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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중권 교수는 13일 오전 '일제고사 폐지 시민모임' 주최로 열린 체험학습 초청강연에서 "교육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파일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다"며 현 한국의 교육현실을 비판했다.
진중권 교수는 13일 오전 '일제고사 폐지 시민모임' 주최로 열린 체험학습 초청강연에서 "교육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파일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다"며 현 한국의 교육현실을 비판했다. ⓒ 오마이뉴스 이경태

"실물의 형을 안 닮게 그린 최초의 작가는 피카소다. 보면 모양이 이상하지 않나? 그런데 그거 모델 보고 그린 거다. 실물의 색채를 안 닮게 그린 최초의 작가는 마티스다. 마티스가 사람의 피부색을 파랗게 칠했을 때 비평가들이 '사람이 아무리 질려도 저렇게 파랄 수 있냐'며 비난했다."

진중권 교수의 재치있는 설명에 진지하게 '열공'하던 70여 명의 중·고등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의 얼굴에 잠시 웃음이 걸렸다. 전국 학업성취도평가(이하 일제고사)가 치러지는 13일 오전 이들은 학교 밖으로 나와 '살아있는 교육'을 택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으로 구성된 '일제고사 폐지 시민모임' 주최로 열린 첫번째 현장학습은 진중권 교수의 '현대미술 강의'였다.

흔히 학교에서 달달 외우는 "칸딘스키는 '뜨거운 추상', 몬드리안은 '차가운 추상'"식의 딱딱한 수업이 아니었다. 진 교수의 설명과 영사막에 비치는 작품들은 서로 어우러져 생생히 살아 움직였다. 대학수업이나 다름 없는 높은 수준의 강의였지만 청중들은 작품들에 이따금씩 탄성을 내뱉으며 열중했다.

진중권 "왜 우리는 학생들에게 정답만 요구할까? 삶에는 정답이 없다"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나온 70여 명의 중고등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13일 오전 대학로 SH홀에서 열린 진중권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다.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나온 70여 명의 중고등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13일 오전 대학로 SH홀에서 열린 진중권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경태

진 교수는 무엇보다 '상상력'을 강조했다. 앞서 기자회견을 통해 "일제고사로 대표되는 경쟁교육에 교육현장은 붕괴 직전"이라며 "정부가 반교육적 일제고사를 강행해 학생과 학부모의 정당한 권리인 자기결정권을 부정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고 밝힌 이들에게 '힘'이 되는 말이었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지금 앞서 나가는 나라 가운데 '프로그래밍'까지 다른 나라에 하청을 주는 나라도 많다. 그런 하청을 받는 곳이 중국, 한국, 인도 이런 곳이다. 자신들은 그저 '상상'만 한다. 왜 우리는 학생들에게 정답만 요구할까? 삶에 정답은 없다. 특히 인문학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 스스로 정답을 만드는 것이다. 이래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미래를 헤쳐나갈 수 없을 것 같다."

진 교수는 이어, 독일에 있는 자신의 아이 이야기를 꺼내며 우리 사회의 교육 풍토를 비판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인데도 10 이상의 수 개념이 없었다. 걱정이 돼 담임 선생님에게 상담을 했더니 좀 놓아두라고 하더라. 실제로 시간이 지나니깐 해결이 되더라. 우리나라는 아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무언가 하게 하려고 하지 않나? 교육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파일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의 프로세스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강의가 끝난 뒤에도 진 교수는 "(나는) 학교에서 세번이나 정학을 맞을 만큼 모범적인 학생이 아니었다"며 "저 사람들이 되라고 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 교수는 "대학원에서도 쫓겨나 박사 학위를 따지 못했을 때 학위 문제를 놓고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누나가 '미친 척도 10년만 하면 인정을 받는다'고 했다"며 "한국에서는 5년만 하면 된다, 우리 사회는 쏠림이 심해서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아무도 없다"고 지적했다.

"자기가 자기를 배려해야 한다. 사회의 나사나 톱니바퀴가 아니라 아무도 갖지 않은 정보를 생산하고,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홍세화 선생님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라, 사람들이 바라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떼돈을 벌 필요가 있나? 입에 풀칠을 하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게 행복한 것이다."

진 교수는 마지막으로, "영화 타이타닉에서 나오듯 위선적인 상류층이 아니라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희생하는 '서민적 건강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신을 긍정하라"며 사회가 묵시적으로 결정한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우를 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시험 거부한 아이들 "시험 치는 것보다 몸으로 배우고 직접 실천할 기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으로 구성된 '일제고사 폐지 시민모임'이 13일 오전 일제고사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뒤, 'MB교육'이라고 적힌 박을 깨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으로 구성된 '일제고사 폐지 시민모임'이 13일 오전 일제고사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뒤, 'MB교육'이라고 적힌 박을 깨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경태

아이콘에서 지표로, 지표에서 상징으로 발전하는 추상 미술. 상징에서 다시 복제된 아이콘으로 디지털 시대에 현실을 압도하는 가상으로 변화하는 현대 미술. 거기다 진 교수의 인생관까지 녹여진 강의. 사회자가 "대학 강의보다 어려운 것인지 쉬운 것인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정작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쌩쌩'했다.

전혜원(17)양은 "지금 학교에서 시험치는 것보다 몸으로 배우고 직접 실천할 기회가 된 것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고, '해솔'(18)양은 "학교에서 듣는 이야기와는 다르다"면서도 "약간 걸리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집에서 다시 생각해볼 것"이라며 강의 내용을 다시 곱씹어보기도 했다.

윤아무개(17)양은 "분명한 것은 지금 시험보는 애들이 우리보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며 "(현대 미학이)좀처럼 듣기 힘든 강의라 생소한 면이 있긴 했지만 교수님이 쉽게 설명도 해주었고 교수님이 사회적으로 하신 일을 떠올리며 생각할 부분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1년 전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한 설은주 교사(전 서울 유현초)도 강의에 만족감을 표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많이 보도됐지만 얼마 전 학교에서 성적이 낮은 아이들에게 '성적을 못 올리면 인간 취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문제풀이도 계속 시키는 것 같은데 1년 전 우려했던 바가 그대로 벌어지고 있다"고, 각계의 비판에도 일제고사를 강행하는 교육 당국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편, '일제고사 폐지 시민모임'은 이날 진 교수의 강연을 시작으로, 영화 및 뮤지컬 감상 등의 행사를 진행했다. 또 오후 3시부터는 청소년들이 직접 주체로 나서 이번 일제고사 등 현 교육현실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일제고사#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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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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