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이슬이 많은 계절이다.
깊은 산골이 아니라도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이슬방울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계절이 가을이다.
풀잎, 거미줄, 꽃잎 할 것없이 바람과 햇살이 일어나기 전에는 밤새 내린 이슬로 싱그럽고 촉촉한 이슬방울을 알알이 달고 있다. 그러나 서울 하늘에서 이런 모습을 보기한 하늘의 별따기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안개가 많았다.
안개가 많은 날에는 건조한 도심도 다소 촉촉한 기운이 감돌아 풀이 있는 곳이라면 이슬이 맺힐 확률이 높다. 혹시나 하고 둘러본 사무실 화단, 이슬이 잘 맺히는 씀바귀 이파리를 보니 아주 작은 이슬이 알알이 맺혀있다. 행운이다.
알알이 맺힌 이슬방울마다 가을꽃 국화가 들어있었다.
한번이라도 작은 이슬방울마다 새겨진 꽃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의 어떤 보석이라도 눈에 차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흔한 것이다.
공기와 흙, 햇볕 같은 것들은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혹은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숨 쉬고 살아가는 한 거져 얻는다.
극한의 순간에 가장 먼저 버려질 것들이 오히려 귀한 것처럼 대접받는다. 희소성때문이겠지만, 흔하지 않은 것은 사실 우리에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다이아몬드 같은 것들이 그렇다.
물방울다이아가 비싸다고 하지만 아무리 비싼들 풀잎에 맺힌 이슬보다 아름다울까?
그럼에도 물방울다이아를 좋아하고, 갖기를 원하는 것을 보면 사람은 아름다운 것보다도 비싼 것 혹은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갖으려는 소유의 존재인가보다.
나도 이런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값이 비싸다고 하니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친구가 정원에 심을 배롱나무를 구하는데 모양새가 좋은 것은 꽤나 비싸다고 한다. 그제서야 제주에 살때 뜰 안에 있던 배롱나무가 값으로 치면 제법 값이 나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서야 귀한 것을 제대로 귀하게 여기지 않았구나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속물적인 소유욕 가득한 나를 보면서 딱하기도 했던 것이다.
요즘 우리는 '경제 성장'이라는 말에 붙들려 살아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물방울 보석보다 이슬방울이 더 예쁘다고 한다면 바보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그들에게 눈길을 주고, 마음을 빼앗겨본 사람이라면 그 소리가 헛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알알이 맺힌 이슬방울 마다 새겨진 국화, 그 이슬방울만 따다 차로 마셔도 국향 가득할 것만 같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