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휘청 걷던 내 발길을 안아주던 이 길이, 말을 잊었습니다.
씽긋생긋 웃고 지즐재즐 수다떨며 집 앞 동네마당까지
꼬박꼬박 나를 데려주던 골목이, 오늘은 입을 다물고맙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나도 알고 있어. 얼마남지 않은 것을..." 길이 희미하게 답합니다.
"......."
하루가 온통 대낮인 아파트 단지가 들어차면,
내 골목길로 조붓조붓 내려오던 서울의 어둠은 다 어디로 가는걸까요.
깻잎과 방울토마토, 빼족한 잎사귀만 남은 고추도
말을 잃고 꼿꼿이 앞만 바라봅니다.
골목길은 산으로 줄달음질 칠 듯 이어져있습니다.
우리네 발길이 멈추지 않는 한 먼저 떠날 리 없건만
자꾸만 산으로, 산으로 눈길을 주는
길이 왠지 낯설어보입니다.
처마와 처마, 나무와 나무가 맞닿은 골목길.
자동차의 빠른 질주와 굉음같은 '경쟁'과 '속도'를 막아서던 저 길마저
가고 나면,
약삭 빠르고 힘있게 달려가지 못하고 가다서다 어정쩡하게 걸어가는
저 아이들과 노인들, 그렇고 그런 우리네 이웃까지
영영 떠나고 말 것 같은데...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