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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은평구 증산동에 있는 봉산이야.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이 글을 읽어보고 나와 내 친구들을 좀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어. 하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아. 길은 보이지 않고 그저 답답하니 혼잣말로 끼적거려보는 게지.

 

어느 날 '생태 전문가'라는 사람들 몇이서 나,봉산을 찾아왔어.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에 놀란 직박구리, 멧비둘기 화르르 하늘로 날고 떡갈나무, 노린재나무 멈칫 숨을 죽였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눈치 보기에 바쁜 구절초, 쑥부쟁이는 불안한 듯 소곤소곤 귓속말만 나누었지. 사람들은 종일 내 몸을 샅샅이 뒤지고 헤치더니 <서울시 생태관광명소>란 큼직한 팻말을 내 다리에 박아놓고는 사라졌지.

 

봉산생태경관보전지역 알림글 봉산-봉령산이라고도 함. 은평구와 고양시 덕양구 경계에 놓여있으며 높이 209.6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임
봉산생태경관보전지역 알림글봉산-봉령산이라고도 함. 은평구와 고양시 덕양구 경계에 놓여있으며 높이 209.6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임 ⓒ 서울시

 

나중에 알았지만 나뿐만이 아니었어. 내 동무 백사실계곡, 온수공원, 우이령길 같은 숲 11곳과 헌인릉을 비롯한 습지 2곳. 한강 밤섬, 청계천 하류 따위 하천 6군데와 생태공원 11군데 등 모두 30곳을 훑고 지나갔더군.

사람들은 우리 몸에 '서울시 생태관광명소 30곳'이란 거창한 이름표를 붙여놓자마자 "서울에도 깨끗한 자연이 숨어있었다!"며 신문으로 방송으로 동네방네 나발을 불고 다니더군. 우르르 들이닥칠 사람들 등쌀을 배겨낼 생각을 하니, 걱정이 소나기구름처럼 내 코앞으로 쏴아아 밀려드는 거 있지. 조짐이 좋지 않아.   

 

그런데 가만 있어봐. '숨어있었다?!' 우리가 숨어 있어다니! 생각할수록 기분 나쁜 말이네. 우리는 늘 그 자리에 있었거든. 사람들이 못 보면 죄다 숨어있는 건가? 사람들 정말 제멋대로야. 이런 말쯤이야 뭐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는데, 정작 우리한테 무서운 말은 따로 있어. 사람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 말을 읊조리더라고.

 

사람들이 가까이 오기만하면 다쳐...제발 오지마!

"이번에 생태관광 명소로 선정된 곳은 생물이 다양하고 자연경관이 수려하지만 '접근성'이 떨어져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다." 접근성! 이 말이야말로 나와 내 동무들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치명적인 흉기이자 사람들만을 위한 이기적인 잣대지.

            

오로지 사람들 두 다리 편안하고자 우리 몸 깊숙이 길을 내고 팔다리를 잘라 다리를 놓고, 머리 꼭대기에 계단을 걸치고는 365일 찾아올 수 있도록 우리 몸을 마구 헤집는 것이 바로 -접근성-이거든. 나, 봉산의 기분 따위는 상관없이 전기로 밤을 낮 삼아 쉴 틈조차 주지 않고 시시때때로 찾아와 결국은 내 몸을 시름시름 앓아눕게 만드는 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접근성-이라고. 사람들이 가까이 오기만하면, 우리는 다치니 이보다 무서운 말이 없지.

 

우리 몸을 망가뜨려 놓고 사과 한마디 없는 것은 사람들이 늘 해온 짓이니 오히려 참을만해. '녹색'이니 '에코'니 '친환경' 따위 겉치레말로 자연을 위하는 척,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지.  

내 몸에 기대 살아가는 토끼, 다람쥐, 청솔모와 굴참나무, 갈참나무, 산벚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국수나무 따위 나무들은 벌써 죽을 날을 받아놓은 듯 초상집 분위기야.

 

부탁이야. 나, 봉산과 친구들 이름을 '서울시 생태관광명소 30곳'에서 빼줘. 제발!

 

덧붙이는 글 | 고양사회창안센터 칼럼에 실렸음


#그래!숲#생태와 관광 어울리는 말일까?#자연생태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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