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국민 시인 하페즈의 무덤에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는데 방향 잡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걸어서 갈만한 거리라고 해서 쉬라즈 시내를 돌아다녔는데 생각처럼 길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침 이날은 휴일이라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그래서 사람도 다니지 않는 빈 거리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가족을 만났습니다.
길을 묻자 과년한 그 집 딸은 친절하게도 우릴 하페즈의 무덤까지 태워다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 생각은 안주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말은 한 마디도 안 통하지만 표정으로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말을 뛰어넘는 다른 의사소통 수단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몇 년간 일하다 와서 영어를 꽤 잘 하는 이 집 가장에게서는 이상한 거리감이나 경계심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거리감이나 부정적인 느낌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런 경계심을 난 이전에도 몇 번 느꼈습니다.
주로 이런 느낌은 남자들에게서 보입니다. 이란 여자들이 대체로 호기심과 진심을 보여준다면 남자들은 이런 식의 거리감이나 경계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경계심을 보이는 주인 남자는 우릴 하페즈의 무덤에 데려다줄 의사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인남자가 한 편이 되고 모녀가 한 편이 돼서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더니 수적으로 우세한 모녀가 이겼는지 우릴 차로 하페즈의 무덤까지 데려다주겠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차에서 젊은 아가씨는 우리의 이름과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여러 가지를 물었습니다. 우리가 코리아서 왔다고 하니까 "양곰?" 했습니다. '양곰'은 '대장금'의 이란식 표현입니다. '대장금'이 이란에서 시청률 80퍼센트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워서인지 이란인은 한국 하면 '대장금'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이영애씨가 들으면 기절하게도 양곰을 닮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모녀의 열린 마음과 친절이 가슴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이란 와서 좋은 게 이런 것입니다. 2500년 된 페르세폴리스를 구경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광활한 사막을, 새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카스피해를 보는 것보다도 이렇게 이방인에게 순수한 마음을 보여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훨씬 만족감이 높았습니다.
이른 아침이지만 하페즈의 무덤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맞아 나들이를 나와 있었습니다. 하페즈의 무덤은 일개 시인의 무덤이지만 아름다운 정원과 사철 시원한 물이 고여 있는 연못이 있고 도서관과 찻집도 있어 이란인에게는 휴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페즈는 이란인에게서 독특한 자리를 점하고 있는 시인입니다. 이란 가정에는 두 권의 책이 있는데 한 권은 이슬람교 성전인 코란이고, 다른 한 권이 바로 하페즈의 시집이라고 합니다. 하페즈의 시에서 그들은 정신의 양식을 구하고 삶의 방향을 잡는 모양입니다.
하페즈의 묘 입구에서는 새 점을 봐주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새에게 종이 한 장을 뽑게 하는데 새가 뽑은 종이에는 하페즈의 시구가 적혀 있고, 그 시구에서 사람들은 삶의 의문을 해결하고, 때로는 고민을 해결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하페즈는 시인을 뛰어넘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역시 대접도 남달랐습니다. 하페즈가 누워 있는 대리석 관 위에는 팔각 정자가 서 있습니다. 독특한 건물이었습니다. 하페즈의 시가 적힌 대리석 관 앞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엎드려 기도를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하페즈는 그냥 시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시로 운명을 점치고 또 그의 무덤 앞에서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페즈는 이란인에게는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도 이란인들처럼 하페즈의 대리석 무덤에 엎드려 기도를 했습니다. 큰 애는 글을 잘 쓰고 싶다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나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기도했는데 우리는 이렇게 의견 통일을 봤습니다. 이곳이 하페즈의 무덤이고, 시인의 무덤에서는 이런 기도를 해야 한다는 편견 때문에 좀체 마음이 잘 맞지 않는 큰 애와 내가 의견 일치를 봤던 것 같습니다.
이슬람의 한 종파인 수피즘의 사상을 시로 표현한 하페즈의 시가 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페즈의 기념관 한쪽에 마련된 기념품 가게로 들어가 하페즈의 영문시가 있느냐고 했더니 주인은 책 한 권을 내주었습니다. 이 책을 살 때는 자신감에 충만해서 한 권을 냉큼 빼들었는데 지금은 책장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짧은 나의 영어실력과 전무한 이슬람교에 대한 지식으로는 독해가 불가능해서 아까운 10달러만 날린 것이지요.
충동구매를 어지간히 자제하던 내가 10달러나 되는 거금을 아낌없이 주머니에서 뺀 걸 보면 하페즈의 무덤에서 그곳 분위기에 완전히 휩쓸렸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하페즈는 어떤 시인이고 그의 시는 어떤 경지에 이르렀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적일까'하는 생각에 휩싸였던 모양입니다.
하페즈의 무덤에는 기도실도 있었습니다. 장식도 없고 가구도 없이 그냥 카펫만 깔린 조그만 방이었습니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한 남자가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하페즈가 페르시아 최고의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대부분의 시인은 자기 감정을 시로 표현하는 편입니다. 허나 하페즈는 종교 시인답게 많은 기도를 통해 신과 보다 가까운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신과의 거리감에 목마른 사람들은 하페즈의 시를 통해 그 거리감을 좁히고 싶어 하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페즈의 무덤을 다녀온 후 내게는 숙제 하나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책장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는 하페즈의 시를 읽는 것이지요. 나 또한 다른 이란인들처럼 신과의 거리에 목말라있는데 하페즈를 통해서 신에게로 성큼 다가가고 싶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