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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제 17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정된 직후 한나라당 당사에 돌아와서 기자회견을 했다. 당선자의 일성은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경제 살리기와 국민통합도 강조하며, 국민들에게 더욱 겸손하고 더 낮은 자세로 섬기겠다고 당선소감을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9년 10월. 대한민국은 지금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생명을 연장해 가는 중환자의 모습처럼 위태위태해 보인다. 이제 호흡기만 제거하면 꺼질지도 모를 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은 운명이며, 총체적인 난관에 봉착해 있다. 백약이 무효인 경제는 여전히 살아나지 않고 있으며 국론은 분열되어가고 있고, 정부는 더 높은 자세로 앉아서 낙하산 인사나 날려가면서 국민들로부터 섬김을 받고 있다.

 

물론 이 모든 분열의 원인을 현 정부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매우 가혹하다. 서울 하늘의 나비의 날개짓이 런던 하늘에 비구름을 몰고 올 수 있는 것처럼 아주 작은 것들이 하나하나 누적되어 이런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여기에는 가정교육, 학교교육, 국가행정 등이 단독작용 혹은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여 극단적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싹을 틔운 원인이 가장 크며,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위기의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철인정치를 주장했고 사람의 몸을 곤충처럼 나눠서 머리, 가슴, 배로 구분해서 비유를 했다. 플라톤의 비유에 의하면 머리는 통치자, 가슴은 용기와 기개를 상징하는 군인, 배는 절제가 필요한 민간인 혹은 생산자로 구분했다. 머리는 이성을 추구하며, 가슴은 감정표현을 원하며, 배는 욕구가 채워지기를 원한다. 국가나 사람도 이것이 잘 충족되고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인 상태, 정의로운 상태라고 말했다. 이성이 감정과 욕구를 조절해야 한다는 무서운 비유를 했다. 이것이 플라톤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이다.

 

이제 2009년 가을의 대한민국의 현실계로 되돌아 와보자. 정부와 한나라당은 자기들 스스로 머리가 되어 통치자로서 수호자인 군과 생산자인 국민을 다스리려 하는 것 같다. 국민이라고 하는 집단은 그저 배나 채우려는 욕구나 가진 집단으로, 쌀이나 축내고 이산화탄소나 배출해 대는 잉여인간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 아둔함을 교화하기 위해 감정과 욕구를 조절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자기들 깨끗한 환경에서 살게 해 주고, 재난으로부터 안전하라고 4대강 사업을 한다는데 악을 쓰며 반대하는 저 국민이라는 집단은 엘리트들이 지배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같다. 4대강 사업 하지 말자는 여론 정도는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유능하지 못한 엘리트 집단이 정권을 잡고 소신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정부, 고장난 고속철도 같은 그 추진력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 정부는 이미 많은 국민에게 신뢰를 잃어버렸다. 의회정치는 직접민주주의를 운용하기 어려운 현대국가들이 일반적으로 채택하는 시스템인데 국회의원이 민의의 대변자임을 자처한다면 대단히 효율적인 시스템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의회가 민의를 대변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3권이 분립되었다고는 하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곧 한나라당의 당론이 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의회의 정부견제 기능은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현 정부는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하며 또한 제대로 가지고 놀 줄도 안다. 우리가 알기로는 자연하천은 자연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자정작용이라고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늘이 부여한 자연의 힘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우리 역사와 같이 숨쉬며 도도하게 흘러오던 4대강의 강물이 정부와 한나라당에 의해서 갑자기 똥물이 되어 버렸다. 이 애물단지에는 철새도 살지 못하고 먹을 수도 없으며, 물고기도 살 수 없으며 수시로 넘쳐 홍수피해를 주므로 이를 파헤쳐 1급수로 만들고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서 4대강을 대대적으로 파헤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명분은 국민과 우리의 후세들을 위해서이다. 국민을 위하고 후세를 위해서라는 대목만 보면 얼마나 갸륵한가?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보여 준 바에 의하면 절대로 국민과 후세의 안녕을 염려했을 리가 없다. 이제 사업의 명분을 뒷받침하기 위한 숫자놀음은 중앙정부와 KDI가 만들어서 바칠 것이다.

 

국가가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을 추구하고 국가가 국민을 섬겨야 하는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대형 포털부터 중앙일간지에 이르기까지 옐로우저널리즘과 집단 관음증에 빠진 퇴폐적인 사회가 되어 버렸으며, 최소한 국가가 가져야 할 시스템 자체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정부 및 조직의 모럴 해저드는 극에 달하고 있다. 마치 멸망 직전의 로마제국을 보는 듯하다.

 

현 정부는 출범한 지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참으로 많은 뉴스거리를 제공했다. 공교육만으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대대적 혁신을 하겠다고 해서 강남학원가가 들썩이게 하였고, 대운하 공사를 추진하다가 좌절되자 이번에는 4대강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여론은 사분오열되었다. 또한 제대로 된 공교육 시스템을 구축하여 사교육을 잡겠다고도 했다. 사교육은 핵폭발 이후에도 살아남는 바퀴벌레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존재로 이 땅에 남을 것이다. 독자들 중 한 분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사교육 시장의 스케일을 줄일 수는 있을 지는 몰라도 시장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역대 정권 모두 이것을 시도했으나 어느 정권도 사교육을 원천봉쇄하지는 못했다. 내 돈 내고 질 좋은 교육서비스를 받겠다는데 정부가 강제로 씨를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제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어디로 가야만 구성원 모두 살 수 있는 길인지 되돌아 봐야 할 때다. 분열의 시대를 종식하고 융합의 시대로 향해야 한다. 누적된 원인과 지엽적인 원인을 제외하고 지금 당장 정부에서 야기한 분열의 원인을 생각해 보자. 대통령이 라디오에 출연해 어린 시절 궁핍하게 생활해 봐서 서민생활을 잘 아니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식의 전혀 논리전개의 프로세스가 갖추어지지 않은 민망한 연설로 일방적 의사표시를 하고 이것을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우긴다. 또 재래시장에 가서 어묵이나 드시면서 민폐를 끼치는 것을 소통이라고 주장하니 정부가 신뢰를 잃는 것이다. 홍수 피해액은 전국의 하천에서 발생한 집계를 이용하고, 사업효과를 부풀려서 마치 지금 4대강 공사를 당장 하지 않으면 홍수피해가 날 것처럼 국민을 기만하니 점점 환멸이 드는 것이다. 4대강에서 발생한 홍수피해는 전국하천 대비 7%에 불과하지 않다고 하지 않는가? 이러니 대한민국이 분열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위기의 대한민국이 이 분열을 딛고 융합된 국가로 나아가려면 최소한 국가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에게 거짓을 고하지 말고 진실만 말해야 하며, 빈사 직전에 빠진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고통을 분담해 줄 것을 설득해야 한다. 신뢰 속에 소통의 싹이 트는 것이지 불신 속에서는 분열의 불씨가 꺼질 수가 없는 것이다. 정부와 국민의 상호신뢰와 의사소통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나면 대한민국 국민 특유의 국난극복의 잠재능력이 그 기능을 발휘해서, 위기의 대한민국을 세계속에 우뚝 선 선진국으로 도약시켜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경향신문에도 송고한 내용입니다. 


태그:#위기의 대한민국, #분열, #4대강,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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