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보고받지 않았다."
"제가 답변하기 적절치 않다."
"……."
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무총리실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대한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의 답변이다. 그는 이날 오전 질의시간 동안 쏟아진 의원들의 질의에 제대로 답변을 못했고, 침묵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박선숙 민주당 의원은 정운찬 총리의 '용산 참사' 현장 방문과 관련한 질의를 하기 전 "총리실장이 답변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진복 한나라당 의원은 임진강 방류사고 관련 질의를 하면서 권 실장이 답변을 제대로 못 하자 "내용도 모르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도대체 누구에게 질의해야 하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이처럼 국무총리가 빠진 국무총리실 국정감사에는 뜨거운 논란은커녕, 맥 빠진 질의응답만 가득했다. 이에 대해 많은 의원들은 국무총리가 국무총리실 국정감사에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무총리실 쪽은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며 "관례상 총리는 국정감사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김동철 민주당 의원은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은 과거 권위주의시대가 아니고 또한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이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에 출석하는 관행이 2년 이상 정착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의원은 "국무총리실장이 답변할 수 없는 의원들의 질의가 많다"며 "정운찬 총리가 국감을 지켜본다고 했는데,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처럼 총리가 국감에 나서서 답변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선 정무위원장(한나라당) 역시 "국무총리실장이 제대로 답변을 못한다면, 국무총리가 참석해야 한다"고 전했다.
권태신 실장 "용산 참사 원인은 철거민들의 불법적 행동 탓"
이날 오전 질의에서 권태신 실장이 '용산 참사' 원인을 철거민들의 과도한 보상 요구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이는 지난 3일 '용산 참사' 현장을 방문한 정운찬 총리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권 실장은 "용산 참사의 본질은 무엇이냐?"는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의 물음에 "철거민들이 자신의 주장을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나타낸 것이다, 국도 1호선에 버스와 일반인을 향해 새총을 쏘고, 교통을 마비시켰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이 "앞뒤가 바뀌었다, 경찰이 개입하니까 철거민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 아니냐"며 "사람은 사람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권 실장은 "이 대통령과 정 총리는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으로 살다가, 저렇게(대통령·총리) 됐다"며 "그분들은 누구보다 가난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밝혔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중도 실용 정책을 비판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정운찬 총리가 입각하면서 이 대통령의 중도 실용이라는 국정 운영철학에 공감한다고 했는데, 이해를 못 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이 대통령이 새롭게 내세운 중도 실용 정책이 노무현 정부 정책이나 정권 초기와 뭐가 다르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한나라당이 야당 때 비판한 재정 적자 확대, 위원회 급증, 공기업 부채 급증, 부동산 투기 붐 등은 현 정부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논란'과 관련, 야당 의원들은 세종시법의 원안 처리를 강조했다. 박상돈 자유선진당 의원은 "일부 부처만 세종시로 이전하는 것을 두고 처음에는 효율적이라고 해놓고, 이제는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권태신 실장은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녀봤는데, 캐나다와 호주의 행정수도인 오타와와 캔버라의 경우를 본다면 세종시에 행정부 일부만 가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은 "세종시 문제는 산업적 해결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충청권과 나라 정책을 위한 것"이라며 권 실장을 거들었다.
이한구 "MB정부에서 사실상의 국가채무 1439조원으로 사상 최대"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오후 질의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호되게 비판했다.
이 의원은 4대강 사업과 관련, "4대강을 살리면 지방 경제가 살아난다고 하지만, 토목공사를 아무리 벌려봤자 중앙에 있는 대형 건설업체가 돈을 가져간다"고 지적했다. 또한 "4대강 살리기에 예산을 몰아주다보니 30대 선도 프로젝트 등 다른 대형 국책사업도 예산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서 질의자료를 통해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직접채무는 308조3천억원, '사실상의 국가부채'는 1439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실상의 국가부채'는 국가직접 채무·보증채무·4대 공적연금 책임준비금 부족액·통화안정증권 잔액·공기업 부채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어 이 의원은 "참여정부 때인 2007년 '사실상의 국가부채'는 1295조원에 달했지만, 이명박 정권 교체 이후에도 큰 폭의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며 "국민 1인당 '사실상의 국가부채'는 2961만원으로 1997년 800만원보다 약 4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날 질의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에 쏟아졌다. 박상돈 자유선진당 의원은 "4대강 사업 때문에 교육·에너지·취약계층을 위한 예산이 삭감됐다"면서 "또한 그 사업비도 균등 배분되어야 하는데, 사업비의 58%가 낙동강 살리기에 투입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은 "낙동강의 홍수 조절량이 한강의 1/3밖에 되지 않아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며 "4대강 사업은 홍수 피해를 방지하고 아름다운 강을 조성하는 것이 취지로 지역 주민 대부분이 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질타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늘어난 일자리는 대부분 임시직"이라며 "연말쯤이면 그동안 유보된 실업률이 급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권태신 실장은 "프랑스에서는 임금을 낮추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여러가지 규제 때문에 청년실업이 높다"며 "중요한 것은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민간기업이 잘 되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