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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랜(The Plan: Big Ideas for America)>은 더 이상 정권을 창출하지 못하는 '불임정당'으로 불리며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던 미국 민주당에 상황돌파를 위한 선구적인 화두를 던진 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것도 더 이상 정권을 잡을 일이 없는 퇴임 대통령이 이 책을 즐겨 읽었던 이유는 뭘까.

<더 플랜>을 쓴 람 에마뉴엘과 브루스 리드 두 사람은 '평생 골수 민주당원'으로, 클린턴 행정부의 탄생과 정책운영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이다, 공화당의 장기집권 가능성이 점쳐지던 때, 이들은 이 책으로 민주당과 미국 정치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그리고 결국 선거에서 승리했다.

<웨스트 윙> <더 플랜> <담대한 희망>의 공통점은?

 미국 민주당의 전략가인 람 에마뉴엘과 브루스 리드가 지은 <더플랜>을 번역한 안병진 교수가 8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강의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전략가인 람 에마뉴엘과 브루스 리드가 지은 <더플랜>을 번역한 안병진 교수가 8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안병진 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대통령학을 전공하고 미국정치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정치 전문가다. 8일 저녁 다섯번째로 열린 '노무현이 읽은 책들' 강독회 강사로 나선 안 교수는 오바마 열풍이 일어날 수 있었던 징후를 2004년 대선 후보를 뽑는 민주당 경선에서부터 찾았다.

바로, 하워드 딘이다. 애국주의 열풍 속에서 용감하게도 '나는 이라크전에 반대한다'고 연설하자, 인터넷에서는 '딘 현상'(Dean Phenomena) 혹은 '딘풍'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안 교수는 '딘풍'의 핵심을 '용기'라고 단언했다.

하워드 딘은 자신의 야망을 이루진 못했지만, '딘풍'에서 나타난 미국 유권자들의 바램은 TV드라마 '웨스트 윙(The West Wing)'의 공전의 히트로, '더 플랜', 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에 대한 미국인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안 교수의 분석이다.

화가 난 낙농업자들 앞에서 연설하게 된 대선 후보가 "나는 빈곤 속에서 사는 어린이들의 우유구매가 힘들어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낙농계약에 반대 투표를 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에게 뭔가 다른 것을 기대한다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투표하십시오"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수많은 미국인들의 눈물을 뽑아낸 '웨스트 윙'. '선거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보다는 '미국을 위해 민주당이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역설하며 반향을 일으킨 '더 플랜'.

안 교수는 "새로운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읽고 그 흐름 속에서 정치인 본인이 망가지더라도 용기 있게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전투적 혼을 누가 갖고 있는가, <더 플랜>과 <웨스트 윙>은 이런 것을 보여줬다"고 역설했다.

안 교수는 이어 "미국인들이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에 열광한 것은 담겨 있는 세부적인 정책들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관통하는 '혼' 때문이었다"라고 진단했다. 마찬가지로 "'더 플랜'에는 대담한 정책들이 제시되진 않지만 유권자들이 갈망했던 '혼'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책광과 정치꾼이 결합해야... 노무현은 후반기로 갈수록 정책광"

<더 플랜>의 저자들은 정책광과 정치꾼이 결합해야 올바른 정치가 될 수 있다면서 클린턴 행정부의 경험을 예로 들고 있다. 국민들의 마음에 있는 진짜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여론조사 결과에 의존하는 정치꾼들이 필요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선 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정책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96년 대선에서 클린턴의 재선에 큰 공헌을 했던 '가치 아젠다 프로그램'을 정치꾼과 정책광이 잘 결합한 결과로 평가했다. 아이들이 폭력성 TV 프로그램을 못 보도록 하는 V-chip이나 학교 주변 범죄를 줄이기 위한 교복착용 정책 등과 같이 중산층의 생활과 밀착한 정책들은 언론매체와 고소득의 여론주도층에게는 조롱의 대상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클린턴의 지지도는 오르기 시작했다.

미국 중산층들이 '클린턴이 우리를 위해 뭔가 하려고 한다'는 신호를 읽고 지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국민의 여론을 정확히 읽은 정치꾼과 정책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한 정책광들이 적절하게 결합돼 클린턴에 대한 중산층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것.

안 교수는 정책광과 정치꾼에 대해 설명하면서 가장 정치꾼적인 정치인으로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꼽았다. 정책은 엉망이었지만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데에는 탁월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를 내렸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책광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정책광적으로 갔던 면이 있다"고 말했다.

