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단계의 어려움.. 겨우 이 정도의 일에 一개월 반이나 걸렸구나 하고 내심으로 한숨을 쉬면서, 겨우 한 단계의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듯이 상기된 얼굴을 한 후미를 데리고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 《고야쓰 미치코(子安美知子)/천계수 옮김-독일의 국민학교(외)》(범조사,1984) 22쪽"이 정도(程度)의 일에"는 "이만한 일에"나 "이런 일에"로 다듬고, '一개월(個月)'은 '한 달'로 다듬으며, '내심(內心)으로'는 '속으로'로 다듬습니다. '극복(克服)했다는'은 '이겨냈다는'으로 손질하고, '상기(上氣)된'은 '붉어진'이나 '달아오른'으로 손질해 줍니다.
┌ 한 단계의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듯이 │ │→ 한 단계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듯이 │→ 어려움 한 단계를 이겨냈다는 듯이 │→ 어려운 한 단계를 이겨냈다는 듯이 │→ 어려움을 한 단계 이겨냈다는 듯이 └ …'단계(段階)'란 일 차례에 따라 나아가는 흐름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한자말을 덜고 싶다면 "한 가지 어려움"이나 "어려움 한 가지"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또는 "어려움 하나"라 해 봅니다. 그리고, 이 한자말을 그대로 놓고 싶다면 그대로 놓으면 됩니다. 다만, 그대로 놓되 토씨 '-의'를 엉뚱하게 붙이지는 않아야 합니다. "한 단계의 어려움"이 아닌 "한 단계 어려움"이요, "어려움 한 단계"입니다.
저는 '단계'를 풀이하며 "일 차례에 따라 나아가는 흐름"이라 적었지만, 국어사전에는 "일의 차례에 따라 나아가는 과정"이라 적혀 있습니다.
이런 국어사전 풀이를 보면 이맛살을 찌푸릴밖에 없는데, "일 차례"로 적거나 "일하는 차례"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한자말 '과정(過程)'을 국어사전에서는 다시 "일이 되어 가는 경로(經路)"로 풀이하고, '경로'는 또다시 "일이 진행되는 방법이나 순서"라고 풀이하는데, 빙글빙글 돌아가는 뜻풀이를 헤아리면, '과정'이든 '경로'이든 '길'이나 '흐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말씀씀이를 살피면 '무엇무엇하는 과정'을 가리킨다는 '단계'라는 낱말 뒤에 아무렇지 않게 '과정'이라는 낱말을 달아 놓습니다. "한 단계의 과정"이라는 말투를 버젓이 씁니다. 겹말투로 잘못 쓰는 줄을 깨닫지 못합니다. 겹말투임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겹말투임을 알려주지 못합니다. 한 번 쓰고 두 번 쓰는 사이에 익숙해지고, 또 쓰고 거듭 쓰면서 손과 입에 익습니다. '단계 + -의'를 털어내도록 해 준다 할지라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뿐더러, 이 말투에서 헤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 한 단계의 과정마다 → 단계마다 / 과정마다 / 그때마다 ├ 한 단계의 과정을 건너뛰는 → 한 단계를 건너뛰는 / 과정 하나를 건너뛰는 └ 한 단계의 과정을 끝마치는 → 한 단계를 끝마치는 / 과정 하나를 끝마치는우리는 어떤 말을 써야 할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우리 말을 어떻게 써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올바르고 알맞게 가다듬을 말과 글이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과 마음을 어떠한 말그릇과 글그릇으로 담아내고 있는가 곰곰이 되씹어 봅니다.
엉터리 말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엉망진창 글에서 발버둥치는 우리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거나 껴안지 못하면서 우리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일구거나 북돋우지 못하고, 그예 우리 말글을 있는 그대로 아끼거나 사랑하지 못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삶도 생각도 말글도 한동아리로 대충대충 뒤죽박죽 엉성궂게 내동댕이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글날을 맞이한다고 해서 한글을 더 생각하는 모습을 찾아보지 못합니다. 2009년 10월 9일 한글날에, 인터넷포털 'naver'며 'nate'며 'daum'이며는 그동안 적어 온 알파벳 이름을 하루만 털어내고 한글로 '네이버'며 '네이트'며 '다음'이라고 적었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적을는지요? 고작 하루만 이렇게 시늉질을 하고 그칠는지요?
진보 이야기를 담아낸다고 하는 인터넷신문 'Redian'이며 'PRESSian'이며 'Ohmynews'며는 그나마 시늉질이라도 할 수 없는지요?
사람들이 말과 글을 말과 글답게 쓰지 못하는 까닭이라면, 여느 때부터 늘 꾸준히 말과 글을 살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느 때부터 옳고 바르게 말하고 글쓰고 듣고 읽도록 버릇이 들고 몸에 배어야 하는데, 이렇게 나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어버이가, 학교에서 교사가, 삶터에서는 지식인이나 기자가 참답고 바른 목소리를 들려주어야 참 넋과 얼을 키워 갈 텐데, 어느 누구도 이러한 데에는 깊이 눈길을 두지 않는 탓도 큽니다.
┌ 겨우 어려움 하나를 이겨냈다는 듯이 ├ 겨우 어려움 한 가지를 이겨냈다는 듯이 ├ 겨우 한 가지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듯이 ├ 겨우 한 가지를 이겨냈다는 듯이 └ …보기글을 다시 돌아본다면, '이겨내다'라는 낱말을 쓰고 있으니 '어려움'이라는 낱말은 덜어도 됩니다. 이겨낸다면 어려운 일을 이겨내지 쉬운 일을 이겨낸다고 하는 자리에서는 쓰지 않으니까요. 일본책을 우리 말로 옮기며 '克服'을 '극복'으로만 옮겼구나 싶은데, 이 자리에서는 '해내다'로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겨우 하나를 해냈다는 듯이"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돌아본다면, 글머리에 '겨우'라는 낱말이 있으니 뒤에서는 "이제야 하나를 해냈다는 듯이"나 "비로소 하나를 해냈다는 듯이"처럼 적을 수 있을 테지요.
말뜻은 말뜻대로 살피면서 알맞게 펼쳐야 할 말이요, 글느낌은 글느낌대로 함께 살리며 싱그러이 적어야 할 글입니다. 말결을 살피고 말투를 돌아보며 말매무새를 차근차근 가다듬어야 아름답고 알맞고 곱습니다. 한 마디 말이건 한 줄 글이건 우리 온마음을 담아야 아름답습니다. 한 마디 말이며 한 줄 글이어도 우리 참뜻을 실어야 곱습니다.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아니 작은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마음을 쏟고 사랑을 담으며 알차게 붙잡으며 다독여야 하듯, 작아 보이는 말마디와 글줄이기에 더더욱 마음을 쏟고 사랑을 담을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