모기가 양말을 뚫을 정도로 드세기도 했지만, 경주와 포항 사이 경쟁심리 탓일 터다.

작년에 나의 사퇴, 해임 압박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 어느 누리꾼이 "포항 사람과 경주 사람이 왜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게 싸우냐"고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을 보면서 나는 쓰게 웃었다. 포항 모기와는 사돈도 맺지 않는데….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정연주#KBS#이명박#해임무효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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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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