"웃기지 마라, 문제는 프레임이 아니라 혼을 잃은 것"

 미국 민주당의 전략가인 람 에마뉴엘과 브루스 리드가 지은 <더플랜>을 번역한 안병진 교수가 8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강의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전략가인 람 에마뉴엘과 브루스 리드가 지은 <더플랜>을 번역한 안병진 교수가 8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미국 민주당은 패배의 주요인을 '프레임 게임'에서 공화당에게 밀리고 있는 것이라 판단하고 여기서 이기기 위한 대책에 골몰하던 때도 있었다. 세금감면을 얘기할 때 민주당은 '텍스 컷(tec cut)'이라 표현하는 반면, 공화당은 '텍스 릴리프(구제, relief)'라는 미려한 언어로 정책을 포장해 왔다는 것.

안 교수는 "사실 공화당의 언어 프레임 수준은 굉장하다"며 "지금은 어떻게 하면 유권자들의 무의식까지도 잘 따라잡느냐는 것에까지 고민이 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패배의 원인을 '프레임 게임'에서의 열세에서 찾았다. '공화당의 성공은 미국인의 눈을 속였기 때문이고, 민주당이 어둠의 기술을 익히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 교수는 "'더 플랜'은 '웃기지 마라, 문제의 핵심, 즉 민주당이 죽을 쑤고 있는 건 프레임 문제가 아니라 혼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이 대목에서 "한국의 어느 당이 생각난다"며 한국의 야당이 미국 민주당의 전철을 밟고 있는 현실을 거론했다. 그는 "그런 식의 접근은 지지율이 안나오는 것에 대한 핑계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박근혜의 천막당사는 쇼가 아니었다. 한나라당의 혁신을 위한 의지였다"며 "진정성이 문제의 핵심이고, 진정성이 있는 사람은 과도하게 헌신하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즉, 박 전 대표의 진정성이 천막당사라는 '과도한 헌신'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국민들에게 전달돼 한나라당이 뻔히 예상되던 총선 참패를 면하고 정권교체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노무현이 주목한 건 보수-진보 넘어선 '모두를 위한 공동체'"

이 책의 저자들이 극단적인 당파성에 절절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부분도 강조됐다. '더 플랜'의 저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전국민 봉사단' 같은 경우는 보수적 철학에 근거하고 있지만, 사회통합의 필요성이라는 진정성 때문이라면 이념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 책에서 주목한 가치도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이 책에서 읽어낸 것은 세부적인 정책 아이템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에 보수와 진보의 기득권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모든 시민들을 위한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까하는 것이 이 책의 철학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노 전 대통령은) 모든 시민들이 동등한 공동체이고 돈이 많은 사람도 존중되고 돈이 적은 사람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고,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는 세상을 꿈꾸셨던 것"이라며 "변화하는 시대에 보수와 진보의 기득권과 고정관념을 버리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이 책의 내용을 잘못 이해해서 '우리도 생활정치 아이템을 고민해서 플랜을 만들자'는 것으론 절대 성공 못한다"며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진정성에서부터 출발하면 좋은 정책은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집단지성의 시대를 맞아 풀뿌리 차원에서 시민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운동들을 시작하고 있다"며 "이런 운동들이 아래로부터의 시민주권 모임으로 수렴되면, 오바마의 '무브 온'과 같은 새로운 정치의 주인공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풀뿌리에서부터 훈련받은 오바마와 같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나면서 한국에도 거대한 태풍이 불 수 있다"고 전망했다.

 8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참석자들이 <더플랜>을 번역한 안병진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8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참석자들이 <더플랜>을 번역한 안병진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현장방문 이미지 메이킹과 진정성 일치 안되면 지지율 오래 못가"

강의 뒤 안 교수는 시장이나 공장 등 각종 현장 방문을 잘 하지 않았던 노 전 대통령과 최근 각종 시장 방문 횟수를 부쩍 늘리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교를 요청받기도 했다.

안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현장에 더 많이 갔다면 국민들에게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유럽 순방에서 돌아오다 비행기를 돌려 이라크 아르빌을 방문, 파병 장병들을 격려한 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반등했던 점을 언급했다.

그는 "21세기 국정 운영에서는 이미지 행보를 통해 정치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지율을 올려나간 것이 정치자본이 돼 결국 대통령이 하고 싶은 정책을 펴는데 뒷받침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이 각종 현장방문을 강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뛰어난 감각을 가진 대통령 측근들이 지난 정권을 거울 삼아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이런 이미지메이킹과 진정성이 일치되지 않으면, (현재의 지지율은) 절대로 오래 갈 수 없다"고 단언했다.



#더 플랜#노무현 강독회#안병진#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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