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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일이지만 생생하다. 한 방송에 보도된, 청각장애학교 아이들에 대한 성폭력 사건.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필자와 같은 학과 사람들은 경악했다. 분통이 터져 울기도 했고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했다. 당시 우리에게는 그 일이 특수교육교사가 될 사람들로서, 상식으로 이해하기도 또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곧 그것을 '버렸다'.

 

'거짓과 싸워야 한다. 진실은 어디서나 통하기 마련이다.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말로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위선과 폭력 그리고 차별과 배제에 분노하고 눈물 흘리는 일',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차갑고 단단한 벽과 같은 현실 앞에서 '그것'을 제대로 마주대하고 싸우고자 하며 진실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도가니>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망설였다. 여러 곳에서 접할 수 있는 서평이나 작가의 인터뷰도 애써 보지 않았다.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그때처럼 또 놓아버리지는 않을까.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필자에게 무언가 답을 주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진실을 마주하고자 한다면 꽤 큰 용기가 필요하며, 매우 어려운 일이구나!

 

무진시(霧津市)를 온전히 뒤덮은 안개처럼, 개인이 아닌 어떠한 '힘'으로 점점 묻혀가는 '광란의 도가니'에서 진실을 파헤쳐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일. 그것을 작가 공지영이 하고야 말았다. 필자가 단지 작가가 쓴 도가니라는 소설을 읽는 작업만을 했을 뿐이라고 해도,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필자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그토록 알리고자 했던 '불편한 진실'을 안고 있었다.

 

기간제교사로 청각장애학교인 자애학교에서 일을 하게 된 강인호. 그가 서울에서 무진으로 내려가는 장면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애학교의 첫 인상은 안개보다 더한 암흑이다. 한 남자아이의 죽음을 대하는 학교와 경찰서의 '사람들'이 그랬다. 아이들에게서 서서히 밝혀지는 자애학교 교장, 행정실장, 기숙사 생활지도교사의 행태가 그랬다. 그것을 보고도 보지 못한 척 하는, 듣고도 듣지 못한 적 하는 사람들이 그랬다. '암흑'이었다.

 

내가, 내가 너희들을 돕고 싶어

 

한 남자가 어떠한 기회로 근무하게 된 학교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이 사회가 얼마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결코 애써 돌려 말하지 않는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은 같은 '감각장애'로 불리지만, 많이 다르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세상과의 소통 자체가 '수화'라는 언어가 없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이 느낄 고독은 말로 다 할수 없다. 시각장애인의 경우는 한꺼번에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와 감각을 통합하는 기능을 하는 시각이 차단되지만, 사람과의 대면에서 소통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 사회가 규정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느낄 고독이야, 차별받고 배제당한 분노야 이렇게 구분하지 않아도 당연하지만 말이다.

 

소통. 사람들이 참 쉽게, 많이들 쓰는 말이다. 그러나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강인호라는 인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결코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혼한 채 딸 둘을 키우며 인권운동센터에서 '내가 변하지 않기 위해, 나의 딸들을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하는 서유진도, 강인호와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였다.

 

- 삼학년 겨울방학이 지난 다음 담임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어요.

- 박보현 선생님께 물어보았는데 대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했다면서 나보고 선생님들을 모함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어요.

(본문 중, 아이들의 인터뷰 중에서)

 

잦은 성폭력과 폭행에 시달리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아이들. 아니 말하고서도 거짓말쟁이로 몰리고, 그 누구도 어떠한 어른도 믿을 수 없게 된 아이들. 그 아이들이 다시 '사람'을 믿을 수 있도록 한다. "내가 너희를 돕고 싶어." 하고, 진심을 다해 말하는 사람들이 말이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 강인호 : 진유리는, 지적장애아야. 겨우 여섯 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아이라고. …(중략)… 그리고 무엇보다 상식적으로……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 서유진 : 여기 일하다보면 말이야. 어떻게 설명해야 알아들을지 모르겠지만, 그 상식이 말이야…… 그게…… 없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 한 꺼풀만 벗기면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이들과 아이들, 그리고 그 반대에 서 있는 학교, 교육청, 시, 경찰서, 법정 등이 어떻게 싸워나가는지 그리고 결말은 어떻게 되는지를 작가 공지영은 '아름답게' 그리지 않는다.

 

강인호는 결국 현장에 남아 끝까지 진실을 붙잡는 대신, 자신의 가족과 자신을 위해 서울로 떠난다. 소시민의 삶을 선택한 그에게 과연 어느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서유진과 아이들은 그렇게 떠난 강인호를 욕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스무 살, 전공 선택을 할 때 반대가 심하셨던 필자의 어머니께서 이 책을 먼저 읽으시고는 눈물을 보이시면서 말씀하셨다.

 

- 그래. 이 책 네가 꼭 읽어야겠다. 적어도 네가 있는 곳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네가 애를 써야지. 그럼.

 

책의 결론이 어떻게 났든, 이제 필자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될 사람들은 꿈이 아닌 현실 앞에 서야 한다. 굉장히 차갑고 단단한,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진실'을 그 속에 감추고 뻔뻔하게 서 있는 벽과 같은 현실 앞에 말이다.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개인의 자유의지이다. 필자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갈등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다시 놓지 말자고. 끝없이 용기를 가지고 또 용기를 내며 진실을 향해 걸어가고 싶다고.


도가니 (100쇄 기념 특별개정판)

공지영 지음, 창비(2017)


#도가니#공지영#책#문학#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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