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로가 지나고 다음 주가 상강이니 이제 산마다 고운 단풍이 들 때입니다. 주말이면 단풍 구경 떠나는 차량들로 고속도로는 꽉 막힐 것이고, 고운 단풍으로 유명한 산들은 겨울이 오기도 전에 단풍 구경을 온 사람들로 몸살을 앓을 것입니다.
몇 해 전, 단풍 구경 온 사람들 때문에 설악산이 병들어간다는 박그림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적어도 나는 관광버스 타고 단풍 구경을 하러 다니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산 냉골 계곡 아래 자리 잡은 마을에 살면서 날마다 인수봉, 백운대를 바라보며 봄이면 산 아래쪽부터 초록물이 드는 것을 보고, 가을이면 산 위쪽부터 단풍이 내려오는 것을 보며 살고 있으니 굳이 갈 필요가 없어서 그런 다짐이 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풍철이 다가오니 아이들과 함께 마을 뒷산에 올랐습니다. 단풍 구경을 하기 위해서 오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산에 오르면서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찾아보고, 사진으로 기록하기 위해 산에 올랐습니다. 5학년 형님과 동생들 서너 명씩 모둠을 지어 사진기를 한 대씩 들고 학교를 나섰습니다.
우리 마을 뒷산(북한산)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산이기 때문에 빗물이나 사람의 발길에 의해 잘 부서지고 깎이는 산입니다. 땅속 깊이 있던 화강암이 지표로 올라오면서 압력이 낮아지고, 빗물, 식물의 뿌리 등 다양한 요인으로 침식이 일어난다지만, 북한산처럼 '거대한 도시=사람이 많이 사는 곳' 가까이에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은 그 풍화와 침식의 속도가 더 빠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오르는 길 내내 사람들의 발길에 깎인 흙과 앙상하게 드러나 나무 뿌리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가며 버린 쓰레기들도 많았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이 비닐을 들고 다니며 쓰레기를 줍지만, 사이다병, 담배꽁초 같은 쓰레기는 그렇다치더라고, 커텐봉 같은 것이 땅 속에서 삐죽 드러난 걸 보면 누군가 일부러 쓰레기를 갖다 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산악회 홍보물도 아이들이 보기에는 산을 헤치는 인간의 손길이었나 봅니다. 모둠별로 찍은 사진 모두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찍은 사진 중에는 아스팔트도 있고, 바위 위의 낙서, 전봇대, 가로등, 전깃줄, 체력단련장 등도 있었습니다. 왜 이런 사진을 찍었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이 편히 가기 위해서 아스팔트를 깔았고, 전봇대를 설치해 가로등을 단 것 같다고 합니다.
"야, 저기 전봇대도 찍자."
"누나, 전봇대 없으면 사람 구조 못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새가 감전 돼서 죽을 수도 있고, 원래 없던 건데 사람들이 세운 거잖아"
"우리 전기 없으면 안되잖아."
노원구, 강북구, 동대문구가 훤히 내다보이는 널찍한 마당바위에 앉아 잠시 쉬었습니다. 아이들은 땅을 뒤덮고 있는 아파트를 내려다 보고 놀랍니다.
"야, 아파트가 저렇게 많았어?"
학교로 돌아와서 오며 가며 본 것, 느낌과 생각을 갈무리하는 글을 쓰고 돌아가며 소감을 나눕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찍을 것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는 이야기, 자연은 있는 그대로가 좋다는 이야기, 아파트가 너무 많아서 놀랐다는 이야기, 나무들이 불쌍하다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가 자연을 전혀 훼손하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까지 자연에 해를 입힌다면 그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단풍 든 산에 오르는 것이 자연에 어떤 부담을 주는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계기들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단풍이 한창이라는 상강을 내다보며 마음에 드는 생각입니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마을학교는 북한산 자락 인수동에 자리잡은 대안학교입니다. 2010학년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편입생을 모집합니다. 매주 수요일 절기 공부를 하며 우주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 절기 공부는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의 환경교육현장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