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용의자가 승용차를 몰고 도주한다. 그리고 경찰차가 그를 뒤쫓는다. 용의자는 겁에 질리고 당황해서 승용차로 보도에 있는 우체통을 들이받고 멈춰선다.
십중팔구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용의자들은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 이럴 경우 추격했던 경찰은 어떻게 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좋을까.
적절한 경찰 절차에 의하면 이렇다. 경찰은 총을 뽑고 접근해서, 용의자들을 차 밖으로 빼낸 다음, 무기를 버리게 하고 수갑을 채운다. 이런 식으로 상황을 안전하게 통제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범죄현장의 상황은 항상 변수가 많고 유동적이다. 교과서적인 절차대로만 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지경에 놓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제임스 패터슨의 2005년 작품인 <해프문 베이 연쇄살인>에서 주인공인 강력반 부서장 린지 박서가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한다. 그녀는 파트너와 함께 경찰차를 몰고 용의자를 추적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용의자의 차량은 도로 한쪽에 처박히고 만다.
총기 사용으로 고소당한 경찰 린지
린지와 파트너는 총을 뽑고 용의자에게 접근하지만 그 용의자들이 10대 남매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에게는 운전면허도 없고 차량도 어디선가 훔친 것만 같다. 린지는 그들이 부상당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차밖으로 빼내려는 순간, 10대 남매는 총을 꺼내서 경찰에게 쏘기 시작한다. 도심 한복판에서 경찰과 10대들 사이의 총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경찰이 아닌 일반인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10대 남매에게 총을 쏘더라도 별 문제될 것은 없다. 정당방위로 충분히 인정받을만 하니까. 하지만 경찰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총격전을 승리로 이끌더라도 총기를 사용할만한 상황이었나를 놓고 경찰의 자체조사를 받는다. 어쩌면 문책을 받거나 감봉 또는 정직을 당할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피해자의 가족들로부터 고소가 들어올지도 모른다.
린지 박서는 어쩔수 없이 총기를 사용하지만 결과는 비참하다. 남매중에서 한 명이 죽고 한 명은 전신마비 상태에 빠진다. 총기사용에 대한 조사가 끝날 때까지 정직 처분을 받고 여기에 더해서 남매의 아버지로 부터 고소가 들어온다. 혐의는 세 가지다. 과실치사, 공권력 남용 그리고 경찰 위법 행위라는 것이다. 그 아버지는 손해배상으로 5천만 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재판에서 패할 경우 린지의 인생은 종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해프문 베이 연쇄살인>은 이렇게 시작된다. 린지는 정직 상태에서 휴양지인 해프문 베이로 향한다. 조용히 재판을 준비하면서 매스컴의 눈을 피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린지가 가지고 있는 경찰로서의 본성은 거기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해프문 베이에서 잔인한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린지는 이 살인들이 자신이 예전에 담당했지만 미결로 끝난 살인사건과 유사하다는 점을 밝혀낸다. 이제 린지의 앞에는 두 마리 토끼가 놓여있다. 린지는 재판을 승리로 끌고 가면서 동시에 연쇄살인을 추적해야하는 것이다.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인 여성들
<해프문 베이 연쇄살인>은 '여성살인클럽 시리즈'의 네번째 편이다. 작가인 제임스 패터슨은 남성이지만 이 시리즈에서 주요인물들을 전부 여성으로 채워넣었다. 린지 박서를 포함해서 검시관 클레어 워시번, 신문기자 신디 토머스 등. 이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들로, 함께 힘을 모아서 범죄를 해결하자고 '여성살인클럽'을 만들게 되었다.
서로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사건이 벽에 막히면 이들은 아지트라 할 수 있는 카페에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수다를 떤다. 속 시원한 이야기로 관료주의를 처단하고, 그렇게 떠들다가 사건의 돌파구를 만들기도 한다. 카페에 모여있는 시간이면 그들이 함께 헤쳐온 모든 것으로 다져진 마법같은 교감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클럽을 만든 이후에 여러 건의 사건을 막아낼 만큼 멋진 활약을 보였지만,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고 불행한 일도 있었다. 전편에서 등장했던 검사 질 번하트 대신에 이번 편에서는 혼혈인 변호사 유키 카스텔라노가 클럽 멤버로 합류한다.
멤버가 바뀌더라도 인원은 그대로 네 명을 유지하고 있고, 이들의 직업도 모두 범죄를 상대하기에 적합하다. 이런 정체성이 여성살인클럽을 끌고가는 힘일 것이다. 작가는 복잡한 범죄와 함께 난감한 상황에 빠진 여성의 심리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잘 만든 시리즈물이 그렇듯이, 이 시리즈도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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