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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외국인보호소 건물과 정문 앞에 써있는 '법과 질서의 확립' 간판. 과연 누구를 위한 '법'과 '질서'일까?
화성 외국인보호소 건물과 정문 앞에 써있는 '법과 질서의 확립' 간판. 과연 누구를 위한 '법'과 '질서'일까? ⓒ MWTV

지난 8일, 미노드 목탄(이하 미누)씨가 이주노동자의방송 MWTV(이하 MWTV) 사무실 앞에서 연행됐다는 말을 들었다. 올해 4월부터 MWTV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쌓아왔던 터라 급한 마음에 수유너머연구실, 해방촌 공동체 빈집 사람들과 부랴부랴 화성외국인보호소 앞으로 갔다. 당장 새벽에라도 강제출국하면 드러누워서라도 막아볼 요량으로 옷가지와 돗자리들을 가지고 밤을 샜다.

 

우리는 아침 9시에나 면회가 가능하다는 말에 돗자리를 깔고 화성외국인보호소 앞에 자리를 잡았다. 새벽에 갑자기 경찰들이 와서 여기서 뭐하느냐고 묻기도했다. 그런데 "모두 한국사람이냐"는 말과 "그렇다"는 확인만 하고 사라졌다. 화성의 밤하늘은 유난히 검고 별들은 참 아름다웠다. '미누씨는 보호소 담 너머에서 저 별을 볼 수 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아팠다. 결국 담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화성의 아름다운 밤하늘을 볼 수 있는 권리조차 뺏었기 때문이다.

 

"미누씨, 파란체육복이 너무 안 어울려요"

 

화성외국인보호소 업무가 시작되자 우리는 1번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오전 9시 30분. MWTV식구들과 면회실에서 미누씨를 기다렸다. 그는 유리창 앞에 다가와 앉았고, 내 첫마디는 "미누씨, 파란체육복이 너무 안 어울려요"였다. 미누씨는 웃으며 "나도 이게 안 어울리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모자에 체크남방을 즐겨 입어서 사람들이 "부쩍 세련됐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얼굴도 웃음도 밝았던 사람인데, 어두운 면회실 조명에 보호소 수감복은 그를 더 낯설게 했다.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잤는지, 사소 한 것까지 궁금하고 걱정됐다. 그는 아침 먹었냐는 질문에 "빵하고 우유 먹었어요. 여기서는 일회용 숟가락을 가지고 계속 먹는데 놀랬어요. 아침에 점호할 때 줄 세우고, 호주머니에 손 넣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 빼라고 하고. 우리는 죄를 지은 범죄자가 아닌데 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다"고 했다.

 

네팔 사람도 한국 사람도 아닌 '미누'라는 사람

 

'미누씨가 네팔사람이었구나'라고 처음 느낀 때는 지난 10월 2일 네팔공동체에서 주관하는 추석맞이 축제에서였다. 스탑크랙다운(Stopcrackdown) 밴드 보컬로 노래를 부를 때도 못 느꼈었는데, 그 날 축제에서 유창한 네팔어를 듣고 난 후였다. 그만큼 미누씨는 한국말도 잘하고 '한국사람 보다 더 한국스러운 사람'이었다. 네팔 친구들은 "미누는 네팔사람이 아니라 한국사람이다. 우리는 네팔사람으로 인정 안한다"고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 두 번째로 미누씨가 네팔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건 "93호 네팔10046". 보호소에서 미누를 부르는 이름을 들었을 때였다. 평소에는 김치찌개 집에서 "찌개는 얼큰해야 제 맛이지"라며 김치찌개를 먹는 그였다.

 

다큐멘터리 찍고 있는 미누 현재 MWTV 다큐팀장을 맡고 있는 미누씨는 한국사회의 인종차별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제작중이었다.
다큐멘터리 찍고 있는 미누현재 MWTV 다큐팀장을 맡고 있는 미누씨는 한국사회의 인종차별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제작중이었다. ⓒ 천주희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못했던 눈물을 어제 여기서 흘러..."

 

한 여름 밤, 사무실(MWTV사무실은 남산 아랫자락에 있다)에 있던 사람들과 옥수수를 삶아 남산타워에 산책 간 적이 있다. 그 때 미누씨는 "네팔 신문에서 보던 '남산타워'가 있는 남산 아래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에게 한국은 달콤한 희망의 나라였다. 

 

"한국에서 희망사회 말하잖아요. 나는 한국에서 17년을 살았는데 그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지 모르겠어요. 나는 한국에서 일하고, 노래하고 살아왔는데 지금은 여기(외국인보호소)에 있잖아요"라고 했다. 미누씨가 희망을 말하는데 이유가 있다. 그는 모친상에도 네팔에 가지 못했다. 그는"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네팔에 가지 못하고 울지도 못했어요. 나는... 그런데 어제 여기서 눈물을 흘렸어요. 나는 한국에서 말하는 희망조차 꿈꾸지 못하는 사람인건가요? 열심히 일하고 한국을 고향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나는 한국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내가 한국에서 살아 갈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었는지..."라고 물었다. 나는 여기에 어떤 답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누씨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누씨는 들어온 지 24시간도 안 지났는데 새로운 이주민 친구들을 사귀었다. 다들 출국을 앞둔 상황이지만, 나이 많은 아저씨부터 젊은 친구들까지. 그런데 그는 "사람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도 '이의신청'을 몰라서 신청 못하는 경우가 많고, 표현할 수 없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미누씨는 "내 일이 많이 알려져서 다른 이주노동자들도 나아지면 좋겠다"며, "나 말고 다른사람들을 위해서 노력해달라"고 전했다.  

 

1.5평 남짓한 면회실 시계는 '인권이 존중되는 법질서 확립'이라는 문구를 등지고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꼭 우리를 내쫒는 듯 했다.

 

화성외국인보호소 뒷이야기

 

화성외국인보호소는 1993년 서울외국인보호소로 명칭이 변경됐다가, 2000년 11월 화성시로 이전하면서 화성외국인보호소가 됐다.

 

화성외국인보호소 직원들은 친절했는데, 화성외국인보호소소장은 "국민들의 편의를 위해 보호소 앞에 작은 공원을 개방형으로 바꾸고, 작은 항아리에 물고기와 수중식물들을 키우고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외국인보호소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면회 온 이주노동자들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호소 왼편에 위치한 작은 수목단지에는 비둘기도 날아와 둥지를 틀고 산다고 했다. 한국은 비둘기가 거주 할 공간은 있어도, 이주노동자들이 둥지 틀 공간은 없었다. 또, 화성외국인보호소 관계자는 "하루에 60명~80명이 들어온다. 많을 때는 120명까지 들어온다"고 했다. 이는 오늘도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보호소에 들어오며 강제출국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면회를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의 가족이거나 동료이지만 통역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친구 면회를 온 A씨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서, 한국말도 영어도 잘 하지 못한다. A씨는 "같은 나라 사람이 있으면 찾아서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며, "돈은 그냥 가방에 넣어서 주면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보호소 면회 시, 돈·서류·짐 등은 면회 신청을 할 때 줘야하지만 이처럼, 영어와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경우 몰라서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신청서를 쓰는 것조차 어려운 장벽이다. 아마 국민들의 편의를 위한 보호소라서 한국어를 잘 해야하나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이주노동자의방송 MWTV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누#이주노동자#화성외국인보호소#스탑크랙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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