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새벽 국민권익위원회로 첫 자전거 출근을 하는 이재오 위원장을 동행 취재하기로 결정했지만,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익히 들어왔던 '라이더 이재오'의 명성 때문이었다.
정계 입문 전부터 십수 년을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자전거를 탔고, 최근 발간한 자신의 저서 <함박웃음>에서도 "자전거는 나의 힘"이라고 자부하는 이재오. 2007년 9월 추석 연휴를 포함해 4박 5일간의 부산-서울간 대운하 예정지 자전거 탐방에 나선 이재오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자전거로 동행취재한 <오마이뉴스> 동료 기자에게서도 "이재오 (의원) 자전거 잘 타~ 선수야 선수"라는 말을 들었다.
자전거 출퇴근 경력이 2년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을 설파해오던 30대인 <오마이뉴스> 기자가 60대 정치인의 힘있고 거친 라이딩을 따라잡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약간 긴장된 마음을 안고 이 위원장 집 앞으로 갔다.
산악자전거를 끌고 구산동 자택을 나선 이 위원장은 평소 지역구를 누빌 때와는 달리 '라이더 완전복장' 차림이었다. 그는 "우리 동네가 아니고 약간 멀리 나가는 거니까"라고 설명했다. 매일 서너시간씩 지역구를 누빈 이 위원장의 자전거는 이제 권익위와 구산동을 오고 갈 예정이다.
새벽이라 행인이 적었지만 이 위원장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여느 때처럼 "안녕하세요"라며 인사했다. 평소와 달리 이날은 검정 색안경을 낀 탓에 한 중년 여성은 이 위원장을 뒤늦게서야 알아보고 답인사를 하기도 했다.
속도보다 안전 우선하는 '조심스러운 라이딩'... "추월은 안해"
이 위원장을 3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시켜준 은평을 지역구를 벗어나면서 자전거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아, 이제 시작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깐뿐, 이날 라이딩에 대한 불안감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위원장은 '조심스러운 라이더'였다. 길이 뻥 뚫려 있다 해도 쉽사리 가속하지 않았다. 오르막에서 '댄싱'(안장에서 일어나 몸무게와 다리, 팔을 함께 이용해 페달을 밟는 것)을 치지 않았고, 내리막에서도 페달을 밟지 않고 중력에 의존했다. 급할 것 하나 없이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달리는 스타일이었다.
보통 자전거를 타고 차도를 달리는 데 익숙해지면 인도로는 잘 올라가지 않는 경향이 생긴다. 기자의 경우는 '도로교통법 상 인정된 자전거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오기 때문인지, 불가피한 경우를 빼고는 인도를 잘 이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무모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이 위원장은 주로 차도로 다니긴 했지만, 중간중간 인도를 적절히 섞어 이용했다. 예를 들어 차도에 버스가 주차중이라면, 버스 왼편 도로로 추월하지 않고 버스 오른편 인도로 올라갔다가 다시 차도로 진입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하는 게 안전하잖아"라며 "나는 추월은 안해"라고 간단히 이유를 설명했다.
"길을 막고 있으면 어떡해!" 노인에게 혼쭐난 '실세 중의 실세'
인도와 차도를 오르내리면서 '안전 라이딩'을 해도 엉뚱한 곳에서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이 위원장과 기자는 역촌동에 있는 한 4거리에서 인도에 올라가 파란불을 기다렸고, 자전거 두 대가 인도 위에 서 있으니 길이 막혔다. 자전거를 타고 오던 한 백발 노인이 이 위원장을 향해 "여기가 주차장인가 주차장?"이라고 호통을 쳤다.
이 위원장은 "아이~ 신호를 기다리느라고…"라고 양해를 구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길을 막고 서 있으면 어떡해!" 노인의 호통만 더 들어야 했다. 이명박 정권 '실세 중의 실세'가 한 노인에게 꾸지람을 듣고 아무 말도 못하는, 모양이 좀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됐다. 그 노인이 이 위원장인 줄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 위원장의 조심스런 라이딩 스타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대부분의 라이더들이 귀찮게 생각하는 수신호를 적극 실천하고 있었다, 특히 자신이 좌회전할 때면 꼭 왼팔을 들어 뒤에 오는 차량에게 신호를 보냈다.
속도를 즐기지 않는 조심스러운 라이딩이었지만, 언덕길에서 이 위원장의 기량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도로에 경사가 지기 시작하자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더니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무악재 최고점까지 내달렸다. 숨 찬 기색도 없이.
정확히 30분 걸려 미근동 국민권익위원회 건물 앞에 도착했다. TV카메라 기자와 사진기자들이 이 위원장의 자전거 탄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나와 있었고, 위원회 간부 서너명이 이 위원장을 영접했다.
"내 정치스타일도 원래는 부드러워"
이날 자전거를 타면서 본 '라이더 이재오'의 모습은 재야시절부터 줄곧 보여줬던 '투사'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건물로 들어서는 이 위원장에게 '자전거 타는 스타일이 정치하던 것과는 다르게 아주 부드럽다'고 한마디를 건넸더니, 이 위원장은 자신의 변화를 암시하는 듯한 한마디를 던지고는 환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뭐가 달라? 내 정치스타일도 원래는 부드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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